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사라진 한글 활자 역사를 복원하다
“한글 납활자에 관해 실증적으로 증명하여 기술 설명한 최초의 업적”
-홍윤표 전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장
“근대 활자사 연구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노력의 걸작”
-고미야마 히로시 사토타이포그래피연구소장
우리나라 근대 활자사는 비어 있다?
실증적 고증으로 복원한 한글 활자의 역사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의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암흑기와 같았지만, 민족의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신문』이 창간되고, 한글을 전용으로 사용한 신문들이 창간된 시기이다. 또한 한글 활자 공모를 통해 활자를 개발하는 등 한문 문화에서 한글 문화로 바뀌는 문자 혁명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조선에 선교를 위해 발 디딘 서양 선교사들은 자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한글 문법서와 한글 번역 성경 등을 출간하고, 이 과정에서 한글 활자들을 개발했다. 그동안 『훈민정음』 창제 이후부터 만들어진 한글 목활자, 금속활자 등에 대한 연구들은 많이 있었지만, 근대 시기 만들어진 한글 납활자에 주목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국립한글박물관 개관위원장을 지낸 홍윤표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근대 시기의 한글 납활자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연구 업적이 없었다. 납활자 이전의 금속활자나 목활자, 도활자 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연구되어 온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라며 “한글 납활자에 관한 초기 자료들이 국내보다는 외국에 더 많이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글 활자의 탄생 1820~1945』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만들어진 한글 활자와 한글 활자를 제작한 인쇄소, 한글 활자의 타이포그래피 특징 등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가 12년 동안 전 세계 40여 개국에 흩어져 있는 한글 활자의 기록을 찾아 직접 원본을 확인하고, 분석해 기록했다. 최초의 시도였고, 관련 연구도 많지 않아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한글 활자의 원형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저자의 고독한 노력은 지속되었다. 이 책이 가치 있는 이유는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주장 또는 의견을 종합하거나 재편성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자료를 직접 발견하고 확인하여 자료와 이론과 실험이라는 탄탄한 과정을 거쳐 이룬 학문적 업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근대 인쇄활자사를 최초로 체계화한 연구자인 고미야마 히로시 사토타이포그래피연구소장은 “한국 최초의 근대 활자사에 대한 연구”라고 평가했다. 근대 시기 만들어진 한글 납활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근대 출판 과정, 한글 자형의 변천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활자체를 주목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대마다 활자의 변천사가 있는데, 이를 통해 초판본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계에서 이슈가 된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에 대해 홍윤표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활자체에 주목해 『진달래꽃』 초판본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고 전했다.
유럽, 미국, 일본은 왜 근대 활자사에 주목하는가?
세계적인 복고풍 활자 개발 트렌드
일본 쓰쿠바기술대학교 종합디자인학과 교수인 류현국 교수는 국제타이포그래피협회(Atypl) 세미나 등에 참석해 전 세계 서체디자이너와 서체 제작사들을 만났다. 이들의 한결같은 관심사는 고문헌에 사용된 완성도 높은 활자본을 발굴해 현대적인 감각으로 서체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또한 활자 및 활자사 연구 결과가 언어학, 문학, 인문학 등 다양한 관련 학문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근대 활자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움직임에 자극 받아 근대 한글 활자의 원형과 계보를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자료를 얻기 어려웠다. 선행연구 자료를 통해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 등에 근대 한글 활자 관련 자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한글 활자 기록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한글 관련 기록을 분석하고 조사하느라 기차 시간을 놓치고, 비행기 시간을 놓칠 뻔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납활자가 바지주머니에 남아 있는 것을 모르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다가 검문을 당한 아찔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근대 한글 활자의 원형을 찾겠다는 일념과 주위의 도움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 저자는 확인한 자료들의 한글 활자 크기를 직접 측정했다. 영인본 등은 서체 크기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꼭 원본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한글 성경 자료를 찾기 위해 방문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도서관에서는 저자가 “한글 성경 조사를 위해 방문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곳에서 로스 목사가 1882년 심양 문광서원에서 발행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찾아 책장을 넘기려고 하자 책장이 부러져 대나무로 만든 핀셋을 가져와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활자 크기를 측정하기도 했다.
왜 일본 국립대 교수인 한국인이 세계를 무대로
한글 활자를 연구하는가?
저자가 한글 활자의 원형을 찾는 연구를 12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 문부성의 연구비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고미야마 히로시(사토타이포그래피소장)를 중심으로 근대 활자인쇄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양과 일본, 중국에서 개발된 명조체 한자 활자의 원형과 계보를 중심으로 ‘근대 활자인쇄사’를 집대성한 저작물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한국인이 자국의 활자사를 정리하지 않으면 가치관이 전혀 다른 외국인이 연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12년간 한글 활자의 원형과 계보를 찾았고, 『한글 활자의 탄생 1820~1945』 한 권에 담았다. 고미야마 히로시 선생은 “12년이라는 시간은 긴 시간처럼 보이지만, 근대 활자사를 정리하는 데 굉장히 빠른 시간”이라며 “활자인쇄사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다국어 혼식 조판이 일상화된 현대에 한국, 일본, 중국이 소통과 연구 교류를 통해 차세대 타이포그래피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초 국외 신문 광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광고는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광고(1886년 2월 22일에 『한성주보』에 게재)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국외 신문에 실린 최초의 광고는? 바로 세창양행 광고보다 6년이나 앞선 『한불자전』 광고이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발행된 『레코 듀 자퐁』(L’Echo du Japon) 신문(1880년 12월 18일)에 『한불자전』 광고(그림1)가 게재되었다. 『한불자전』은 조선에 온 프랑스 선교사들이 출간한 다국어 사전이다.
근대 최초 활자 공모를 실시한 신문은?
1920년 4월 1일 창간된 『동아일보』는 근대 신문사 최초로 민간인 공모로 한글 활자를 개발했다. 신식 인쇄기계 도입 등 인쇄시설을 확충하면서 새로운 활자체를 개발한 것이다. 1928년 ‘신서체 모집 광고’를 통해 한자 명조체의 성격을 그대로 살려 만든 한글 활자체가 당선되어 1933년부터 제목과 본문 등에 사용되었다. 또한 한 번 쓴 활자는 버리고 매일 7만 자를 주조하여 사용하였다(그림2). 당시 개발된 활자는 명조체와 고딕체 두 종류인데, 명조체는 1호~7호(활자 크기) 7종류로, 한국 신문사 최초로 활자 세트로 개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