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인을 조명하다
오늘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기리는 신사를 찾아 머리를 조아리며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발언을 거듭한다. 일본의 지도자들 역시 침략의 역사를 부정, 미화하고 인류 양심에 도전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한국인과 중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은 이러한 일본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나치의 만행을 악으로 규정하고 지금도 나치 전범들을 찾아내 재판정에 세움으로써 나치즘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낸 독일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세계의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일본인들의 행동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이 책은 과거 일본 군국주의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 끼친 엄청난 피해에 대해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침략 전쟁을 부인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일부 일본인들의 사상과 행동의 근원을 비판적으로 분석, 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일본과 일본인의 실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의 특징 및 학문적 의의
이 책은 일본의 근대화 이후 천황제 사상과 침략 전쟁의 논리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여, 상징조작을 습관적으로 일삼는 가장(假裝)의 공동체이자 가공(架空)의 공동체인 일본과 일본인의 정신과 심상지리(心象地理: 어떤 지역을 상상하거나 인식하는 마음속의 지리적 개념으로, 특정 지역을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미화하는 것)를 조명하는 책이다. 오늘날에도 천황과 일본인 사이에 고착된 천황제의 가족주의와 신성성, 상명하복의 획일성 그리고 상징성으로 포장된 지배자로서의 천황상이 절대주의 천황제의 연속성으로 여전히 일본 사회에 만연해 있고 일본인은 천황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근대 일본 절대주의 천황제의 특성을 분석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 사상을 규명함으로써 그 전쟁이 결국은 절대주의 천황제의 확대 과정이었음을 고찰한다. 즉 전쟁 자체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이르는 혹은 전쟁을 수행하는 천황제의 사상과 일본인의 전쟁 인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나아가 전후 일본의 상징 천황제가 외면적으로는 근대의 절대주의 천황제와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배자로서의 천황상이 여전히 일본 사회에 연속되고 있다는 것을 사상적으로 규명한다. 천황제의 사상적 특성과 절대주의 천황제와 상징 천황제의 연속성을 일본인과 관련하여 조명한 것에 이 책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역사적 열등감을 침략주의로 풀어낸 일본 근대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변방의 섬나라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를 받아들였다. 동아시아의 문화적 흐름에서 일본은 항상 한국과 대륙을 향한 지향 의식을 나타냈다. 이것은 일본인에게 긍정적으로는 향일성의 문화 지향으로 나타났고, 부정적으로는 침략 야욕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및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외래문화는 ‘현시적 문화’가 되고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는 ‘묵시적 문화’가 되었다. 그리하여 현시적인 것은 열등감으로 고착되고, 묵시적인 것은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정신이 되어 일본인의 내면성을 형성하였다. 일본인의 열등감과 국수주의의 결합은 외부 지향성과 침략주의라는 이중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면서 이 두 가지 양상의 잠재의식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서양 제국주의처럼 세계를 파악하는 시점을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으로 고착함으로써 아시아는 ‘야만’이라는 심상지리를 형성한 결과, 서양을 모방하여 일본인의 책임 의식을 내세우며 아시아에 대한 침략 전쟁을 계속했다. 한반도 및 중국 대륙을 향한 지향 의식과 열등감은 서양에 대한 모방 의식과 열등감으로 대체되었고, 이것이 다시 동양을 향할 때에는 침략 야욕과 우월감으로 현실화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이중성은 역사적 관계에서 오는 열등감의 보상 의식과 복수 의식으로 구체화되어 침략과 지배로 나타났다.
왜 일본 정치인들은 과거를 반성하지 못하고 주변국을 계속 기만하고 있을까?
전후 일본인의 전쟁 책임 망각 현상은 천황제의 연속성에 의지하여 천황제가 떠안고 있는 침략 전쟁 등 모든 책임에서 천황을 면제시켜주는 동시에, 천황에 대한 가치 의존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책임도 회피하려는 데에서 나온 것이다. 천황 및 천황제를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제시켜주면 천황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일본인도 책임이 없다는 무책임성과 무한 책임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단 일어난 일에 대하여 천황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는 것은 물론, 개인 혹은 집단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일본인 특유의 무책임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망언과 과거 정당화 발언은 천황에 대한 가치 의존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한번 실패한 내셔널리즘을 회복함으로써 근대 일본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전후 일본 정치가 근대 일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천황과 주체적인 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다는 증거로서, 여전히 군국주의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전후 미국의 오판으로 살아남은 천황제, 무책임한 일본을 만들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물리적인 힘으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미국은 포츠담선언 제12조가 규정한 ‘평화적이고 책임 있는 정부’의 구성을 위해 천황의 신격을 박탈하고 천황을 ‘상징’으로 추상화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천황을 ‘괴뢰화(puppet regime)’ 혹은 ‘상징화(symbolic monarch)’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천황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천황제에 대한 일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자유의사)을 박탈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였다. 또한 미국은 근대 일본 사회에서의 천황제와 일본인의 관계를 과소평가했거나 무시했다. 천황제는 일본인에게 외면적 법제화 혹은 제도화에 따라 작용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정체성과 종교성으로 그 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의 기로에 서서도 일체의 희생을 돌아보지 않고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 즉 국체를 호지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것은 천황제 신화와 그것의 종교적 속성을 잘 드러내준다. 소위 ‘국체의 호지’는 패배를 승리로 호도할 수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신기루인 동시에 최후의 저항선이었다. 일본의 ‘국체’가 갖는 종교성은 여타의 종교가 내세를 기약하듯, 일본 제국주의가 천황의 ‘신민’에 의지하여 부활을 꿈꿀 수 있는 탈출구였던 것이다.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한 축이었던 미국은 일본 제국주의의 천황제의 속성에 대해 매우 무지했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천황제의 유지는 미국의 시혜였으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천황에 대한 ‘신민적’ 가치 의존에 젖어 있는 일본인에게 무책임성을 심어주었다. 천황에 대한 미국의 면죄부는 천황제에 대한 일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선택과 함께 책임 의식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았던 것이다.
역사와 현실이 던지는 교훈
역사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아시아인들을 오랜 고통 속에 몰아넣은 일본과 일본인에게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원죄의 속죄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를 부정하며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일부 지도자들이 천황제가 저지른 야만적인 아시아 침략과 전쟁 책임이라는 무거운 역사의 원죄를 반성하고 사죄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징 천황인 천황에게서 상징의 허울을 벗겨내고 천황을 앞세워 과거의 추악한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제관계에서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제를 정리하고 청산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이다.
일본은 오늘도 이러한 역사의 진리를 외면하고 과거의 침략 전쟁과 만행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여전히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기고 문화를 말살당하고 처참한 삶을 살았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인식하고 저들의 정신 구조를 분명히 파악하는 것, 거기에 우리의 열린 미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