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마타를 통해 움직임과 기계의 역사를 읽다
《오토마타 이야기》는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재료를 가지고 마침내 움직이게 만든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형상을 창조하기 위해서 인류가 바친 열정 어린 노력과 함께 기계 공학 기술이 어떻게 발달해 나갔는지 차근차근 알려 준다. 즉, 이 책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움직이게 만든 ‘인간의 노력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구상한 대로, 명령한 대로 움직이는 존재’를 꿈꾸기만 하던 신화시대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기계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엄청난 크기의 도서관이 지어질 만큼 당시 유럽 지식의 보고였던 탓에 여러 과학 기술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크테시비우스와 필론, 헤론은 물과 불, 공기를 이용해 간단하지만 스스로 움직이는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냈다. 물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오르간, 포도주를 따르는 오토마타, 증기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공까지 후대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물건들이 만들어졌다. 뒤이어 아랍 지역에서는 알 자자리를 비롯한 과학 기술자들 덕분에 코끼리물시계 등 정교하고 다양한 오토마타들이 등장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기계식 탈진기의 발명으로 성당이나 도시 시청사에 오토마타가 함께 움직이는 커다란 시계탑을 세웠다. 종을 치는 자크마르와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토마타가 등장하는 천문시계, 수도승 오토마타 등 당시 사람들의 눈에 마법처럼 보였을 오토마타들이 속속 등장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활동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과학 기술의 집약체인 오토마타는 18세기에 이르러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진짜 사람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는 오토마타는 수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았고, 중국 황제에게까지 팔리기도 했다.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송나라에서도 물시계 오토마타인 수운의상대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물시계인 자격루가 만들어졌다. 일본으로 전해진 오토마타는 일본의 특색이 입혀진 ‘가라쿠리’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오토마타의 기술은 대부분 공장기계로 흡수가 되었고, 장난감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오면서 오토마타의 기술들은 로봇을 움직이는 작동 원리가 되기도 하는 한편으로 예술의 한 분야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 인류의 소망과 꿈을 담아 왔던 오토마타는 이제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적 존재가 된 것이다.
오토마타가 한창 만들어지던 때,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람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인가?”
“과학 기술로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사람과 어느 정도까지 똑같이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인공지능’의 개발이 한창이 지금 시대에도 무척이나 유효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인간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
기계의 기초적인 작동 원리를 알다
이 책은 오랜 시간, 움직임에 대한 인류의 소망과 꿈을 담은 오토마타를 만들기 위해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만들고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들려준다. 단순히 항아리에 담긴 물의 양으로 오르락내리락하던 오토마타가 톱니바퀴와 크랭크, 캠 같은 작동 원리 덕분에 움직임이 얼마나 정교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간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는지 보여 준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과학 공학의 기초적인 작동 원리들을 배울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이런 기초적인 기계의 원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대는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통 사람들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 화면에 손만 대면 온갖 정보를 불러올 수 있고,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도 없고, 내 손으로 만들어 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 로봇이 더 발전해서 인간의 손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더 줄어들면 인간은 더욱 과학 문명으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그러나 오토마타에 관심을 갖고 직접 제작을 해 보면서 아주 작게나마 과학이라는 것에 작은 끈이라도 하나 갖고 있다면 주변에서 보는 자전거나 장난감 같은 간단한 기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건 쉬운 일이다. 이렇게 오토마타는 기계에 대한 이해력을 키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학과 함께 역사와 철학, 예술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
《오토마타 이야기》에는 오토마타를 만드는 기술과 기초적인 작동 원리의 발전이 세계사 속에 녹아 있다. 덕분에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 계몽주의 시대까지 서양의 역사와 대항해 시대의 아시아와 일본의 개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와 그 시대의 오토마타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세계사에 관한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오토마타에 던져진 철학적 질문들을 보면서 존재에 관해, 과학 기술의 발전에 관해 답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오토마타는 무슨 내용의 글을 쓰는 걸까? 자기를 만든 사람의 이름을 쓰기도 하고,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쓰기도 해. 때로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라고 쓰기도 해. 이 오토마타를 만든 사람은 오토마타가 왜 이런 문장을 쓰도록 만든 것일까? 그냥 장난인 걸까, 아니면 데카르트의 생각에 반기를 들고 싶은 걸까? (질문하는 기계들 중에서)
기계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온 것을 보니, 오래전 자케 드로가 만든 ‘글씨 쓰는 오토마타’가 보여 준 메시지가 다시 생각나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의 말을 살짝 변형했던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걸까?’라는 말. 이 문장을 로봇이 하는 말로 바꾸면 이렇게 되겠지?‘ 로봇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로봇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언젠가는 완벽한 인공 지능 로봇이 나타나 생각할 것이고, 그럼 로봇은 존재하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사람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오토마타의 대변신 중에서)
거기에 자연의 힘을 뛰어넘거나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로봇과 인간을 돕거나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게 되는 로봇을 함께 보면서 과연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예술의 한 분야로 정착하게 된 현대의 개성 넘치는 얀센의 거대한 오토마타나 카바레 기계 극장의 아기자기하면서도 기발한 오토마타들을 감상하면서 예술적인 안목도 기를 수 있는 인문 과학 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