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들이 현실세계에서 찾은 무릉도원!
당대 최고의 학자 이황과 강호의 고수 임훈이 시로써 응수하다.
원학동 수승대 바위에 새겨진 이황과 임훈의 시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조선 시대 선비들이 무릉도원처럼 이상향으로 여긴
영호남 제일의 명승은 경상도 ‘안의삼동安義三洞’이었다.
안의삼동은 안의현에 속한 세 동천洞天인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원학동은 가장 빼어난 명승으로 예부터 당대의 내로라하는 수많은 문인과 선비 들이 찾던 곳이었다.
원학동은 현재 경남 거창군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 일대로, 진동암, 동계 정온 고택, 구연동, 수승대(국가지정 명승 제53호), 임훈 고택, 갈천동, 용암정(국가지정 명승 제88호), 강선대, 모리동, 금원산, 분설담, 사선대 등의 명소가 있다.
당대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 선비 정신의 표상 남명 조식, 재야의 고수 갈천 임훈, 절의의 은자 동계 정온, 송시열에 버금가는 문인 송준길, 안동 김씨 가문의 대학자 김창흡, 정선?심사정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던 문인화가 조영석, 한말 구국의 화신 최익현, 구한말 3대 천재로 불리던 김택영과 이건창 그리고 황현, 독립운동가 곽종석, 순국지사 송병선 등 조선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찾은 남도 제일의 명승, 원학동은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였다.
이 책은 먼저 영호남 제일의 명승인 안의삼동의 지리를 살펴보고 그 속에 깃든 의미를 밝혀낸다. 우리나라 최고의 정자거리인 화림동, 진경과 진인을 찾는 심진동, 은자가 숨어 사는 원학동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안의삼동의 으뜸인 원학동을 살펴보는데, 원학동에 얽힌 명칭의 의미를 밝혀 원숭이와 학이 사는 무릉도원을 그려낸다. 또한 원학동의 범위를 오늘날의 마리면 영승 마을에서 월성계곡 상류의 사선대까지 이르는 공간으로 본다. 그러면서 안의삼동 중 사대부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원학동을 사대부들이 은거하며 수학하던 공간, 현실 세계에서 찾은 무릉도원, 효우와 절의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최고의 명승임을 각종 자료와 시문을 통해 이야기로 엮어 들려준다.
명소가 명인을 만나 명승이 된 곳
이 책의 절정은 원학동의 꽃인 수승대 부분이다. 수송대, 암구대, 수승대, 요수대 등으로 불린 수승대의 네 가지 이름의 의미에서부터 수승대의 빼어난 경관을 읊은 조선 문인들의 주옥같은 시들을 소개하며 수승대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이야기는 이황의 등장으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1543년 1월, 이황은 장인 권질의 회갑연을 맞아 원학동 영승 마을을 찾았다. 이때 이황은 수승대로 가서 임훈과 신권을 만날 계획이었으나 급한 일로 조정으로 돌아가야 했다. 수승대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둘러 상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황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기다리고 있던 임훈과 신권에게 ‘수송대(愁送臺)’라는 원래 이름을 ‘수승대(搜勝臺)’로 바꿔 시 한 수를 보낸다. 그러나 원래 수승대는 처남?매부 사이였던 임훈과 신권이 노닐며 소요하던 곳이었다. 신권은 이황이 보내온 수승대라는 새로운 이름에 매우 기뻐하며 그를 만나 회포를 풀지 못한 서운함을 시로 지었다. 그러나 임훈의 생각은 달랐다. 이황이 비록 수송대라는 옛 이름의 ‘송(送)’자가 전아하지 못하다고 바꾸었으나 수백 년 동안 전래된 고사가 있는 지명을 임의로 바꾼 것을 선뜻 수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이황이 찾아와 함께 노닐다가 늦은 봄에 떠난다면, 봄을 보내기도 시름일 뿐 아니라 그대를 보내기도 시름이라’며 ‘송(送)’의 뜻을 풀이해 알려주고 이황이 수승대로 이름을 바꾼 것이 잘못되었음을 넌지시 상기시켰다.
이황이 직접 와서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점잖게 ‘수송(愁送)’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깨우쳐 주고,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자신의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이황과 강호의 고수 임훈의 미묘한 갈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황이 수승대로 이름을 바꾸고 시를 한 수 지은 이후, 그의 명성이 높아지자 수승대를 찾은 뒷사람들이 이황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이황의 시에 차운하지 않은 시와 수송대라는 옛 명칭으로 지은 시도 많았는데, 이로 인해 수승대 일대는 풍부한 스토리와 빼어난 시문들로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저자는 “임훈 같은 군자가 살고, 이황 같은 학자가 이름을 새로 붙여 원학동의 꽃, 수승대는 명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원학동의 명승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다시 원학동 입구인 마리면 영승 마을로 되돌아 나와 원학동의 주요 명승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영승 마을 사락정, 원학동 관문 진동암, 동계 정온 고택, 척수암, 구연서원과 관수루, 요수정 등을 살펴보고, 연하굴, 장주갑, 반타석, 용우암, 원타굴, 사담, 연반석, 세필짐, 구룡폭, 용반, 욕기암 등 수승대 주변의 명소들인 ‘구연동19경’을 꼼꼼히 둘러본다.
이번에는 금원산에 올라 문바위와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유안청 폭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갈천동에서는 초입의 용암정과 북상면 소재지에 있는 임훈과 임운의 효자정려비, 임훈이 강학하던 갈천서당, 갈계숲으로 향한다.
다시 월성 계곡을 따라 모암정과 강선대, 동계 정온이 은거하며 의리를 지킨 모리재와 송준길이 우거했던 분설담을 거쳐 원학동의 끝 사선대에 이르게 된다. 사선대의 본래 이름은 송대(松臺)였다. 18세기 김윤겸의 《영남기행화첩》과 김희성의 〈안음송대〉그림을 통해 사선대의 옛 모습을 본다.
저자는 원학동의 명소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소개하며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에는 이러한 명소들을 어떻게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지를 친절히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부록에는 원학동을 찾은 조선 시대 문인 90명에 대한 정보가 있어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로서의 원학동을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여행의 의미
조선 선비들의 발자취를 좇아 답사와 여행의 의미를 다시 일깨우는 이 책은 오늘날의 부박한 여행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진정한 여행, ‘참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비들이 지향했던 유람 정신을 대부분 잃어버린 오늘날, 화림동 농월정에는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수승대 바위에 새겨진 이황과 임훈의 시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수승대 옆 구연서원 관수루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곰곰이 돌아보게 된다.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원학동 수승대, 정작 이곳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 책이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였던 이곳을 새롭게 조명하여 이곳이 앞으로 선비문화 답사일번지가 되기를 희망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아름다운 경치와 풍경만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산수 속에 깃든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의미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저자는 남명 조식의 글을 읽다 탄식을 한다.
“물을 보고, 산을 보고, 옛사람을 보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았다.[看水看山 看人看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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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들의 답사일번지》는 경상대학교출판부에서 기획한 “지앤유 로컬북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경상대학교출판부는 “지식과 정신의 다양함, 한 톨의 볍씨에서 우주를 보다!”는 슬로건으로 우리 땅의 지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역까지 아우르는 “지앤유 로컬북스”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경상대학교출판부에서는 경남의 역사·인물·자연·환경·민속 등 전 분야에 대해 경남 지역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주제를 참신한 방식으로 접근한 출판기획안을 수시로 접수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출판부 홈페이지(http://gspress.gnu.ac.kr)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