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부인전
<송부인전>의 대본은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474종 중에서 정선한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에서 다시 선정한 것이다. 가로 20cm, 세로 30cm 크기의 한지에 붓으로 쓴 필사본으로, 총 231면, 각면 평균 10행, 각행 평균 16자로 되어 있다.
<송부인전>을 간단히 요약하면, ‘송부인(송경패)이라는 여성 주인공이 친정과 시댁을 넘나들며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수난을 당하지만, 선하고 올곧은 성격을 변치 않으면서 그 모든 사건을 견뎌낸 결과, 최종적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시부모의 며느리이자 남편의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로서 가문 내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며 행복한 결말을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성이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을 당하고, 그 고난을 극복하여 여성으로서의 성공과 행복을 얻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유형을 ‘여성 수난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송부인전>은 이러한 유형에 충실한 여성 수난형 소설이다. 그러나 유형에 충실한 이 소설을 채운 내용이 어느 정도로 창조적이며 어떤 면에서 작가의 개성과 상상력이 드러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개별 작품 안에서 유형의 빈 칸을 메꾸기 위해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해냈고 어떤 기발함을 발휘했는지를 도외시한 채 이미 만들어진 유형이라는 틀만 바라보는 것은 달을 보는 대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것과 같다. 유형이라는 거시적 관점과 작품의 개성이라는 미시적 관점의 어느 쪽에도 소홀하지 않을 때 독자는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연구자는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송부인전> 또한 그렇게 보아야 할 것이다.
2. 금방울전
<금방울전金鈴傳>은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474종 중에서 정선한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 중의 한 작품이다. 책의 크기는 가로 18cm, 세로 23cm의 31면으로, 각 면당 평균 15행, 각 행당 평균 30글자가 들어가 있다.
<금방울전金鈴傳>은 내용면에서 전기소설傳奇小說, 특히 신괴소설神怪小說로 분류된다. 신괴소설은 그 기본 설정이나 내용, 세계관 등에서 본격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불교, 도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설화에 가깝다. <금방울전金鈴傳>은 대체로 소설이 되기에는 다소 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작중에 나타나는 모든 어려움이 금방울의 신이한 힘으로 해결되거나, 금방울의 정체와 그 운명의 배필이 요괴와 싸우다 죽은 용녀龍女와 그 남편인 용자龍子로 설정되어 있는 등의 황당무계한 내용과 설화적 구조가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최대한 높게 보아도 <금방울전金鈴傳>은 본격적인 소설이라기보다는 설화에 문학적 기법을 덧칠한 정도,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전래동화’ 이상이 되지 못한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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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문화 시대’라 한다. 문화와 관련된 정보와 지식이 고부가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문화 시대’라는 말을 과장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문화 시대’에서 빈번히 들을 수 있는 용어가 ‘문화산업’이다. 문화산업이란 문화 생산물이나 서비스를 상품으로 만드는 산업 형태를 가리키는데, 문화가 산업 형태를 지니는 이상 문화는 상품으로서 생산‧판매‧유통 과정을 밟게 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삶의 질에 관심을 가질수록 문화 산업화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문화가 상품의 생산 과정을 밟기 위해서는 참신한 재료가 공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그 훌륭함이 증명된 고전 작품을 돌아봄으로써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 고전적 가치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하여 대중에게 내놓을 때, 과거의 문화는 살아 있는 문화로 발돋움한다.
이제 고소설에서 그러한 가치를 발굴함으로써 문화 산업화 대열에 합류하고자 한다. 소설은 당대에 창작되고 유통되던 시대의 가치관과 사고 체계를 반드시 담는 법이니, 고소설이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는 없다. 고소설을 스토리텔링,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문화 상품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는, 문화생산자들이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게끔 고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소설의 대부분은 필사본 형태로 전한다. 한지韓紙에 필사자가 개성 있는 독특한 흘림체 붓글씨로 썼기 때문에 필사본이라 한다. 필사본 고소설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쉽지가 않다. 필사본 고소설 대부분이 붓으로 흘려 쓴 글자인데다 띄어쓰기가 없고,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많으며, 보존과 관리 부실로 인해 온전하게 전승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사라진 옛말은 물론이고, 필사자 거주지역의 방언이 뒤섞여 있고, 고사성어나 경전 용어와 고도의 소양이 담긴 한자어가 고어체로 적혀 있어서, 전공자조차도 난감할 때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전적 가치가 있는 고소설을 엄선하고 유능한 집필진을 꾸려 고소설 번역 사업에 적극적으로 헌신하고자 한다.
필자는 대학 강단에서 40년 동안 강의하면서 고소설을 수집해 왔다. 고소설이 있는 곳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어디든지 찾아가서 발품을 팔았고, 마침내 474종(복사본 포함)의 고소설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에는 고소설로서 문학적 수준이 높은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이들 중에는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유일본과 희귀본도 있다. 필자 소장 474종을 연구원들이 검토하여 100종을 선택하였으니, 이를 <김광순 소장 필사본 고소설 100선>이라 이름한 것이다.
고소설은 그 주제가 대체로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관념적이고 도식적인 결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고, 그 내용도 모두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아 거의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이라 할 수 있으며,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나 우연에 의하여 전개되거나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쓸모가 없고 그 가치도 낮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시금 반복하여 음미해보면, 이들 작품은 우리의 사상과 감정의 원천이며, 우리 민족의 본질적인 면을 가득히 가진 가장 한국적인 가치 있는 보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고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 옛 선조들이 즐겨 사용했던 여러 사물이나 생각에 대한 용어를 알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사상과 감정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도 있으며, 이는 문장을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필사본 고소설은 우리가 문화민족이었다는 증거이며 한민족문화의 보고寶庫로서 우리 조상이 물려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우리 고전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읽고 음미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