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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군, 고모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자신보다 여섯살이나 연상인 사람에게 군(君)이라는 호칭을 쓴 건 애정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서군은 누구누구 씨나 선배님 같은 호칭보다는 확실히 애틋한 데가 있었다. 조해진 <사물과의 작별>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이 단편을 사랑하게 될 것을 알았다. 입을 열고 언어를 말하고 누군가를 부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세상에서 호칭의 문제는 중요하다. 호칭은 그 사람의 지위를 결정한다. 한 사람에게 한 사람이 어디 놓여 있는지, 마음의 지위를 결정한다. 부모에게 아이의 첫 사회적 신고가 이름이듯이, 누군가에게 어떤 이의 첫 마음의 자리는 호칭이다. '서군'이라는 호칭은 꽤 많은 차이가 나는 어른을 소년의 자리로 붙들고픈 소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호칭을 고르고 고르던 순간의 설렘이 가늘게 떨린다. 내가 부여했던 몇 호칭들을 기억한다. 휴대폰 주소록 상단에 위치했던 희한한 이름 여럿, ㄱ부터 ㅎ까지 가득 차 있던 의미 없는 이름 중에 그 부피만큼이 나의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나의 사람이었다. 비록 그 의미는 사라졌지만 나에게 중요했던 이름의 무게만큼은 남아 있다. 그 순간에는 그들이 내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고모에게는 끝까지 서군이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내게는 끝까지 중요할 수 있는 사람이 남으리라는 자신이 없다. ▷ 고모는 충분히 외로웠다. 고모에게도 몇명의 애인들이 있었고 그중엔 결혼 이야기가 오간 사람도 있었다지만, 그 누구를 만나던 시절에도 고모의 하루는 태영음반사의 유리문 사이로 서군과 눈이 마주쳤던 1971년의 늦은 봄밤에서 시작됐다. 사랑이 아닌 것은 때때로 사랑의 영역 바깥에서 하나의 영토를 일구기도 한다. "순간으로 영원을 산다"는 말은 진리다. 그게 인간의 시간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한 예증인 것 같다. 사람은 의미 없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허무함이란 거기에서 나오고, 나처럼 그것을 못 견디는 인간은 항상 숨이 막혀 허우적거린다. 암흑과도 같은 순간 잠시의 반짝임, 그것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경험 때문에 다시 찾아온 허무를 버텨낸다. 빛나는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치고, 그 때문에 그 순간을 정확히 재지도, 정리하지도, 그리고 정의하지도 못한다. 그 순간은 더욱 풍부해진다. 한순간의 기쁨이 모든 허무를 덮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한순간이 평생을 잠식할 수 있는 이유이다. 고모의 이야기가 내게 더 서글픈 것은 단지 첫사랑으로 평생을 허송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바로 곁에서 떠돌다가도 정작 그 사람만큼은 마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이없이 더 어울리는 것이다 '유실물'이라는 그 감정이. 오히려 유실물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었을 때 이 감정은 제 자리를 찾는다. 그리하여 호칭은 더욱 중요해진다. '서군'이 '유실물'이 되는 순간에야 여기저기 떠돌던 이 희한한 감정은,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를 떠나 '유실물'로 자리 잡는다. 고모에게 찾아오는 육체적 비극은 우습게도 있을만한 일이고, 고모에게 찾아오는 사랑의 비극도 황당하게시리 있을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 비극들이 겹치는 것도 있을만한 일이다. 사는 것은 비극의 무대를 충실히 연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무대를 성공적으로 연기하는 성취감이 나에게 약간, 기쁨을 준다. 조해진의 글을 읽으면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이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전복되는 남자>는 무너지기 직전의 한 남자를 만든 작품이다. 자코메티의 손길에 의해 한 남자의 무너지는 순간이 박제된다. 영원으로 남는다. 남자는 영원히 무너지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의미로도 또다시 순간은 영원이 된다. 자코메티는 가느다란 뼈대에 반죽을 발라 입히는 기법으로 원형을 만들어 청동으로 주물을 뜬다. 작가의 결과물은 부스러지는 듯한 인간의 몸과 공간 속에 스미는 듯한 인간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살아 있으나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들은 곧이어 조금씩 지워진다. 유령 같은 사람들이 떠도는 조해진의 소설은 어렵다. 등장하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줄거리를 잃게 되고, 그 안에서 헤매는 나는 사연보다는 희뿌연 슬픔을 먼저 읽는다.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버거운 희뿌연 감정을 해독하느라 어려운 것은 나의 몫이고, 그것이 작가가 나에게 친히 전달한 과제일 것이다. 유령 같은 자코메티의 인간은 언제나 휘청거린다. 조해진의 인물들도 휘청거린다. 이렇게 힘 없고 눈물 나고 제 몸조차도 무거운 인물들을 와락, 끌어안고 싶다. "오랫동안 안고 싶다. 찬 '몸'에 온기 돌 때까지" 혹은 영원까지 안고 싶다. ▷ 이렇게나 늙고 병들었는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있는 곳은 여전히 그 봄밤의 태영음반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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