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50년 공부의 원형!D. H. 로런스의 창조적 사유로 탐색한현대문명의 한계와 극복 가능성을 마주하다주체적 외국문학 연구를 선도하고 학문적 실천의 전범을 보여온 백낙청 50여년 학문여정의 시발점이 되는 하바드대학교 박사학위논문(1972)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40, 50년간 사제의 연을 이어온 네 제자가 철저한 협업으로 옮기고 지은이의 감수를 거쳤다. 일찍이 서양정신사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극복을 모색한 걸출한 영국소설가 D. H. 로런스의 대표작 분석을 통해 서구 산업사회·기술문명의 본질을 고찰하고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본서는 존재와 진리에 대한 비형이상학적 탐구 및 그에 기반한 리얼리즘론, 제3세계문학론, 근대 적응 및 극복의 이중과제론, 주체적 외국문학연구 등 저자가 반세기도 넘는 동안 수행해온 학문적·비평적·사회적 실천의 중심에 자리한 담론들 대부분을 혹은 맹아적 형태로, 혹은 거의 완성된 모습으로 품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한국문학계의 현실에 밀착된 문제의식을 집중적인 학문적 탐구와 연마를 통해 확대, 심화함으로써 탄탄한 비평적 입론으로 가다듬어낸 성과인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장차 한국평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게 될 주요한 비평담론들의 모태이기도 하다. 동시 출간된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와 함께 읽으면 이 책이 제기하는 원형(原形)의 주제들이 어떻게 움트고 성숙해 결실하는지 목격하는 진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로런스 사유의 독창적 면모들과 ‘사유의 모험’으로서의 소설 로런스 연구서로 국한해 보더라도 본서는 여러모로 독보적이다. 학위논문이 제출된 1972년은 로런스 사후 40여년이 지난 때였으나 당시 이 소설가에 대한 평가가 확립된 형국은 아니었다. 평자들이 ‘반지성주의자’나 ‘예언자’ 같은 다소 조롱섞인 호명으로 그를 규정하고자 했다면, 그를 ‘성(性)문학의 대가’로 여기는 대중적 인식도 여전했다. 케임브리지대학출판부에서 40권에 이르는 전집으로 간행되고 수많은 연구결과가 축적된 오늘날에도 로런스의 핵심적인 예술적·사상적 성취가 어떤 것인지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호소를 드물지 않게 듣게 된다. 동시대 로런스 연구의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로런스의 예술적·사상적 성취의 핵심을 새로 규명해내는 과제에 집중하는 본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F. R. 리비스의 로런스 읽기와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비판이다. 리비스는 초창기 로런스 비평의 오독과 혼란의 와중에 이 작가를 영국 소설전통의 계승자로 자리매겼으며, 로런스 소설이 추상적·이론적 사유와는 다른 차원의 창조적 사유를 작가의 예지로써 담아낸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저자는 이런 리비스의 시각에 동의하는 한편 로런스를 하이데거와 대면하게 함으로써 로런스의 근대비판 및 새로운 사유의 모색이 갖는 문명적·예술적 함의를 더욱 깊이 궁구해나간다. 로런스는 일생 ‘존재’와 진리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며 소설로 구현했고, 소설이라는 형식에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던 작가다. 그는 소설은 사유의 모험이며 인간은 사유의 모험가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육신으로 살아 있는 존재, ‘진정한 실체’에 대한 사유로, 또한 서양 철학전통의 존재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로 나아간다. 모든 소설의 배경에는 일정한 형이상학이 깔려 있으며 예술조차도 형이상학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그리고 오늘날 형이상학은 닳아서 애처로울 정도로 얇아지고 예술은 온통 헐어가고 있다는 것이 당대 예술에 대한 로런스의 진단이다. 저자는 여기서 로런스와 하이데거 사유의 상통성을 발견하는데, 기성 철학이 존재의 의미를 추상의 영역으로 밀쳐내고 진정한 존재로부터 떨어져나옴으로써 인간과 지상의 민족들의 쇠퇴를 가져왔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문제의식인 것이다. 플라톤 이래의 형이상학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니체와 맑스에서 결정적 전기를 맞지만 양자는 근대주의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며, 저자가 보기에 로런스의 사유는 근대문명의 역사를 인정하는 가운데 존재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기성 철학을 능동적으로 극복한, 세계사적으로 의미를 갖는 성취이다. 로런스에게 진정한 예술은 항상 진리의 일어남이며, 진정한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리얼리스트로, 미래에 대해 말하면서 그 미래의 새로운 토대를 마련하는 사람(예언자)이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명예를 부여받은 존재가 바로 소설가이다. 소설 작업에는 총체성과 균형, 구체적 세부의 풍부함이 요구되며, 소설가는 그 사소한 세부들의 풍부함을 통해 ‘그 배후에 자리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불꽃’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소설이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사유의 모험의 특수한 형태인 한, 그의 소설세계를 정당하게 판단하려면 먼저 로런스가 내세운 최고의 사유의 모험의 차원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