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여마법사의 계곡In the Valley of the Sorceress」은 "푸만추"라는 독특한 빌런을 내세워 작가서로 일약 성공을 거두었던 색스 로머의 단편이다. 푸만추와는 결이 다르지만 작가의 첫 작품 「불가사의한 미라」에서 이어지는 작가 특유의 관심사와 특기가 잘 드러난다. 최근의 신비동물학(Cryptozoology)을 기반으로 한 소설로 볼때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화자는 이집트의 한 발굴 현장에서 거의 작업을 끝내간다던 친구 콘도르가 갑자기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다. 고양이에 물렸다지만 광란 속에서 기이하게 죽음을 맞은 콘도르. 화자는 그 친구를 대신해 발굴 작업을 끝내기로 마음먹고 그 계곡으로 향한다. 순조로워보이던 발굴 작업은 괴생명체의 출현에 이어 기이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난관에 부딪친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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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는 죽기 전까지 내게 편지를 세 차례 보내왔습니다.” (고대 유물부 소속의 네빌 부조사관은 열려진 창문을 통하여 카스르-엔-닐 막사 앞에서 진행 중인 분대 훈련을 건성으로 보면서 말했다.) “콘도르가 편지를 보낸 곳은 데이르 엘 바하리(하트셉수트 장제전)의 발굴 캠프였지요. 그 편지들로 미루어 보건대, 그 친구는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는 물론 하타수 여왕에 관해서 나와 같은 의견을 가졌고, 그 여왕을 둘러싼 고대 이집트의 거대한 미스터리를 푸는 일에 자신의 정열을 오롯이 바치고 있었습니다.”
콘도르도 나(이 글의 화자인 네빌)도 훼손된 벽과 아무렇게나 지워진 비문에서 기묘한 매력을 느꼈다. 자신의 통치기에 이집트 예술을 완벽함의 정점에 올려놓았기에 후왕들로부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했던 여왕. 더없이 완벽하리만큼 지혜롭고 훌륭하며 아름다운 인물로서 후대에 그 진면목이 알려져 마땅했던 하타수. 모든 비문에서 자신의 카르투슈*를 무참히도 말살 당해야 했던 여왕. 그녀는 콘도르의 마음에 기자Gizeh,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한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항구도시—옮긴이의 영원한 수수께끼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카르투슈 cartouche; 판지의 끝이 말려 올라간 것 같은 모양에 국왕의 이름 등을 나타내는 이집트 상형 문자가 들어 있는 직사각형 또는 타원형 물체―옮긴이)
그 문제에 관한 나 자신의 의견이 무엇이냐고? 내 논문 「여마법사, 하타수」가 내 의견을 구체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시어도어 데이비스에 의해서 불운한 콘도르에 의해서 그리고 나 자신이 조사한 결과에 의해서 제시된 증거들을 바탕으로 내가 도달한 결론은 그 여왕이 지녔던 힘의 원천―그것이 실재하는 것이든 가상적인 것이든―이 지금 우리가 모호한 용어로 지칭하는 ‘마법’, 그것에 대한 지식이었다. 합법적인 한계를 뛰어넘어서 자신의 연구에 천착했던 여왕은, 고문서가 신뢰할만한 것이라면, 이계의 영역까지 너무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이 맞는, 그리 드물지 않은 최후를 맞았다.
바로 그 이유 즉 흑마법을 사용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녀의 지위는 실추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기념물에서 지워졌다. 지금 나는 마법사용의 사실 여부에 관해 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논문에서 현대의 관점에 따라서 여왕이 마법사였음을 밝히는데만 주력했다. 콘도르도 그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연구를 이어 받은 것은 중단된 그의 작업을 완결하고픈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1908년 초겨울에 바위 신전 근처의 발굴 캠프에서 내게 편지를 보냈다. 비반 엘-물르크(왕가의 계곡)에 있는 데이비스의 (통로가 길고 비좁은) 무덤은 그에겐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신전 뒤에 있는 고지대 그러니까 상부 고원의 정확히 서쪽으로 100미터 지점에서 작업 중이었다. 그곳에 하타수와 그밖에 다른 미라가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다른 미라라고 함은 여러 비문에서 하타수의 통치기에 그녀의 호의를 받은 고위 건축가로 등장하는 센-무트였다. 콘도르의 편지는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나 내가 나중까지 기억하게 만든 짧고 기이한 문단 하나가 있었다.
“한 아랍인 여자가 이틀 전 밤중에 캠프로 뛰어와 내게 보호를 요청했어.” 콘도르는 이렇게 썼다. “그녀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또 어떤 처벌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어. 그런데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내게 매달려서는 가려고 하질 않더라고. 50명의 현지 일꾼과 꽤나 점잖은 유럽의 열혈 신사 한 명이 있는 캠프에 아랍 여성 그것도 아주 아리따운 여성이 있을만한 거처를 마련하기는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어. 아무튼 그녀는 아직도 여기에 있어. 내 텐트에서 동쪽으로 작은 계곡에 달개지붕을 단 임시 거처를 지어주긴 했는데 이거 참 난처한 일이야.”
콘도르의 소식을 다시 접한 것은 한 달 가량 지나서였다. 그 두 번째 편지에는 위대한 발견—그는 그렇게 믿었다—을 코앞에 두고 현지 일꾼 50명 전원이 하루밤새 도망가 버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틀만 더 작업하면 그 무덤이 열리게 돼 있었어. 내 계획이 정확하다는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했으니까. 아침에 일어났더니 일꾼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없더란 말이야! 나는 꼭지가 돌아서 일꾼 상당수가 사는 마을로 내려갔지만 그중에서 한 놈도 보이질 않더라고. 게다가 놈들의 친인척들은 그들의 행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더군. 작업이 정지된 것만큼이나 나를 초조하게 만든 것은 마하라 그러니까 그 아랍 여자도 사라졌다는 사실이야. 뭔가 불길한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