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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 9호 상세페이지

잡지 과학/IT

과학잡지 에피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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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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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과학잡지 에피 9호> 남성/여성으로 나뉘지 않는 성의 ‘스펙트럼’을 말한다

최근 몇 년간의 페미니즘 담론의 성장 덕분에, 사회적 성을 뜻하는 ‘젠더’가 주민등록번호부터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상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문화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생물학적 성인 ‘섹스’가 사회적 성과 성적 욕망을 규정한다는 전제를 떨쳐내지 못한다. 여기에는 생물학적인 성은 남성/여성 또는 암컷/수컷의 두 가지로 나뉘며, 그 경계를 가로지를 수 없다는 이분법적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생물학적 성은 사회적 성과 달리,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일까? 그 이전에,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은 무 자르듯 구분되는 것일까? 관점이 있는 과학비평 계간지 『에피』 9호는 성을 둘러싼 다양한 편견과 오해를 살펴본다. 생물의 발생과 생태계의 구성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 이분법적 성별 체계의 재생산 및 강화 과정을 밝히는 과학사, 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성호르몬의 진실을 드러내는 의학의 눈으로 성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한다. 이런 ‘과학적’ 접근을 통해 경계가 불분명하고 정체가 다채로운 스펙트럼 같은 지형 속에서 성을 이해해보려는 것이 이번 호 키워드 ‘젠더 스펙트럼’의 의도다.

학문적 논의와 더불어 호르몬 요법 등 의료적 트랜지션(성별표현, 성역할, 외모 등을 성별 정체성에 맞추어 변경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으로 정체화한 MtF(male-to-female) 트랜스여성의 경험담을 실음으로써, 문화적·역사적으로 규정된 성의 경계를 넘는 삶의 사회적 의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트랜스여성 희정은 자신의 성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트랜지션이란 단순한 의료 시술이거나 한 개인 차원에서 완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별 구분을 둘러싼 관습적, 법률적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사회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천에 옮긴다. 자신과 같은 트랜스젠더 인권 향상을 위한 단체 조각보에서 활동하며 성에 대한 몰이해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고백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성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논의가 조금 더 예민하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웅변하고 있다.

『에피』 9호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이 자연적인 것인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생명체들의 성은 어떻게 결정되고 변화하는가 ▲생물학적 성은 개체나 유전체, 유전자 수준에서 어떻게 교란되는가 ▲인터섹스의 신체는 성별 이분법에 의해 어떻게 비가시화되는가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가 ▲여성 스포츠 경기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 제한은 성별 이분법을 어떻게 강화하는가 ▲성별을 바꾸는 의료적·사회적 트랜지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등 성의 다양한 변이와 이분법적 성별 구분 관념에 관한 과학적·비판적 논의가 이번 『에피』 신간에 담겨 있다.


출판사 서평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연속적인 차이를 인식하기 위하여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으로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몸들을 ‘인터섹스’라고 한다. 예컨대 외양은 ‘여성’처럼 보이지만 전형적인 남성 생식기를 가진 몸, 세포 중 일부는 XX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고 또 다른 일부는 XY염색체로 이루어진 몸, XXY 염색체를 가진 몸, XY 염색체를 가졌지만 안드로겐 무감성인 몸 등이 바로 인터섹스다. 이처럼 ‘모호한 성기’를 가진 몸에는 대부분 태어나자마자 은밀하게 수술이 행해지므로, 많게는 100명당 1명, 적게는 2000명당 1명이 인터섹스인데도 마치 없는 것처럼 비가시화된다. 즉 관행적인 의학 조치를 통해 이분법적 성별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피』 9호 키워드인 ‘젠더 스펙트럼’에 실린 네 편의 글은 ‘남성성’ 또는 ‘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관념을 강화하는 데 동원되는 생물학적 성이 실제로는 매우 유동적이며, 다양한 변이에 열려 있음을 과학적·역사적·경험적 측면에서 보여준다.

의학사 연구자인 최은경은 오늘날 스포츠 분야의 규칙이 ‘테스토스테론 수치’라는 ‘과학적’ 잣대로 여성의 생리학적 변이를 제한하고, 여성 신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함을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800m 달리기에서 우승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 세메냐는 ‘남성적’ 외양 때문에 우승 직후부터 성별 구분 논란에 휩싸였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의 요청에 의한 성별 구분 검사 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다른 여성 선수들의 3배 이상인 것으로 밝혀진 세메냐는 경기 출전을 금지당했다. 이듬해 세메냐는 여성 육상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는 호르몬 요법을 받아야 했다. 필자는 이것이 스포츠의 공정성을 위한 조치인지 묻는다. 대부분 스포츠 경기에서는 도핑과 같은 ‘후천적’인 신체 능력 향상을 제외한 유전적·생리학적 변이를 광범위하게 허용한다. 예컨대 마르판 증후군을 가진 농구선수는 매우 유리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경기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필자는 여성 육상경기에서는 여성의 타고난 생리학적 변이를 후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성별 이분법에 기반하며, 이상적인 여성 신체의 관념을 강화한다고 지적한다.

국립생태원 소속 연구원인 정길상은 많은 생물에서 성은 태어날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예컨대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니모는 흰동가리인데, 흰동가리는 암수한몸으로 태어나 주변 환경에 따라 암컷이나 수컷으로 변화한다. 성은 유전자 재조합을 위한 훌륭한 도구로서, 종의 유지에 효율적인지 여부에 따라 취사선택되는 메커니즘이다. 인디애나 대학의 커트 리블리 그룹이 뉴질랜드의 달팽이 종을 연구한 것에 의하면, 기생충이 만연한 곳에서는 수컷이 있는 종이 우세하고, 기생충이 없는 곳에서는 암컷만 존재하는 무리가 더 빠르게 번식하여 수컷이 도태된다. 즉 암수의 존재는 기생충을 견뎌낼 수 있는 진화적 힘을 가진 것이다. 필자는 개체, 유전체, 유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성결정 시스템의 다양한 교란 현상을 보여주면서, 생물학적 성이 사회적 개념의 성과는 매우 다르게 진화해왔으며, 매우 유동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학 및 과학기술학 연구자인 정연보 교수는 사회적 성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성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산업화 이후 사회에서 ‘모호한 성기’를 가지고 태어난 인터섹스는 성별 이분법을 따르는 의학적 조치 등을 통해 비가시화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남성이 아니면 여성인 식으로 명확히 구분되기보다는, 연속적인 스펙트럼상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인간의 신체를 남성/여성으로 나누는 과학의 이분법적 성 모델은 비교적 최근인 18세기에 등장하여 사회적인 성별 이분법을 강화해왔다. 필자는 성별 이분법에 도전하는 생물과 자연의 사례가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자연의 많은 생물이 살아가면서 환경에 따라 성을 계속 바꾸며, 흰꼬리사슴의 10퍼센트는 인터섹스이고, 치마버섯은 성이 2만 8천 개 이상이다. 필자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넘어서 몸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더욱 다양하고 가능성이 넘쳐 나는 생물학, 즉 퀴어생태학을 재구성해나가자고 제안한다.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의 활동가 희정은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 자신의 트랜지션 경험을 기술한다. 2014년 처음 겪게 된 ‘성별위화감’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맞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여성이 되기 위한 트랜지션 과정을 시작한다. 호르몬 대체 요법을 의미하는 HRT를 시작한 후, 필자는 몸이나 감정의 측면에서 뚜렷한 변화를 겪었다. 이와 더불어 목소리의 성조나 발성법처럼 행동의 측면이 변화하면서 실제로는 전과 다르지 않은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여성으로 인지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문제는, 몸은 점점 ‘여성’의 모습을 띠어가는데, 사회적·제도적으로는 여전히 남성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던 과도기가 지난 지금, 필자는 의료적 트랜지션을 마치고 자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삶의 트랜지션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상, 네 편의 글은 성이 단순히 남녀 혹은 암수로 구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 따라 변화하거나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재규정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성별 이분법을 넘어, 성의 스펙트럼이라는 관점에서 생태계의 성과 인간의 성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지금까지의 성별 이분법은 의학 및 과학 지식에 의해 강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물학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생물의 다양한 성이 사회적 성의 관념에 새로운 시사점을 준다.


시대와 문화 현상을 읽는 에피의 관점

『에피』의 크리틱 섹션은 매 호마다 날카로운 관점으로 과학계 안팎의 이슈와 과학기술을 둘러싼 사회 현상을 조명해왔다. 9호에는 두 개의 크리틱이 실렸다.

사회학자인 전준은 반환경적 대통령인 트럼프 당선 이후, 트럼프 집권기를 미국의 환경과학자들이 어떻게 버텨낼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이 트럼프 정권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학자들은 연구의 방향이나 제목을 수정하여 재빨리 트렌드를 따름으로써 연구비 지원을 연장했다. 그들은 트럼프의 반환경과학 정책에 반대하며 거리 집회에 나서기도 했지만, 과학을 정치와 분리시키고, 사회와는 동떨어진 ‘순수한 호기심’의 영역으로 과학을 독립시키려는 것에 불과했다. 필자는 과학자의 질문이 더 이상 “어떻게 독립성을 획득할 것인가?”가 아닌, “사회와 과학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정책 연구자 김희원은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보호구가 되기도 하고, 시위 참여자의 얼굴을 가려주는 가면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맥락에 따라 다른 사물이 되는 ‘마스크’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초래한 인류세를 인간이 해결할 수 있을까?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와 협력해 ‘인류세’(Anthropocene)에 대한 논의를 정기적으로 실어온 ??에피??가 9호에서는 실천적 개념으로서의 ‘인류세’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인류세’가 현재 인류가 발생시킨 환경오염에 의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한 시대임을 지칭하기 위해 제안된 지질시대 단위임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제 더욱 중요한 것은 이처럼 인류가 초래한 일을 인류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인간중심주의로 회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중심이 되어 지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범순 인류세연구센터장은 분해와 재생산을 반복해온 땅의 역량에 주목한 다나 해러웨이의 ‘툴루세’, 근대성이 초래한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온 라투르의 ‘새로운 기후체제’ 및 ‘가이아 2.0’ 논의를 소개한다. ‘가이아 가설’은 1970년대에 지구과학자 러브록과 미생물학자 마굴리스가 발전시킨 것으로,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며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보았다. 렌턴과 라투르의 「가이아 2.0」 논문은 인류가 이러한 지구의 ‘자기-규제’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구가 더욱 효율적으로 재안정화될 수 있도록 ‘자기-인식’을 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프로필

이음 편집부

2021.04.0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과학잡지 『에피』는 과학과 삶을 함께 다루고자 한다. 『에피』는 원자를 다루면서 원자핵의 구조와 붕괴, 그리고 발생하는 에너지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원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도 다루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실으려 한다. 과학의 성과를 존중하지만 장밋빛 환상에 사로잡힐 생각은 없다. 오늘날 인류가 손에 쥐고 있는 과학기술은 힘이 세기 때문에 어떻게 다룰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목차

9호를 펴내며: 두 개의 성이 아닌, 성의 스펙트럼으로

[크리틱]
트럼프 시대, 과학자의 살아남기 | 전준
마스크 패러독스: 마스크는 어떻게 극적인 물건이 되었나 | 김희원

[키워드 | 젠더 스펙트럼]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세메냐의 성별 구분 논란을 중심으로 | 최은경
열려 있고 진화하는 생태계의 성결정 시스템 | 정길상
이분법을 넘어 유동하는 젠더의 역사 | 정연보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삶에 대하여: 한 트랜스여성의 트랜지션 이야기 | 희정

[컬처]
연재 | 물구나무 과학사 8: 동서양의 우주론과 보편타당하지 않은 과학 | 전용훈
SF | 정전 | 김재아
연재만화 | 과학을 그리다: 관찰과 표현의 과학사 (8회) | 김명호

[리뷰]
책 | 세계가 평화로워졌다는 통계적 헛소리 | 이경주
책 | 실리콘밸리, 혹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신화 | 이두갑
영화 | 기택의 가족은 진짜 기생충과 무엇이 다를까? | 서민

[인류세]
실천적 개념으로서 인류세, 그리고 인간의 역할 | 박범순
가이아 2.0: 인간은 지구의 자기-규제에 자기-인식을 더할 수 있을까? | 티모시 M. 렌턴, 브뤼노 라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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