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한국의 여행지들을 사실 가 본 적이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이 책에 등장한 한국의 사원들이나 이육사 문학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니 우선 순위에서 뒤로 처져있던 것일까?
작가가 다녔던 한국의 여행지를 적은 글을 읽다보면
단순한 여행 칼럼이 아닌 다양한 비교와 설명으로 진솔하고 세련된 문화 에세이를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외에 다녀온 여행지에서의 단상도 읽으면 읽을수록 촉촉한 사색의 깊이가 느껴져서 자꾸 보고 또 보게 된다.
비틀즈의 도시 리버풀이나 멕시코의 피라미드를 소개한 글들 역시
깊은 사색에 저자가 살아내온 생활의 모습들이 한데 어우러져 읽는 맛이 색다르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를 오래 한 덕분인가?
마지막 세번째 장, 글쓰기란 무엇인가?에서는 힐링을 위해 글쓰기를 하며
마음 속 밑바닥에 꼭꼭 숨겨놓았던 상처를 치유하는 지은이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혹시 동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동안 단단하게 걸어놓았던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고
이 글을 읽으며 함께 힐링해보자! 진솔한 체험과 돋보이는 사색이 상처로 헤진 가슴을 달래주기 충분하다.
역마살이 낀 듯 한국서 35년을 살다 미국으로 이주, 19년을 살다 다시 한국에 정착중.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지만 태생은 아날로그. 영화와 음악, 여행 이야기를 섞어 글을 쓰고 있다.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밥벌이로서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쓰고 싶은 이야기를 적고 내면에 묻어두었던 어두운 상처들을 끄집어내면서
삶을 성찰하고 나를 힐링해준 글쓰기의 치유력을 믿고 있다.
80년대 대부분 대학생이 그러하듯 얼떨결에 대학을 졸업당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 "뭘 하고 싶지?" 알 수 없었던 혼돈의 시간에
우연찮게 중앙일보 출판국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내가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을 의외로 잘하고(?) 즐거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기수와 공채, 특채 등 겹겹히 쌓여져 있는 언론사 신분제 사회 맨 밑바닥 단기 아르바이트의 자의식은 괴롭기만 했다.
계약직 기자로 한 계단 올라가도 유령 취급 당하는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옮겼다.
아마 이때부터 작가 의식에 뿌리 내린 '주변인'과 '마이너' 꼬리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업인으로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주변인'과 '마이너'로 살아왔다.
8년 남짓 결혼 생활 후, 이혼을 했다.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부부로 이루어진 가정이 아닌
딸 아이와 싱글맘, 이렇게 단 둘 뿐인 가정을 이끌다 소외감을 이기지 못하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건너가니 더 큰 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앵글로색슨, 히스패닉, 블랙 아프리칸⋅⋅⋅⋅ 아시안은 소수 중의 소수인종이었다.
이렇게 '주변인'과 '마이너'의 삶을 글로벌하게 경험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주변인임이 그닥 쓸쓸하지도, 마이너라는 것에 기죽지도 않을 나이가 됐다.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찾아나선 한국으로의 귀환.
이제 평생 글쓰기의 첫번째 징검다리인, 단행본을 출간하며
'내가 원하는 삶,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조금은 단단해진 자아를 만나는 중이다.
<중앙일보사 출판국 단행본팀 계약직 기자>
<우먼센스 생활무크팀 기자>
<스즈키 코지 '링' 시리즈 한국 런칭>
<미주 스포츠서울USA 취재팀장>
<미주 한겨레 취재팀장>
<미주 헤럴드경제 취재 및 사업 총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