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현상은 어딘가에는 남아 있게 마련이다.” 최신 과학으로 맞춰 보는 아틀란티스―엑소더스―테라의 연대
서양 역사를 통틀어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으로 인해 유럽 문화가 성장했고, 헤브라이즘 즉 기독교 문화가 탄생하면서 현재 우리가 서구 문명이라 부르는 문화가 자라났기 때문이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명은 격변으로 생겨났다. 그런데 그 격변이 청동기 시대 말에 일어났던 자연재해인 테라섬의 화산 분화로 인해 일어났다면 믿어지겠는가? 두 문명의 원시는 각각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에서,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고대 문명의 산실이었으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아틀란티스와 손으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켰다는 모세의 엑소더스 일화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 두 일화를 문학 작품이나 경전에 실린 이야기로 인식하여 어느 정도의 상상력과 성스러움을 용인해 그 현실성을 살펴보지 않았지만, 지질학자인 저자 좌용주는 달랐다. 『테라섬의 분화, 문명의 줄기를 바꾸다』를 통해 테라섬의 화산 분화라는 역사적 사실을 아틀란티스와 엑소더스에 접목시켰다. 두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시도를 한 셈이다.
저자는 분출물의 양이나 폭발의 결과를 연구한 그동안의 자료를 검토하여 테라섬의 화산 분화가 역사상 치명적이었던 화산들과 거의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파급력을 지녔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럼으로써 주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가정을 시작으로 아틀란티스와 엑소더스를 테라섬과 연결 짓는다. 그러고는 방사선으로 유물이나 유적의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방사성 탄소 연대학,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는 연륜 연대학 등의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테라섬의 분화 시기를 유추한다. 그리스 고대 문서, 이집트 역사 기록 역시 살피며 아틀란티스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법한 시기,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탈출했을 시기를 가늠해 본다.
그간 테라섬의 미노아 분화를 아틀란티스와 엑소더스 양쪽 모두에 연결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 또한 1963년에 발표된 존 베넷의 논문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다시금 이 책을 우리에게 선보이는 이유는 번역서나 국내 학자가 쓴 책을 찾기 쉽지 않거니와 그동안 새롭게 쌓인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과거의 결론들을 재검토하여 새로 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주제이지만, 자연재해로 과거 인류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