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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진실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역사

에밀 졸라의 진실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30%10,500
판매가10,500
에밀 졸라의 진실 표지 이미지

에밀 졸라의 진실작품 소개

<에밀 졸라의 진실> ‘책 한 권의 운명은 저자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말이 있다. 시대를 움직인 책은 당대를 뛰어넘어 이후 역사의 시금석이자 버팀목으로 자리한다. 이에 이다북스는 우리 시대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명저를 ‘이다의 이유’로 출간한다. ‘이다의 이유 02’ 『에밀 졸라의 진실』은 드레퓌스 사건 앞에서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라는 에밀 졸라의 외침을 통해 진실과 정의의 가치를 되새기고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출판사 서평

드레퓌스 사건은 지나간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양심을 향한 울림이다.

드레퓌스 사건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 사건이자 언론의 왜곡된 보도와 이로 인한 대중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국가권력은 아무 죄도 없는 한 사람을 범죄자로 옭아맸고, 국가의 권위와 명예라는 이름으로 이미 드러난 진실마저 덮었다. 그렇게 자행된 사건은 지성을 자랑하는 나라의 치욕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권유린이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을 지켜본 소설가 에밀 졸라는 펜을 들었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그로써 ‘멈추지 않는 진실’의 길을 택했다. 그것은 양심의 외침이었다. 프랑스 전역을 휩쓴 반독일 정서와 극단적인 애국주의, 반유대주의와 맞서는 것은 그 자체로 위태로운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권유린을 세상에 낱낱이 고발하며 진실의 길에 섰다.

가장 대표적인 인권유린이자
간첩 조작 사건으로 남아 있는
드레퓌스 사건

독일과의 전쟁에서 진 뒤 패배감에 젖은 프랑스 안에는 애국주의가 만연했으며, 민족주의 흐름에 맞물려 반유대주의 정서가 득세했다. 이런 중에 유대인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가 적국 독일에 국가기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되었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이들은 군중의 불안감을 악용했고, 언론은 허위사실로 여론을 선동했으며, 권력은 사건을 은폐하고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이 사건의 진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지성으로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자 했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 세상에 설 때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으며 정의 역시 자리매김한다고 믿었다. 「나는 고발한다!」를 비롯해 드레퓌스 사건 당시 그리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 밝힌 그의 외침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로
우리에게 묻고, 지금 우리를 말한다.

에밀 졸라는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진실과 정의에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한 이들은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을 드러내며 국가의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가해진 인권유린을 낱낱이 세상에 고발했다. 에밀 졸라와 그들은 ‘행동하는 지성’으로 진실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 나는 나와 함께 그의 결백을 외치는 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또다시 외치노라. 거듭 말하지만, 진실은 전진하고 있고,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드러난 공권력 남용, 인권유린, 언론의 여론 조작, 그리고 대중의 광기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그것은 그 시대만의 일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얼마나 변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멈춰 있는가? 이 책은 드레퓌스 사건 자체의 기록이기 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발걸음이다. 이것이 『에밀 졸라의 진실』을 내놓는 ‘이다의 이유’다.


저자 프로필

에밀 졸라 Émile Zola

  • 국적 프랑스
  • 출생-사망 1840년 4월 2일 - 1902년 9월 29일
  • 데뷔 1862년 문학 니농에게 주는 이야기

2014.10.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 : 에밀 졸라 (Emile Zola,Emile Edouard Charles Antoine Zola)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이탈리아 출신인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1840년 4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나 1862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청소년 시절을 프랑스의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보낸다. 그곳의 중학교에서 만난 세잔과는 남부의 산과 들판을 같이 쏘다니며 목가적 시를 암송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가꾼다. 1847년 아버지의 죽음 이후 파리로 올라와서 궁핍한 시절을 겪지만, 대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접하면서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나간다. 토목기사였던 아버지가 1847년 사망하자 홀어머니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간다. 대학교 입학 자격시험에 실패하고 나서 1862년부터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며 여러 작가를 접한다. 1866년 아셰트 출판사를 사직하고 본격적인 글쓰기에 들어간다. 특히 아셰트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진보적 사상가들과 문학계와 교류하게 되고, 신문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기질을 통해 본 자연의 한 측면」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밝힌다.

아셰트사를 떠나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졸라는 여러 신문에 논평을 기고하는데, 특히 당시 마네와 조만간 인상주의자로 불릴 화가들을 옹호하면서 보수적인 아카데미 미술학파에 대항하는 젊은 논객으로서의 입지를 굳힌다. 졸라는 제2제정을 비판하는 공화파 신문들을 통해 점점 더 과격한 기사들을 발표하면서, 이 체제를 철저히 비판하는 『루공가의 운명』을 기점으로 『루 공 마카르 총서』의 연작을 시작한다. 20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 ‘루공 마카르 총서’(1871~1893) 중 『목로주점』(1877)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경제적인 생활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파리 근교 ‘메당’에 별장을 샀는데 그곳은 자연주의 소설가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거기서 모임(메당의 저녁)을 가지면서 졸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연주의 소설의 선두주자가 된다. 그의 소설과 논평들은 언제나 많은 스캔들을 동반하지만 다행히도 제2제정이 몰락하면서 법적인 제재를 모면하게 된다. 이후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파(위스망스, 모파상, 세아르 등)의 지도자로 인지되고, 1880년 이들과 함께 작업한 『메당의 야화』는 일종의 자연주의 선언서가 된다.

낭만주의 문학을 존중했지만 감정과 사실을 구별하며 당시 사회적 정치적 면모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사실주의 작가들을 칭찬하며 급기야 ‘자연주의 문학’의 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킨다. 문학비평사에서 당시 작가들에게 금기시되던 요소인 돈, 섹스를 건드렸다고 평가된다. 첫 장편소설 『테레즈 라캥』(1867)이 출간부터 적나라한 묘사로 심한 비판을 듣자 소설 앞부분에 따로 서문을 보태기도 한다.

그러나 평론계의 격렬한 반발을 몰고 온 『대지』 이후 자연주의 문학가들의 해체적 글쓰기에 대립하는 새로운 저항의 글쓰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주의 시대는 끝을 향해 간다. 『파스칼 박사』를 끝으로 총 스무 권의 『루공 마카르 총서』 연작이 완성된다. 이 총서의 완성 후 졸라는 자신의 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룬 새로운 소설 연작을 시작한다. 『루르드』와 『로마』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실패를 다뤘으며, 『파리』(는 과학에 대한 신념과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인 원리들로 인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파리』를 막 완성한 직후 1898년 1월 ‘나는 고발한다!’라는 장문의 글을 신문에 실어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드레퓌스 사건에 목소리를 싣는다. 군대, 정치, 법의 권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드레퓌스가 희생되었다는 입장을 펼쳐서 모독죄로 1년 구형을 받게 돼 영국에서 1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다. 문학가로서 최고의 명예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던 시점에서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것은 그의 모든 명예를 실추시킬 위험이 있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드레퓌스 사건의 소송 재개를 위해 싸운다. 1899년 드레퓌스 사건은 재심에 회부되고 졸라는 프랑스로 돌아온다. 이 사건 동안 졸라는 조레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접촉하게 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들은 노동의 재구성과 부의 분배에 대한 푸리에의 순수한 무정부주의에 더 이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1888년부터 입문한 ‘사진’에 빠져서 현상까지 직접 했는데, 자화상 및 가족 친지들의 일상생활을 사진으로 남기고 1900년 프랑스 파리만국박람회에서 르포 형식의 사진을 많이 찍는다. 치밀한 자료 수집을 기반으로 집필 작업을 한 졸라의 성향과 부합되는 취미다.

『4복음서』는 새로운 혁명적 사회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다. 『풍요』, 『노동』, 『진실』이 출판되었으며, 후속 작품으로 『정의』가 쓰일 예정이었으나 1902년 9월 29일 막힌 굴뚝으로 인한 가스 중독으로 사망함으로써 그의 마지막 작품 『정의』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사고에 연루된 의문이 풀리지 않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살해되었다는 추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 1908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팡테옹으로 이장되어 현재 빅토르 위고, 알렉상드르 뒤마와 같은 공간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역 : 이진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에서 국제회의 동시통역 석사학위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에서 통번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출판번역가 모임 ‘바른번역’의 회원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목차

서문
쉐레르 케스트네르 씨
조합
조서
청년들에게 보내는 편지
프랑스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고발한다!’―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
배심원들을 향한 최후진술
총리 브리송 씨에게 보내는 편지
정의
제5막
알프레드 드레퓌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
상원에 보내는 편지
공화국 대통령 에밀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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