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랑하고 이별한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작가 김금희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이야기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작가 김금희가 데뷔 13년 만에 첫번째 연작소설을 선보인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명랑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반짝이는 일곱편의 소설 속에 담아냈다.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담은 이 연작소설에는 쿠바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에 작은 기적을 만난 방송작가 은하, 사랑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 밤들이 모두 특별했음을 깨닫는 영화학도 한가을, 아홉살의 크리스마스에 처음 만난 남자애와 스무살까지 이어온 인연을 떠올리는 진희, 오랜 세월 함께한 반려견을 잃고 그 상실을 치유하고자 오래된 인연들을 다시 찾은 세미, 맛집 사진만 보고 상호를 맞힌다는 인플루언서 현우와 그를 촬영하는 방송국의 피디 지민 등 다채로운 인물들이 그려내는 따스한 크리스마스 풍경으로 가득하다. 서로의 아픔을 감싸는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유머로 위로를 주는 김금희 작가의 이야기는 또 한번 우리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창비 온라인플랫폼 ‘스위치’에서 일부를 연재할 당시 이 작품들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는 독자들에게 일일이 답글을 달며 소통했던 김금희 작가는 이번 책에 또한 독자에게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았다. 작가의 친필이 인쇄된 크리스마스카드는 초판에 한하여 만나볼 수 있으며, 색다른 표지 디자인으로 일반판과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특별 에디션은 ‘스위치’와 동네서점을 통해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렇듯 풍성한 이벤트와 함께 찾아온 『크리스마스 타일』은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처럼 기적 같은 풍경을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책 속에서
은하가 교회도 다니세요? 하고 다시 묻자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때만 간다고 대답했다. 그날이 주님 그 냥반 생일이라 기분이 좋은 그 냥반이 기도를 잘 들어줘서 간다고. 은하는 그 말에 푹 웃었다가 농담인가 진담인가 알 수 없어 다시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가면 어떤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뭐 바랄 게 있겄어, 그냥 아프지 마라, 허지.”
할머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답했다.
“아프지 마라.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 그 말벢에 더 있겄어.”
그것은 암 선고 이후부터 자신이 내내 하고팠던 기도이기도 했으므로 은하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은하의 밤」 55~56면)
영화를 보다 밖으로 나와도 해는 중천이었고, 그렇게 손잡고 가는 길에 할머니는 인생에 필요한 경계랄까 교훈이랄까 하는 것들을 진지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말은 “너무 상한 사람 곁에는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꿈을 잃지 마라,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돼라, 근면하라처럼 흔한 당부가 아니라서 인생의 아주 비밀스러운 경계를 품은 듯 느껴졌다.
그리고 대개 교훈들은 실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가 행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실수, 너무 상한 사람 곁을 지키고 말 것을 암시하고 있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여러번 의심했지만 영화를 보고 할머니와 돌아오던 그 한낮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는 믿었다. 예술학교 학생으로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으니까. 비록 휴학 중일지라도 말이다.(「데이, 이브닝, 나이트」 69면)
점심을 먹던 날, 옥주는 예후이에게 중국어 강습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옥주가 윤슬의 얘기를 듣고 과외를 부탁한 건 아니었다. 그저 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입을 열어 지금과는 다른 숨을 쉬어보고 싶게 하는 사람. 그런데 옥주에 관해서는 과거도 현재도 알지 못해서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면 되는 사람.(「월계동(月溪洞) 옥주」 113~14면)
화려하게 빛나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도 꺼졌을 즈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살의 내가 하바나 클럽 앞에서 우두커니 맞고 있었던 눈이, 그뒤로 수십번 맞닥뜨렸지만 한번도 시시하지 않았던 그 작고 특별한 것들이.(「하바나 눈사람 클럽」 178면)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 사함을 선언하듯 공중에서 끝도 없이 내려오는 그 눈송이들이. 그것은 비와 다르게 소리가 없고 쌓인다는 점에서 분명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렇게 걷는 동안 소봄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반짝이며 지민의 말이 계속되었다. 소봄은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그날의 밤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첫눈으로」 221면)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마음의 슬픔에 저항해가던 세미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설기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마주친 둘은 한동안 서로를 살폈다. 괜찮을까, 마음을 주어도 사랑해도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 날 아프게 하지 않을까. 이윽고 먼저 다가와 안긴 것은 세미가 아니라 설기였다.(「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258면)
그러니까 눈 내리는 희귀한 부산의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했던 일들은 겨우 그런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 있다는 것.(「크리스마스에는」 3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