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시리즈는 색으로 읽는 공포와 공상을 주제로 한다. 특정 색을 중심으로 하거나 여러 색을 병치하는 방식으로 공포와 공상을 전하려고 한다.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카라 케디”라는 검은 고양이를 제외하곤 철저히 혼자 생활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저녁 창가를 비추더니 벽을 따라 움직이는 정체불명의 어떤 것에 그만 공포를 느낀다. 문제는 카라 케디까지 이 대상을 향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 공포가 전염되고 증폭된다는 점이다. 검은 고양이의 미신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와 이미지, 텔레파시 능력까지 반영하는 단편이다. <h4><책 속에서></h4>1937년 1월 13일 나는 세상을 등지고 슬그머니 들어온 이 쓸쓸한 은신처, 툴롱(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옮긴이)에 있는 내 작은 집에서, 내 방에서 혼자 저녁 내내 쓰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 혹사할 때, 활동적인 삶의 여러 가지 괴로운 흥분 속에서 지나치게 힘겨운 역할을 맡을 때 급속히 늙는다. 내 나이 아직 오십이 되지 않았지만 머리가 하얗게 샜고 생각은 재처럼 회색이다. 나는 내 방에서 혼자서 글을 쓰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검은 고양이가 나와 함께 있으니까. 녀석은 내 것과 똑같이 생긴 전용 안락의자에서 몸을 동글게 오그리고 잠들어 있다. 황갈색 덮개를 씌운 이 크고 육중한 쌍둥이 의자에서 녀석과 나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고양이 이름은 카라 케디, 튀르키예 어로 “검은 고양이”라는 뜻이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짓기 위해 많은 상상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카라 케디는 튀르키예, 에윱의 성스러운 인근지역인 스탐불에서 태어났다. 내가 체르카시아 아가씨와 깊은 사랑에 빠졌던 옛 시절에 말이다. 아, 그녀의 머리가 얼마나 금발이었던가, 피부는 또 얼마나 갈색이었던가! 그녀의 키스는 또 얼마나 달콤했던가! <h4> </h4><h4>옮긴이 미스터고딕 정진영</h4>미스터 고딕과 정진영은 함께 기획하고 번역하는 팀이다. 미스터 고딕은 생업을 하며 틈틈이 준비해 온 원고들로 전자책을 만들고 있다. 고딕 호러와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지만, 때때로 현실과 일상이 더 공포스럽다고 생각하곤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때 특히 기쁘다. 그런 기쁨을 출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진영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들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검은 수녀들』, 『잭 더 리퍼 연대기』, 『코난 도일 호러 걸작선』, 『죽이는 로맨스』, 『광기를 비추는 등대 라이트하우스』 등을 번역했다.
프랑스의 해군 장교이자 작가로 본명은 프레데리크-샤를 바르곤(Fredéric-Charles Bargone). 『문명인Les Civilisés』으로 1905년 제3회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위로 임관한 이후 많은 여행을 한 것이 이후 작품 활동의 자양분이 됐다. 겔랑의 향수 “미츠코”가 파레르의 소설 『전투La Bataile』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유래한 것은 유명한 일화 중에 하나다. 또 1932년 5월에는 파리 도서전 개막식에서 파레르가 프랑스 대통령 폴 두메르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대통령이 피격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폴 두메르 대통령은 결국 사망하는데,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파레르가 암살범과 격투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편 연기Fumée d'opium』, 『피살된 남자L'homme qui assassina』, 『극동 스케치Croquis d'Extrême-Orient』, 『록슬란Roxelane』 외에 많은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