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계속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 출신은 과연 인구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까? 1990년 부산에서 태어나 대구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아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그러다 27살, 덜컥 결혼했다. 그것은 권수민이라는 사람의 선택 중 제일 성급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서울로 올라와 산 지 8년 차가 되어가지만, 그 시간 동안 누구나 꿈꾸는 멋진 커리어를 쌓아 본 경험은 없다. 여전히 ‘안녕하세요’ 짧은 한마디에 바로 ‘경상도 분인가 봐요.’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 대답에 서울살이 8년 차라며 머쓱하게 웃을 뿐이다. 말투마저도 고쳐지지 않는 부산 태생의 숨길 수 없는 바다 사랑. 그 사랑의 마음이 간절히 넘쳐날 땐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혼자 강릉으로 떠날 준비를 해본다. 하지만 결국에 두 박 씨를 이고 지고 가야 하는 평범한 아이 엄마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아이 엄마로 태어나 자라온 사람은 없다. 평범한 모범생으로 보낸 10대 시절을 지나 술로 절인 20대를 보낸 공대 여자였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남들보다 특별히 못나고 미숙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남들처럼 특출 난 재능도 없고, 꿈이란 것은 학점이 돕지 못해 차마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뭐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또 되는 일 하나 없이 흘러가는 대로 20대 시절을 보내 버렸다. 그 수없이 많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던 시절을 글을 쓰기 전까지는 애써 삼키고 지내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하나같이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았던 걸까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며 자신을 칭찬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어쩌면 힘든 당신의 어떤 순간을 위로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누구나 본인만의 반짝였던 순간과 고통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때의 당신은 어땠나요? 무엇을 기억하고 있고 또 어떤 것을 억지로 잊고 살아가고 있나요?”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어느 목차를 열어봐도 이 질문을 맞닥뜨릴 것이다.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오지 않은 사람은 없다. 행복한 순간들이 단 한 톨도 없는 사람도 없다. 『이불은 더워, 에어컨은 추워』는 후회의 감정 뒤로 숨어버린 과거의 나를 찾아 잘 정리해 보고 이제 남은 시간을 한 번 열심히 쌓아보고자 쓴 첫 에세이다. 15일간 글쓰기 모임에서 나를 알아보기라는 주제로 쓴 글을 엮어냈다. 나다움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람들, 나의 내면 깊숙한 정리되지 않은 감정 서랍장을 열어 보고 싶은 사람들을 여기 15일간의 글쓰기 멤버로 초대한다. 엉망이던 과거의 나의 감정을 정리하며 멤버들에게 받았던 다정한 응원과 토닥임을 독자에게도 주고 싶다.
강릉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두 박 씨에게 “나다운 게 뭘까 대체?”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정적이 흐르는 틈 사이로 아이가 거꾸로 우물쭈물 물어온다. “엄마, 다운은 무슨 뜻인 거야?” 7살 아이에게 ‘다운’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큰 목소리로 자기다운 게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겠단다. “엄마, 나다운 건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거야. 맞지?” 마치 1 더하기 1은 2라 말해 주는 듯한 표정으로 본인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7년 차 인생도 ‘나답다’의 질문에 금세 대답할 수 있는데, 왜 34년 차인 나는 어느 한 마디조차 꺼내기 어려운 것일까? 아이는 한참을 더 고민하던 나에게 엄마답다는 본인만의 정의를 하나 꺼내 주었다. ‘엄마는 에어컨 바람은 추워하고 이불 덮는 건 더워하는 사람.’ 나를 알아보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갈팡질팡 헤매고 있다. 나의 속을 열어보아도 해답이 손에 걸리지 않는 듯해 어렵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가지씩 붙잡고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