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수해가 유례없는 혹독한 재난사고로 번져 깊은 상흔을 남긴 올여름, 정부는 재난의 복구와 재건에는 무관심한 채 대상이 불분명한 ‘카르텔 척결’을 운운하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는 한편 핵심적인 공공 의제를 은폐하고 있다. 본지 편집 부주간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이 난폭한 정치적 정동으로부터 끊임없이 생산되는 적대의 구조와 사회적 혐오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더 늦기 전에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을 넘어 새로운 정치의 시야를 만들어낼 삶의 자리”(「책머리에」)를 긴급히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창작과비평』 2023년 가을호는 200호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마음으로 대전환을 향한 실천적 과제를 고민하는 종요로운 글들을 묶어 낸다. 특집에서는 ‘한국이라는 서사’라는 주제 아래 최근 정치, 문화 등 다방면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지 사회정치, 문학사, 한국학, 동아시아론을 거쳐 다각도로 점검한다.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에 관한 실질적 쟁점을 짚은 대화와 군비경쟁 및 핵전쟁의 위험 속 한반도 평화를 고민하는 논단 역시 급변하는 세계적 흐름 앞에 선 우리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역사학자 고 강만길 추모 산문과 동물행동학자 이원영의 ‘내가 사는 곳’ 산문 및 가사노동자 권리 투쟁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현장란도 풍성하며, 제주와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역작 『제주도우다』의 작가 현기영의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