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마운드 빌더 : 크툴루 신화 연대기 ｜ 러브크래프트 서클 32

<고분, 마운드 빌더 : 크툴루 신화 연대기 ｜ 러브크래프트 서클 32>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고분, 마운드 빌더The Mound」(이하 「고분」)는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대필작은 물론 크툴루 신화 전체를 통틀어서도 수작으로 꼽힙니다. 러브크래프트가 질리아 비숍의 의뢰를 받아서 대필한 작품인데요. “인디언 고분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머리 없는 유령이 출몰한다. 종종 이 유령은 여자의 모습을 띤다.” 비숍은 이렇게 간단히 플롯을 구성한 뒤 러브크래프트에게 대필을 맡겼다고 하죠. 이것이 너무 평면적이고 단조롭다고 생각한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크툴루 신화와 공포를 결합하여 중장편으로 완성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중에서 이례적으로 외계 문명과 인간 문명의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광기의 산맥』에 버금가는 치밀한 묘사뿐 아니라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유토피아가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요컨대, 이 작품의 “큰-얀 K'n-yan”은 고도의 기술 문명 덕분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빈곤을 극복하고, 소수자의 효율적인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종교의 역할을 축소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큰-얀의 타락을 지켜보는 화자(자마코나)의 입을 통하여 러브크래프트는 기계 문명이 가져온 표준화되고 틀에 박힌 삶의 규칙성에 대한 무감각과 히스테리를 당대 서구 문명의 단면으로 보고 있는데요.
「고분」은 분량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1930년대 초에 《위어드 테일스》의 거절이 있은 이후 좀처럼 발표 지면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미 대필료를 지불했던 비숍은 당시 자신의 대리인이었던 프랭크 벨넵 롱(Frank Belknap Long)에게 작품 분량을 줄여달라고 부탁합니다. 롱도 축약본이 더 상품성이 있겠다고 판단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러브크래프트 특유의 장중하고 음울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이 작품에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는군요. 결국 수정이 아닌, 몇 장씩 빼는 방법으로 축약한 후에 출간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이 또한 별 수확이 없었다고 하죠.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오거스트 덜레스가 수정한 축약본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축약본 대신에 원본이 출간된 것은 1989년 러브크래프트 사후 50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책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부를 신천지로 생각하지 않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다. 이런 생각에 일리가 있는 이유는 서부에 우리만의 독특한 문명이 일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 탐험가들이 선사시대부터 서부의 평원과 산맥에서 흥망 했던 삶을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우리는 2500년 역사의 푸에블로(아메리카인디언 공동체―옮긴이) 마을에 일고의 가치도 두지 않는다. 고고학자들이 기원전 17000년 내지 18000년으로 추정하는 멕시코의 유사 돌밭 문화에도 거의 감흥을 받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들, 이를 테면 현재 몇 개의 조각 뼈와 고대유물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원시인이 멸종동물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등의 소문까지 들려오는 터라 서부가 새롭다는 생각은 급속도로 사그라지고 있다. 유럽인들은 대개 머나먼 고대성과 우리보다 훌륭했던, 연속적인 삶의 궤적으로부터 켜켜이 쌓인 퇴적물에 주목한다. 한 영국 작가가 애리조나에 대해 “달빛이 희미한, 그 자체로 너무도 아름다운 지역, 날 것 그대로 장구한 고대의 외로운 땅”이라고 말한 것이 불과 이삼년 전이다.
그러나 나는 서부에 대해 어마어마한―무섭기까지 한―태고성의 깊은 울림을 느끼고 있다. 이 느낌은 오롯이 1928년에 벌어진 한 사건에서 기인한다. 75퍼센트는 환각이었노라 치부하고 싶건만 내 기억에 섬뜩하리만큼 견고한 인상으로 남아서 떨쳐버리기 어려운 사건. 이 사건은 오클라호마, 내가 아메리칸 인디언 인종학자라는 직업상 자주 찾았고 그 전에도 퍽 낯설고 당혹스러운 문제들과 직면하게 했던 그곳에서 벌어졌다. 오해마시라. 오클라호마는 단순한 개척자와 선전꾼의 미개척지 그 이상의 지역이니까. 이곳에는 옛날 옛적의 기억을 간직한 오래고 오래된 부족들이 있다. 북소리가 가을날의 침울한 평원 너머로 줄기차게 울릴 때, 인간의 영혼은 속삭이는 원시의 존재들에게 위험하리만큼 가까이 이끌려간다. 나는 백인이고 동부 출신이나, 언제든 내게서 진짜 전율을 끄집어낼 수 있는 뱀의 조상 즉 이그 제식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 환영한다. 이런 것에 대해 나는 너무도 많이 듣고 보아서 “세련되기”에는 글렀다. 1928년의 사건은 특히 그렇다. 그냥 웃어넘기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나는 당시 백인 정착민 사이에서 떠도는, 그러나 인디언의 확증적인 진술이 가미된―내가 보기엔 궁극적인 출처가 인디언이라고 느껴지는―다수의 유령 이야기를 추적하고 그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 오클라호마를 찾았다. 야외를 무대로 하는 이 유령이야기들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백인들의 입을 거치면서 밋밋하고 단조롭게 들리긴 했으나, 어딘지 원주민 전설의 강렬하고도 음산한 특징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전부다 오클라호마의 서쪽 지역에 있는, 고대유물로 보이는 거대하고 쓸쓸한 고분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같이 극도로 이상한 생김새와 장비를 지닌 유령들과 관련이 있었다.
가장 오래된 괴담 중에서 가장 흔한 이야기는 1892년에 꽤나 유명했다. 당시에 존 윌리스라는 연방 보안관이 말 도적떼를 쫓아 고분 지역으로 들어갔고, 한밤의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 대군과 기병대들이 맞섰다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전투에서 말발굽이 휘몰아쳤고, 난타전이 오가는 가운데 금속이 부딪치는 쨍그랑거림과 전사들의 억눌린 비명 그리고 사람과 말이 쓰러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이것은 달빛 속에서 벌어진 일로, 존 윌리스와 그의 말은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 소음은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귀에 생생하면서도 멀리서 바람결에 실려 오는 소리처럼 나지막했고, 군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윌리스는 나중에야 소리가 들려온 곳이 악명 높은 유령 출몰지로, 정착민과 인디언 모두 기피한다는 걸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창공에서 전투 중인 기병들을 똑똑히 혹은 어렴풋이 목격함으로써 애매모호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정착민들은 유령 전사들에 대해 그들과 비슷한 부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들이 더없이 독특한 옷차림과 무기를 지녔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나돌면서 허공의 말들이 진짜 말이었는지조차 확신이 가지 않는다는 식으로까지 진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