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
2017년 12월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건네 화제가 된 책.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쏟아진 저서들 중 “걸작”이라는 찬사가 쇄도하며 새로운 표준 저작으로 손꼽힌 책.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의 한국어판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에서 전쟁을 적극적으로 계획한 국가 집행부는 없었다. 어느 나라든 내게는 ‘방어적’ 의도가, 상대에게는 ‘공격적’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핵심 의사결정자들은 자국을 최우선하는 자신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전망하지 못했고, 상호 신뢰 수준은 낮고 적대감과 피해망상의 수준은 높은 집행부들이 서로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속사포처럼 상호작용한 결과, 최악의 대참사가 일어났다.
저자는 그들의 결정을 최대한 그 위치에서 이해하기 위해, ‘왜’가 아니라 ‘어떻게’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주목한다. 그들은 역사의 비인격적인 전진 운동에 보조를 맞춘 조력자, 체제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라, 행위능력으로 가득하고 충분히 다른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역이었다. 전쟁은 불가피한 귀결이 아니라 그들이 내린 연쇄 결정의 정점이었다.
21세기 세계 정세는 100년 전 유럽과 매우 흡사하다. 냉전이 끝난 이래 안정적인 세계 양극 체제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러 세력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와중에 제국들이 쇠퇴하고 신흥 국가들이 부상했다. 1914년 여름 위기의 경과를 읽는 독자들은 필시 그 생생한 현대성을 알아차릴 것이다. 특히 우발적 분쟁의 가능성과 함께 살아온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는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 교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유럽 근현대사와 정치사상, 지성사를 연구하고 있다. 시드니대학, 베를린자유대학,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다. 영국 학술원 회원이며 2015년 영독 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작사 작위를 받았다. 프로이센과 독일의 역사를 다룬 2006년 저서 《강철 왕국: 프로이센의 흥망, 1600~1947(Iron Kingdom: The Rise and Downfall of Prussia, 1600-1947)》로 울프슨 역사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받았으며, 이 책의 독일어판 출간을 계기로 독일사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인 독일역사학계상을 비독일어권 학자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그 밖에 저서로 《카이저 빌헬름 2세: 권좌의 삶(Kaiser Wilhelm II: A Life in Power)》, 《개종의 정치: 프로이센의 선교적 개신교와 유대인, 1728~1941(The Politics of Conversion: Missionary Protestantism and the Jews in Prussia, 1728-1941)》이 있고, 편저서로 《문화 전쟁: 19세기 유럽의 가톨릭-세속 분쟁(Culture Wars: Secular-Catholic Conflict in Nineteenth-Century Europe)》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