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는 삼나무 숲의 향연 1. 끊어질 듯한 허리 통증과 피곤에 절은 몸뚱이. 침대에 누워 두 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을까. 깊이 잠이 든 것도 아니었다. 뒤척이다 일어났을 뿐 피곤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헌데 순간 몰려드는 이 낯섦의 정체는 무엇일까? 익숙한데 모든 것이 낯설다. 이 공간과 이 시간, 불규칙한 호흡. 생소함의 벌레들이 일순간 내 온 몸에 퍼져 들어오는 듯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무엇 때문인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숨을 뱉어내듯 문을 열었다. 회색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했다. 기분 좋을 만큼의 딱 그 정도의 바람이 불었다. 적당히 강한 바람에 삼나무의 흔들림이 좋았다. 조금씩 정신이 깨어나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낯선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의자를 밖으로 꺼내와 앉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삼나무 숲의 향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제주도.’ 그 순간 강한 바람 한줄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지나온 내 인생 전체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서귀포 위미 작업실 책상 앞에선 여전히 무성한 삼나무 가지들이 바람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2. 꽃다지는 집회 현장에서 불리고 사랑 받았던 민중가요를 일상에서도 사람들이 편하게 꺼내 들을 수 있기를 원했고, 그런 음악적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때쯤이었나 보다. 내가 운 좋게도 꽃다지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게. 아마도 꽃다지가 초창기의 음악색깔을 계속 유지하려 했다면 나의 보컬 색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꽃다지는 길을 찾고 있었고, 나 또한 나의 길을 찾고 있었다. 절묘하게 그 두 길이 1998년 만났다. 그 후로 전국의 수많은 현장을 찾아 다녔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수많은 공연을 소화해 냈고 수많은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쉼 없이 달려온 꽃다지 14년의 활동은 2012년 5월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꽃다지 활동을 정리하고 미련 없이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에 연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음악을 할 수 있는 조건도 경제적인 문제가 해소 되어질 기미도 전혀 보이질 않았다. 14년의 꽃다지 활동은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방전 된 상태였고, 심한 자학과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 생활의 행복은 물 건너 간지 오래였다. 그 어느 하나도 기댈만한 것들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숨 쉴 수 없는 고통이 나를 압박해 왔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모습으로 꽃다지 활동을 계속 해 나간다는 것은 ‘나.쁜.짓’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나 꽃다지에게 있어서 정리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꽃다지를 정리하면서 일이 년 음악을 쉬어야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음악을 쉬게 되면 다시는 음악을 못하게 될 거란 두려움과 제주에 내려가서 당장 수입이 될 만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할 거란 데서 오는 고민이 깊어갔다. 결국 쉽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목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몸도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솔로 음반을 준비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하자는 거였다. 허나 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거라는 걸 나는 이미 그때 알고 있었다. 3. 제주에 있으면서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건 나의 오만이던가 아니면 철없는 행동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그렇다고 내가 설 수 있는 공연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닌 그곳에서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매번 비행기를 타고 육지를 오가며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바다 건너 제주에 살고 있는 나를 불러주기라도 할 것인가. 현재의 내 상태는 이 활동들을 버텨낼 에너지가 있는 건가. 막막한 질문만이 돌아왔다. 답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제주로 내려온 것은 다시 나를 계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방전 되고 망가져 버린 내 자신을 보며 이대로 끝날게 아니라면 다른 모습으로 다시 계획하고 살아나야만 한다 생각했다. 충전이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다. 난 꽃다지에서 가졌던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그 꿈을 개인 활동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고민을 했고 지금도 그 고민은 진행형이다. 앞으로 내가 작업하고 활동해 나가고자하는 음악의 방향을 ‘ROADSONG’ 이라 잡았다. ROADSONG. 앞으로 채워가야 할 것들이 많은 내 음악의 이름이다. 조성일 첫 음반 ROADSONG ‘시동을 걸었어’는 그 첫 시작인 것이다. 4.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작이 현실이 되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정규 음반까지 내놓을 수 있을지는 가늠도 하지 못했다. 제작비 모금액에 따라 미니 음반이나 아니면 온라인상에서 한 두 곡정도 발표 하자는 게 처음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무모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년 반의 긴 시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제작비 모금의 결과는 예상을 넘는 큰 성과를 내었다. 많은 사람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참여에 힘입어 정규음반 제작이라는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하고 갚아나가야 할지. 다시 내가 노래하고 활동 할 수 있도록 일어서게 해 준 많은 이들에게 온 마음을 담아 이 음반을 보낸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과 활동들이 지켜져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뢰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 더 고마움을 전한다. 남쪽으로 내려와 1년 6개월 동안 숱하게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이 음반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제작비 모금에 참여해주신 소중한 분들, 그에 못지않게 작업에 참여해 고생하고 함께 해준 이들, 그리고 걱정해준 주변 지인들이 있어 이루어진 일이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다시 고마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