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한국사상선 제16권 『최제우·최시형·강일순: 개벽 세상을 꿈꾸다』는 조선 후기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동학의 2대 교주 최시형, 그리고 조선 말 증산교 창시자인 강일순 등 한반도 후천개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의 삶과 사상을 정리한 책이다. 태초의 천지개벽이 하늘과 땅이 열린 물리적 현상이라면, 후천개벽은 인간의 정신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 사회적 전환을 가리킨다. 지배층의 부패와 탐관의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봉기하는 와중에 서양 문물을 맞닥뜨리며 혼란에 빠진 조선조 말기에 이 후천개벽의 이념이 백성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다. 이는 수운 최제우에서 비롯되어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을 거쳐 소태산 박중빈에 이르기까지 여러 한반도 사상가들의 주요한 주제였으며, 현대 자본주의에 와서도 인간 각자가 ‘사람다운 삶’을 사는 데 여전히 절실히 탐구해볼 만한 화두다. 이 책에서는 최제우, 최시형, 강일순의 글을 소개하면서 한반도 고유의 사상적 자산인 후천개벽의 토대를 생생히 확인하고자 한다. 한반도 개벽사상을 정초한 이름들, 최제우·최시형·강일순
수운 최제우는 1824년 태어나 퇴계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고 있던 부친 최옥으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어려서부터 출중한 글솜씨를 가졌음에도 재혼한 어머니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고, 이 일은 최제우가 조선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생애 내내 유학을 공부했으나 이는 선친의 정통 유학 계승보다는 ‘유학 극복’의 공부에 가까웠다. 17세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상심에 빠진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방랑길에 나선다. 이후 10년간 한반도 백성들의 삶 저변을 관찰하고, 서학(천주교)이 침투한 민간의 풍토를 면밀히 살핀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최제우는 조선의 지배질서 유교체제를 탈피하는 사상적 대전환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그 뒤로 서학을 접하면서 그 교리를 공부하면서도, 최제우는 자신이 품은 시대적 고민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는 서양의 기독교가 하늘과 인간을 각기 분리된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졌음을 비판하며 서학과는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차근차근 다져간다. 그러던 중 37세가 된 1860년에 ‘내림 체험’(강령, 계시 체험)을 겪으면서 ‘하늘님’으로부터 천도(天道)와 함께 21자 주문과 영부(靈符)를 받는다. 최제우는 그때 받은 주문과 영부를 토대로 백성들을 이끌고 덕을 펼치는 활동을 벌인다. 신분차별을 없앤 평등의 공동체, 빈부를 가리지 않는 상호부조의 공동체 등을 내세웠는데, 이 같은 포덕 활동은 당시 처참한 삶을 영위해가던 백성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이 책에서는 최제우의 『동경대전』을 실으면서 동학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시(侍, 모심) 정신을 소개한다. 시란 인간이 각자의 영성을 확립하면서 이웃과 사회와 영적으로 일체가 되는 경지를 지향해야 함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