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과학기술학의 대가이자 생태주의 정치철학을 독보적으로 제시해온 프랑스 철학자 브뤼노 라투르가 집필한 최고의 대작으로 불린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라투르 사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서구 근대성이 낳은 온갖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헤치고 그 해법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투르는 서구 근대인과 그들을 따라 근대화를 추구한 비서구 근대인이 ‘자연’과 ‘사회’를 구분하고, ‘객체’와 ‘주체’를 갈라놓는 이분법으로 인해 정치적 극한갈등과 기후변화라는 위기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요컨대 근대인은 자신과 타자를 파악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 잘못된 이분법의 좌표계로 세상을 재단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투르는 또 하나의 근대성 비판을 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근대인을 대상으로 삼았던 서구 인류학의 시선을 반전시켜 놀랍게도 근대인 자신을 인류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근대인이 추구해온 과학, 기술, 정치, 경제, 종교, 예술, 도덕, 법 등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근대적 가치와 제도의 실상을 밝히고, 열다섯 가지 존재양식의 개요를 제시한다. 서구와 비서구, 인간과 비인간의 뒤얽힘이 극적으로 증가하는 인류세 시대에 대응하여 한층 더 다원적이고 생태적인 대안적 좌표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다. 이로써 이 책은 근대화의 폭력과 오류를 넘어 생태화의 길로 나아가며 비근대인, 비인간, 그리고 지구와 함께하는 새로운 ‘외교’의 가능성을 연다.
1947~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주 농장 가문에서 태어났고, 부르고뉴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 1975년 투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리 국립광업대학, 런던 정치경제대학,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에 재직 중이다. 1970년대 초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당시 근무한 ORSTROM(개발과 협력을 위한 프랑스과학연구소)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크 연구소에서 민족지(民族誌) 연구를 하게 된다. 첫 저서인 『실험실 생활』(1979)은 영국의 과학사회학자인 스티브 울가(Steve Woolgar)와의 공저로 출간 이후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라투르는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의 국립광업대학의 혁신사회학센터(CSI)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과학사회학자인 미셸 칼롱(Michel Callon)과 협력하게 되었다. 그와의 지적 교류를 통해 라투르는 1980년대 초부터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약칭 ANT)의 기본 틀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후 영국의 과학지식사회학자인 존 로(John Law)와 더불어 세 사람이 ANT를 정립했다. 1987년에 출간된 이 책 『젊은 과학의 전선(Science in Action)』은 칼롱과의 7년에 걸친 협력을 기념하며 그에게 헌정되어 있다. 라투르의 다른 주요 저서로 『미생물: 전쟁과 평화』(1984), 『프랑스의 파스퇴르화』(1988),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1991), 『자연의 정치학』(1999), 『판도라의 희망』(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2005),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201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