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화이트 피플」은 아서 매컨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작가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도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주목을 많이 받아왔고, 호러 지형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인데요. 러브크래프트 또한 매컨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고, 그 흔적은 크툴루 신화 속에 짙게 남아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분위기와 예술적 가치 면에서’ 이 작품을 극찬하는 동시에 '노련한 선택력과 절제의 승리’라고 호평합니다. 계속되는 그의 말처럼 '암시와 폭로를 서서히 곰비임비 풀어가는' 매컨의 글쓰기 전략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는데요. '어린아이의 재잘거림' 같은 분위기는 서서히 기묘하고 신비한 마법의 세계로 전환됩니다. 매컨의 해박한 오컬트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죠. 「화이트 피플」엔 매컨이 창조한 단어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 중에서 여럿이 크툴루 신화에 직접 차용됩니다. 아클로 문자, 부어, 부어 사인, 돌스 등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난해함입니다. '요정과 유사한 존재'를 암시하는 '화이트 피플'은 예상과 달리 아이의 환상이나 동화처럼 읽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매컨의 작품 중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 작품은 세 부분 즉 프롤로그, 녹색 수첩,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은둔하는 오컬트 연구자와 그의 방문객 사이에 오가는 심오한 대화인데요. 죄의 본질을 논하는 이 철학적인 대화는 분량에 비해 상당히 난해하여 가독성을 떨어뜨립니다. 난해함을 강조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독자들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요. 반면에 죄의 본질 요컨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금기의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에 관한 철학적 대화가 녹색 수첩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구성을 극찬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책장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참고 읽기보다는 '녹색 수첩'을 먼저 읽어봐도 좋겠습니다. 녹색 수첩은 16살 소녀가 어린 시절부터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 형태로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렇다고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녹색 수첩 자체만으로도 세기적인 걸작이라는 평(E. F. 블레일러)이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