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들려주고 볼레벤이 대필한 너도밤나무의 자서전!
생명의 뿌리에게, 자연의 영원한 순환에게, 보호할 가치가 있는 우리 숲에게 바치는 사랑 고백
볼레벤이 사는 산림관리인 관사 뒤편에 늙은 너도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는 1991년부터 거의 매일 그 나무의 안부를 살피러 그곳에 간다. 나무는 나이가 200살 넘었고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지만, 그의 삶은 절대 따분하지 않았다. 그는 거기 서서 우정을 맺었고 온갖 위기를 무사히 넘겼으며, 정교한 소식통을 통해 저 먼 숲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전해 들었다. 요즘은 인간이 불러온 생활 공간의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나무는 그 세월을 살면서 어떤 경험들을 했을까? 한곳에 뿌리 박혀 평생을 떠나지 못하고 시간을 분과 일과 주가 아니라 달과 일 년과 십 년의 단위로 헤아리는 생명체의 삶은 어떠할까? 다른 생명체가 그림자처럼 휙휙 지나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최신 과학 지식을 근거로 볼레벤은 너도밤나무에게 목소리를 빌려주어 씨앗이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되기까지 늙은 너도밤나무의 일생을 들려준다. 이야기에는 놀라운 일이 가득하다. 나무도 탁탁 소리를 내어 서로를 이해하고 들을 수 있을뿐더러 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경험을 자손에게 전해줄 수도 있다.
볼라벤이 그려낸 너도밤나무의 일생은 우리네 삶과 닮았다. 그 기간이 인간보다 길 뿐 태어나고 온갖 일을 겪으며 성장해 자손을 낳아 키우고 늙어서 스러져가기까지 무척 비슷하다. 저자가 스스로 너도밤나무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대필을 자처한 만큼 나무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의인화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사실을 묘사하려 애쓴다. 이는 임학자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과학적 근거로 나무의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상상 속 동화가 아닌 사실을 기반으로 더욱 친근하게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저자의 깊은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글은 세심하고 배려 깊으며 아름다운 데다 나무에 대한 사랑으로 반짝인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우리도 함께 곁의 나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지게 된다. 그 과정은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그동안 저지른 수많은 과오를 반성하고 깨달음을 얻는 행복한 여정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어떤지 알면 참 멋지지 않을까? 평생 변치 않는 자리부터 그 신체 구조와 우리보다 약 1000배는 느린 성장 속도까지, 나무의 세상은 우리와 다르다. 물론 우리와 닮은 점도 많다. 너도밤나무를 비롯한 많은 종의 나무가 무척 사회적인 생물이다. 나무는 자손을 잘 보살피고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노인도 보살핌을 받고, 모두가 힘을 모아 혼자서는 힘든 많은 일을 해낸다. 그러기에 하나의 숲 공동체는 기온을 떨어뜨리고 구름을 만들어 세계적 추세에 맞서 지역 기후를 적극적으로 바꾼다. 인간은 계속해서 기온을 올리기만 하는데 말이다. 또 나무는 부지런히 소통한다. 자기들끼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동물과도 소통한다.
우리는 숲에 관해 다양한 지식을 갖고 있다. 숲이 기후 및 환경 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한다는 것도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오래된 숲을 베어내고 있으며, 벌목을 방지하려는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늙은 나무의 보호는 고래 보호만큼이나 시급한 일이다. 이 책에서 볼레벤이 목소리를 선사한 늙은 너도밤나무는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다. 그 인생사가 사실이기에 더더욱.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볼레벤이 늙은 너도밤나무의 삶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 나무의 자서전, 즉 에세이다. 자녀에게 이야기해주는 어조로 친밀하고 애틋하다. 2부는 앞의 에세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과학책의 주석이자 참고문헌이다.
동화가 아닌 나무의 관점에서 나무와 관련된 온갖 놀라운 사실을 지금 그 나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상상해 들려주고 싶은 볼레벤이 선택한 방법은 대필이다. 물론 최대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지식의 빈틈은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맞는 상상으로 메웠다. 그러나 이미 과학의 발견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풍성하기에 첫 페이지를 읽고 나면 방금 설명한 내용이 사실의 길에서 벗어나진 않았나 의심이 들 수 있다. 따라서 이야기를 마친 뒤 2부에서는 각 장과 관련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출처와 함께 소개한다. 과학적 논의의 빈틈과 현황 역시 상세히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