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빌의 유령 The Canterville Ghost」(1887) 유서 깊은 영국의 한 저택, 이름하여 ‘캔터빌 체이스’. 이 저택이 매물로 나온다. 집 주인 캔터빌 경이 출몰하는 유령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었던 것. 흔쾌히 이 저택을 사들인 사람은 미국인 목사 오티스다. 지극히 실용적인 이 신세계 미국의 오티스 가족은 구세계 영국의 전통적인 유령을 비웃어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이 미국인들은 그 대가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조롱을 받아야하지만.) 한편 삼백년간 이 저택을 지배해온 유령계의 고인물, 사이먼 경에게 이 오티스 가족은 재앙이다. 유령 역사에 길이 남을 눈부신 업적을 자랑하는 이 고딕 빌런에게 최초의 시련이 닥친다. 미국인들은 그를 무시하고 면박까지 준다. 유령이 만들어 놓은 핏자국을 ‘핑커튼 얼룩 제거제와 세제’로 말끔하게 없애고, 유령의 쇠사슬이 철컥거려서 잠을 잠 수 없다며 ‘라이징 선 윤활유’로 기름을 치라고 충고한다. 착한 오티스 부인은 알아주는 겁주기 기술을 시전하며 공포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유령에게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며 다소곳이 드링크제를 권한다. 유령 역사상 전대미문의 이 무례하고 황당한 상황에서 캔터빌 유령은 오티스 가족 겁주기에 연달아 실패하고 결국엔 회복불능의 무력감과 굴욕감에 빠진다.
오스카 와일드의 고딕 소설에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일례로 와일드는 세기말과 교감하는 방식으로 고딕 요소를 가져오고 그 촉매제로 오컬트와 패러디를 선택한다. 또 다른 예로 와일드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혐오와 차별을 상반된 균형감으로 드러낸다. 캔터빌의 유령 사이먼 경은 사슴 요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내를 무참히 죽인다. 이 작품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오티스 부부의 딸 버지니아까지도 아이러니하다. 결국엔 영국 귀족과 결혼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집안의 천사이자 현모양처’로 살아가려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