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확신하고 있다.
차기 대선은 전교조 세력과 비전교조 세력과의 대결 구도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면, 전교조로 대표되는 좌익 세력과 전교조와 좌익의 폐해(弊害)를 실감한 우익 세력의 대결, 이는 사회주의적 투쟁을 중시하는 좌익과 전통적 가치와 인의(仁義)를 숭상하는 우익의 대결로 집약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는 인륜(人倫)을 중시하고 세대의 조화를 추구하며 미래의 위대한 조국 건설을 목표로 단결과 화합을 이루며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고 사용자와 노동자로 나누어 분열하고 흩어질 것인가에 대한 정답(正答)을 우리는 2007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찾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한총련 출신 정치인들과 좌파가 지배하는 이념에서 진정한 우익의 진리를 상실하고 진리의 카오스에 빠져있다. 무엇이 진정 옳은 이념이며 추구하는 목표인가를 상실하고 우리는 전교조로 대표되는 좌익의 깃발 아래 정치권력 주변에서 숨을 죽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경제 또한 성장보다는 분배 우선의 좌익정책이 가져온 경기침체.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가져오는 노조의 횡포와 온갖 파업. 이에 외국인 투자자의 발걸음은 돌려지고, 노조 없이도 건강한 노사(勞使) 문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에 기어이 노조를 세우고자 공격하는 좌익들.
심지어 도덕성과 겸손을 상실하고, 1억 가까운 연봉을 받는 조정사 파업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심한 자괴감과 열등감에 빠져 있다. 그토록 많이 벌고 명예로운 자리에서 호의호식하면서 더 무엇을 바라는가. 거기에 비할 바 없는 우리는 어디까지나 가난한 프롤레타리아였다. 노조가 필요한 곳은, 가난한 일반 사업장이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은 이익을 요구하는 것이 노조가 아니다.
교단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땅에 교사만큼 좋은 직업이 얼마나 있겠는가. 신분보장이 확실하고, 주당 수업시수 18시간. 일반공무원보다 훨씬 높은 봉급. 방학이 일년 무려 80일. 토요휴무제. 형편에 따라 일반 직장보다는 자유로운 연가. 이런 자들이 더 무엇을 요구하며 국가공무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더 많은 권리와 이익을 요구하는가. 더구나 학생을 가르치는 모범이 되어야 할 교사들이, 기본적이며 인간적인 도덕성마저 갖추지 못한 행동. 불리하면, 언제든 박쥐처럼 노동자로 변신하는 무리들. 국가공무원에서 신분을 노동자로 바꾸어 무리를 짓고, 눈 부라리며 대드는 언어폭력, 그리고 갖은 협박. 그것을 교사의 모습이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타락한 귀족노조가 있고, 타락한 노동자들이 있는 한, 우리의 희망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이 땅에 기업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들며 이익을 창출하여 국민을 먹여 살릴 것인가. 경기가 침체일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이 이러한 노조를 지원하는 좌익 정책과 사회 환경에 있음에도, 그 죄를 마치 기업인에게만 있는 것으로 몰아세우는 좌익들. 그리고 그 죄 많은(?) 기업들이 벌어온 재화를 국민적 합의 없이 북에 퍼주며 인심을 쓰고 있는 좌익 정권.
우리는 이렇게 무엇이 , 또는 어떤 것이 진정 이 나라 발전에 필요한 이념인가에 대한 검증(檢證)할 기회도 없이, 우리는 좌파정책에 휩쓸리면서 경제회복의 시기를 상실하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교단이 좌익의 후원을 받는 전교조로 인해 점령된 뒤, 전교조 노동자들로 인해 얼마나 우리 교육이 후퇴하고 피폐해지고 있는가.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는 교육정책과 전교조 참교육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같은 노동자로서 평등한 신분적 수평관계를 요구하는 전교조로 인해 노장(老壯)의 질서마저 파괴된 교단. 예의와 질서가 사라지고, 악쓰고 대들면 해결되는 폭력이 난무하는 교단.
이를 직접 체험하고 있는 우리는, 오늘날 우리나라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교단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교사들을 몰아내야 우리 교육이 바로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현 좌익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전교조 노동자들은 그 존립의 목적을 교육에 두지 않고 있다. 전교조는 두 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첫째, 교단에서 노동자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로서의 정체. 둘째는 반미로 나타나는 적화통일세력으로서의 정체이다. 우리는 전교조가 교육부 소속의 교원단체가 아니라, 교사로 구성된 민노총 산하 노동단체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은 두 가지 신분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교육부 소속 국가공무원, 또 하나는 민노총 소속의 노동자. 이 두 개의 얼굴을 그들은 박쥐처럼 필요에 따라서 유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불리하면 국가공무원으로 살고자 하고,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에는 노동자를 주장하여 국가와 민족보다는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산다.
학생을 길러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이바지 하는 시각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기르는 교육활동을 신성(神性)으로 보지 않고, 대가가 있는 개인의 노동으로 보고, 그 노동의 대가만을 바라는 것. 한 마디로 공무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대의(大義)가 없이 자기 목구멍만 생각하는 치졸한 노동자들이었다.
독일이 2차대전 패전 후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했을 때, 무조건 항복에 따른 조건으로 단 하나, 독일의 교육제도만큼은 보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은 일본인의 미래를 위해 천황제 보전을 요구했지만 독일은 교육제도를 통해 독일의 미래를 생각한 것이다.
독일은 참담한 패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으로 독일 민족을 다시 일으켰다. 우리나라도 오직 교육만이 우리 민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전교조는 나라를 망치는 조직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디 교사가 할 짓이 없어서, 순백한 어린 영혼을 앞에 두고 돈 주면 가르치고, 돈 안 주면 안 가르친다고 할 것인가. 그리고 왜 반미운동을 하는 것이며, 어린 학생들은 왜 몰고 나가는가. 미국을 반대하는 교육이 학생 실력 향상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전교조는 과연 무엇일 것인가? 정녕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은 1인칭 서술자 시점으로 자전적 고백록 형식의 글이다. 한때 전교조 게시판에 실려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어느 전교조 교사가 밝힌 고백을 바탕으로 일선 학교에서 벌어지는 전교조 행패를 소재로 사용하였다. 전교조에 반대하던 ‘나’가 어떻게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왜 또다시 회의에 빠지게 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전교조 사슬에서 빠져 나오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전체적인 구도는 자전적 고백의 성격을 띠지만, 사용된 소재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그리고 만약 전교조가 이 글에 나오는 가상의 여교사 ‘박선숙’의 행위와 해방구 편에 실린 ‘어느 전교조 교사의 고백’에 대해 이의를 단다면, 내가 직접 경험한 사실을 밝힐 의향이 있음을 전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2000년 가을 내가 경험한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여교사 이름도 소속도 밝힐 용의가 있다. 당시 학생부 회식 자리에 참석했던, 현장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교단에 있고, 또한 그 현장에는 전교조 교사도 함께 있었음을 밝힌다. 그러나 왜 학교가 ‘전교조 해방구’인가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다르고 있으므로, 전교조 교사들은, 이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에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책 속으로
- 어느 전교조 교사의 고백 -
전교조 활동을 오랜 기간 해온 교사로서 현 전교조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밝혀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몇 번이나 전교조의 실상을 밝히려고 마음을 먹어 보았지만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아서 주저하다가 현 전공노의 출범을 보며 조금이라도 밝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교조 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동료 교사의 권유로 조금씩 활동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상당히 순수하고 참된 목적이어서 아무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깊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처음의 순수하고 참된 목적은 전교조의 포장에 불과하며 그들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순수하고 참된 목적이라는 전교조의 대외적 포장도, 조금만 개선하면 될 것을, 마치 큰일이나 난 것 처름 호들갑 떨며 동료교사들에게 선전 선동한, 침소봉대, 아전인수의 대외선전 전략전술 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로 본다면, 차라리 전교조가 교권의 확보나 참교육의 걸림돌이며, 전교조가 없는 교육환경이, 교권의 확보나 참교육 실천에 더 큰 발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일선교사들은 대부분 직감하고 있습니다.
일선교사들이 전교조가 참교육이나 교권확보에 걸림돌 이란 것을 직감하고 있지만, 묵시적으로 전교조에 가담하는 이유는, 교권확보라는 미명하에 교사로서의 직업보장 성격이 강합니다.
또, 일부 열성 전교조 교사들은 나와 같은 피치 못할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금방 신분이 밝혀지기에 이런 글을 적지 못했을 것입니다. )
초창기 동료교사로부터 전교조 활동에 대한 권유를 받을 시기에 전교조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 이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직분이 있는데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적인 만남이 자주 이루어지고 동료로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난 다음, 그 동료 교사의 지속적 권유에는 어쩔 수 없이 미온적이나마 전교조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창기는 주로 교내 보다는 교외에서 같이 활동하는 여교사와 셋이서 모임을 가졌는데 교내 사건에 대한 험담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동료교사는 여러 가지 사적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우리 모임에 여교사를 한명 더 데려와서 그 후부터 네 명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여름 방학 1박 2일 야외 모임 때 사건은 발생 되었습니다.
그 동료교사가 한 여교사를 콘도 밖으로 데려나가고 단둘이 여교사와 있을 때, 그 여교사의 유혹에 넘어가 둘 다 가정을 가진 몸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교사와 적절치 못한 관계가 이루어 졌습니다.
그날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지만 그 후부터 자주 그런 일이 이루어졌고,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학습의 강도도 깊어 졌습니다.
학습의 진행은, 처음에는 교내 문제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갈수록 정치문제를 들고 일어나고, 체제문제, 급기야는 북한의 우월성에 관한 학습이 주요 내용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니 호기심에 접할 수 있었지만 너무 일방적 우월성 학습은 거부감을 일게 하고, 그때마다 그 여선생이 감시자 처름 느껴지기 시작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된 다음이라 어쩔 수 없이 아무 내색 못하고 그들을 동조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고 강박관념에 더 열성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밖으로 밝혀지게 되면 교사로서의 직업과 가정이 한꺼번에 파괴되는 것이니 모임에서 결정 사항은 바로 법 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무리한 요구를 다 받아들이고 있던 중 (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교내에서 무리한 행동을 하는 다른 선생님을 볼 때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 그 동료교사가 다른 학교 여교사를 소개해 주면서 그 학교에서 조직을 구축 하라는 거였습니다.
그 학교에 가서 이제까지 자기 옆에서 보고 배운 것을 먼저 자리 잡고 있는 그 여교사와 공조해서 그대로 행동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개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모두 비슷한 체계 속에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교사와 남교사의 부적절한 관계와 여러개의 조그마한 소모임, 그 소모임에서 교내 불만과 사회 불만을 바탕으로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우상화 학습, 일정단계가 넘어가면 분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구에게 속 시원히 물어볼 수도 없고 함부로 이야기 할 수도 없고, 항상 감시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 교장선생님 자살사건 때 이 내용을 알리려고 무척 고심했었지만 차마 하지 못하고 이번 전공노가 발족되는 현실을 보니 너무 답답해서, 신분이 밝혀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상을 조금이나마 밝혀 보았습니다. 너무 소상한 내용을 쓰게 되면 금방 신분이 밝혀지기에 간단한 내용 몇 개만 적었습니다. 이 내용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시면 정확합니다.
전교조 출신교사가 밝히는 전교조의 실체 조회 29 추천 스크랩 1 / [해방과 정치] 2004-11-15 12:39:45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