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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동명왕 (한국문학전집 354)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사랑의 동명왕 (한국문학전집 354)

소장전자책 정가900
판매가900

사랑의 동명왕 (한국문학전집 354)작품 소개

<사랑의 동명왕 (한국문학전집 354)> 그날 밤 유화는 그 젊은 사나이를 집에 들여 재우니, 이때 에 든 아기가 주몽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젊은 해모수는 반드시 유화 를 맞으러 올 것을 약속하고 밝는 날 아침에 가버렸으나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나 뱃속에 든 주몽은 날로 자라서 유화는 웅심산 오리골(熊心山?綠谷) 그 아버지 하백(河伯)의 집에서 실행한 계집애라 하여 쫓겨 나서 태백산 앞 우발수(太伯山南優渤水)가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굳은 약속을 어기고 해모수가 유화를 찾아 오지 아니한데 는 이유가 있었다. 해모수는 해부루(解扶婁)가 내버리고 간 자리를 점령하여서 북부여 왕이 된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 일이 끝나면 해모수가 유화를 찾음직도 하건마는, 운명은 그때까지를 기다리게 아니하였다. 사냥을 나왔던 동부여 왕 금와는 유화를 보고는 놓지 아니하고 가섬벌 서울로 데리고 돌아 갔다. 이렇게 되니 유화와 해모수와의 인연은 아주 영 영 끊어진 것이었다. 뱃속에 든 아이가 누구의 씨냐고 금와왕이 물을 때에 유화 는 속이지 않고 해모수의 씨라고 대답하였다. 해모수는 금 와왕 편에서 보면 국토의 절반을 잘라서 감히 왕을 칭하는 역적이었다. 그래서 금와왕은 찼던 칼을 빼어 당장에 유화 의 배를 갈라서 그 속에 든 해모수의 씨를 죽여 버리고 싶 었으나, 칼자루를 잡았던 그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유화 부 인의 아름다움에 반한 것만도 아니었다. 막비 천명이었다. 이때에 금와왕의 칼이 한번 번뜩였다면(그것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주몽은 세상에 없었을 것이요, 따라서 그로 말미암 아 알려진 모든 일도 아니 생기고 말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때에 유화 부인의 뱃속에 들어 있던 핏덩어리 하나에서 고구려라는 큰 나라가 생기고 또 금와왕의 아들 대소(帶素) 를 죽이고 그 나라를 빼앗을 무휼(無恤)이 나올 줄을 아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저자 프로필

이광수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
  • 학력 1919년 와세다대학교 철학
    1910년 메이지가쿠인대학교 중학
  • 경력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
    1933년 조선일보 부사장
    동아일보 편집국 국장
  • 데뷔 1917년 매일신보 소설 '무정'

2017.05.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이광수(李光洙, 일본식 이름: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 1892년 3월 4일 평안북도 정주군 ~ 1950년 10월 25일)는 조선,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이었으며, 조선왕가의 방계혈족,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참여, 신한청년당,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고, 임정 사료편찬위원회와 독립신문 등을 맡기도 했었다. 유교적 봉건 도덕, 윤리관을 비판하였고, 여성 해방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했다. 언론 활동으로는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냈고 또한 번역가로도 활동하여 영미권의 작품을 한글로 번안하여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일본 유학 중에 소설과 시, 논설 등을 발표하였고,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망명, 1919년 도쿄(東京)의 조선인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주도했으며, 2·8 독립 선언서를 기초한 후 3·1 운동 전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가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했다. 1921년 귀국 후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칼럼과 장·단편 소설, 시 등을 발표하였다. 안창호, 윤치호, 김성수 등의 감화를 받아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제창하였으며, 1922년 흥사단의 전위조직인 수양동맹회를 조직하고, 안창호를 도와 흥사단 국내 조직과 수양동우회에 적극 참여하였다. 수양동우회 사건을 계기로 하여, 친일파로 변절한 이후에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규탄받았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민족성, 인간성의 개조를 주장하였고 한때 나치즘 등에도 공감하기도 했다. 그는 안창호, 윤치호의 사상적 계승자이기도 했다.

목차

판권 페이지
01 모자
02 밀회
03 공규
04 벽혈
05 망명
06 정도
07 흥망
08 왕업
09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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