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죄인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주님의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서 천사를 중보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첫 언약의 말씀들이
되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먼저 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율법의 말씀들과 계명들을 따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배워, 우리의 세상의 삶 속에서 익혀 가려고 노력하며 살아 온 것이다. 이렇게 교회에서 율법으로 시작하여 육신의 생각과 지식으로 익혀온
구약 성경 말씀이 습관이 되어, 영적인 하나님의 뜻이 담긴 새 언약으로 주신 신약 성경 말씀들을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그 영적인
성경 말씀들이 우리의 육신의 생각을 통하여 문자적인 의미를 따라 해석하여,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고 살아 왔던
것이다.
평범한 인간적인 눈으로 보고 생각하면, 우리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 받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며, 또한 성경말씀들을 문자적으
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육신의 믿음의 눈으로 판단하여 자기 생각으로 성경 말씀들을 믿어 왔던 것이다.
이렇게 성경 말씀 속에 감추어 있는 영적인 하나님 뜻을 깨우쳐 알지 못하고, 자기의 지식과 논리로 성경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정
리하여 자기 생각을 통해서 믿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전하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하여 원죄를 가진 죄인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아담의 후손들인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죄를 가진 죄
인 된 것을 영적으로 깨우쳐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우치도록 인도하시지 않으면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율법의 계명과 율례들을 육신의 생각으로 믿고 지키려는 것이 그들의 복음이라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주신 율법이 정한 모든 계명과 율례들을 육신의 생각으로 믿어 왔으며, 또한 육신의 할례와 같은 율법 행위를
해야 구원 받는다고 자기들의 육신의 안목으로 믿고 지켜온 것이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말하는 다른
복음이란 말씀은, 위에서 말한 대로, 율법의 행위로 육신의 할례를 행하여 구원 받았다고 믿고 살아온 유대인들이 전하는 그들의 복음을 두
고 하는 말씀이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후손으로 모세가 전한 율법만을 믿고 살아온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중보자로 세운 천사를 통해서 모세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 주셨다. (갈 3:19절 말씀 참조)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들은 육신의 생각으로 지키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여 구원받으려고 노력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장로들이 그들이 율법의 규례와 함께 만든 장로들의 유전을 그들 자신의 육신의 생각으로 지켜 행하려고 노력하며 살아
온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전파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복음의 말씀이 되는 새 언약의 말씀들을 그런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였던 것이다.
도리어 자기들이 전하는 복음과 같지 않다 하여, 자기들이 믿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이라고 정죄하고, 사도들과 초대 교회를 핍박해온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얻은 지식으로 현명한 사람이나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자신의 의지를 다지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배우는데 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의 육신의 생각으로 자기 믿음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떠나, 그들의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세상의 삶의 규범 속에서 지식을 얻어,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들이 성경말씀을 배울 때, 그들은 육신의 생각을 통한 지식과 논리로 성경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를 따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의 생각으로 해석한 그런 복음을 육신의 믿음으로 믿으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유대인들이 육신의 생각으로 율법을 따라 행하는 율법의 행위와 같은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말씀하신다. (롬 3:20절 말씀 참조)
그런데 갈 1:6절의 성경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인간이 육신의 지식과 논리로 해석한 복음에 대하여, 다른 복음이라
고 정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영적으로 깨우침 없이, 육신의 생각으로 행한 율법 행위처럼, 오늘을 사는 사람들도 같은 육신의 방법으로 다른 복음
을 따라 가고 있다는 말씀을, 갈 1:6절의 말씀에서 영적인 해설을 통해서 부연 설명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혈통에서 나지 않은 모든 세상 사람들은 이방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영적인 이방인 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그들의 선진들의 유전을 통하여 육신의 행위로 구원받는 길을 전하는 그들의 규례를 두고, 다른 복음이라고 사
도바울은 본문 갈 1:6절에서 정의 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다른 복음을 영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갈 1:6절의 본문 밑에, 참 복음과 다른 복음에 대하여, 영적으로 해설해 놓은 말씀들을 참고하기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