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물이라는 키워드에서 자연스럽게, 과거의 인연을 바탕으로 감정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서사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짝사랑이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하는 흐름이라면, 그 안에 담긴 아련함과 쌓여온 오해가 감정적으로 밀도 있게 펼쳐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야기를 읽어보니, 그 감정의 깊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달리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이 전개가 오히려 작품의 유쾌함과 활기를 돋우는 역할을 하면서, 서사의 방향성에 독특한 개성을 더해주더라고요.
남주는 어린 시절 사고로 기억을 잃고 자라 냉정하고 차가운 태도를 보이지만, 플로라 앞에서는 점점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그녀를 독점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나요. 여주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공작가로 들어갈 만큼 직진인데,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엉뚱하면서도 당차서 진짜 매력적이에요. 특히 플로라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오나르 앞에서 보여주는 씩씩함이 좋았고요, 그녀가 쓰는 소설이 남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어요.
이야기의 중심은 첫사랑이라는 연결고리를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이,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고 또 기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얽혀드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플로라는 레오나르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고, 반대로 레오나르는 그런 그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무심하고 차갑게 대하죠. 그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 섞인 마음으로 그를 모델 삼아 음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설정이 참신하면서도 너무 귀여웠어요. 왜 갑자기 음란소설이냐? 하면 공작, 레오나르에 대한 소문이 그러했기때문.. 여성편력이 화려하고 하룻밤 보내고나면 모두 만족해한다는 소문이요. 사실 플로라는 공작을 가까이에서 보았기에 믿지 않았으나, 공작의 방에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세명의 여성.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마치 정말 끝내주는 하룻밤을 보낸 후의 후기 같은 거였거든요. 사실 그들은..그런 쪽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들이었지만 ^^ 대사만 보면 오해하기 쉽긴 했어요 ㅎㅎ
그렇게 플로라는 본인이 쓴 소설에 스스로도 아주 만족하기도 했고,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출판계약하려고 서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지만 흔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다들 해주지 않아요. 하지만 토미만이 수락을 해줍니다. 100부 한정으로.. 그리고 이 소설이 아주 대박이 나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버리죠-
결국 레오나르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소설의 2권 계약을 위해 토미에게 방문했을 때, 현장에서 바로 잡(..)혀버리는 플로라... 그렇게 공작가의 하녀이면서 공작을 대상으로 성인로맨스솟러을 쓴 사실이 들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는 플로라에게 큰 벌을 주지는 않고 오히려 플로라가 수치심만을 느끼길 바라죠. 그렇게 처음엔 수치심을 주기 위해 시작한 벌 아닌 벌이..레오나르와 플로라에게 새로운 세계에 눈 뜨게(..)합니다. 시도때도 없이 플로라의 몸을 탐하는 레오나르.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레오나르는 플로아 주변의 모든 이에게 질투를 하고, 플로라를 탐하려고 한 백작의 재산을 몰수하기까지에 이르죠. 히지만 플로라는 레오나르에 대한 마음이 커질 수록 신분의 벽을 느끼면서 우울해하기도 해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공작부인을 질투까지하면서요. 그렇게 점점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생기고, 플로라가 그 긴장감을 정면 돌파해버리는 흐름이 아주 경쾌하게 이어져요. 단순한 계약 관계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점점 감정적으로 엮이게 되는 전개가 아주 매끄럽고 흥미진진했어요. 두 사람 사이에는 어린 시절이라는 공통된 시간이 존재했고, 그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면서 관계는 점점 바뀌어갑니다. 사실 이 기억이 하나하나 떠오을 때도 뭔가 꼬이게끔 떠오르기도 한 그런...것이 문제..! ㅎ . 초반에는 유쾌한 흐름이 중심이 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서로를 향한 감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질투, 소유욕, 갈망 같은 감정이 긴장감을 만들어내요.
관계의 흐름은 단순한 육체적 계약에서 시작되지만, 서로의 감정이 천천히 드러나면서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요. 레오나르가 플로라의 소설을 빌미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국은 그녀를 되찾기 위해 감정을 깨닫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긴 하지만 감정선이 엉성하지 않아서 감탄했어요. 중간중간에 웃음이 터지는 대사들도 많고요, 플로라가 레오나르를 도구로 쓰라고 말할 때의 태연한 얼굴은 상상만 해도 귀엽고 웃기고 설레고 다 했어요. 하지만 중간중간 선을 과도하게 넘는 플로라와 레오나르의 주변인들때문에 좀 짜증이 날 때도 있긴 했어요..헨델이나 가넷..마리아 모두...그들은 레오나르와 플로라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들 스스로의 자긍심을 위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집니다. 흥~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플로라의 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감정선이 더 짙게 전해졌다는 거예요. 현실에서 직접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글로 써내려가고, 그것이 다시 레오나르에게 읽히고 반응이 오면서 서로가 조금씩 마음을 읽어가는 방식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설정 자체는 자극적인 면도 있지만, 서사적으로 그 안에 첫사랑의 기억, 잊힘에 대한 아픔, 감정의 인식이라는 테마가 있어서 훨씬 더 몰입감 있게 읽혔어요. 마지막 외전에서 이 둘이 좀 더 알콩달콩한 감정선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본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관계였어요.
✔ 이런 분들께 추천드려요:
첫사랑을 둘만의 방식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
웃기면서도 짙은 감정선이 녹아든 성인 로맨스를 찾고 계신 분
관계의 시작이 거칠지만 결국은 서로를 인정하고 끌리는 과정을 보는 걸 좋아하시는 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여주와, 그 감정을 뒤늦게 깨닫는 남주의 서사에 약하신 분
플로라가 쓰는 소설처럼, 독자에게도 감정이 은근히 스며들다 결국 마음 깊이 도달하는 이야기였어요. 사랑이 어떤 모양으로 시작되든, 결국엔 서로를 향해 닿는다는 걸 보여주는 이 로맨스가, 당신의 마음에도 따뜻한 흔적을 남기길 바라요.
한 줄 추천:
웃기고 짜릿한데, 결국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음란한’ 첫사랑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