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변명과 핑계로 삶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걸까?
진리를 다루는 책들은 뻔하고, 그 진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현실과 타협하며 실천은 뒤로 미루고 사는 우리들의 뻔함을 돌아보자
영혼의 성숙이라는 삶의 여정은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제 고전이라 치부해도 좋을 정도의 잠언을 기반으로 한 책들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깊은 깨달음과 삶의 성찰을 전해 주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요즘에는 물질적인 욕망의 추구나 자아 성취를 당당히 주장하는 처세술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물질적 만족도를 비하하고 무시하던 과거와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성취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대의 반증일 것이다. 넘쳐 나는 자기 계발서는 그만큼 존재하는 독자의 수요를 말해 주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거부감과 무시도 공존하고 있다.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삶에 대한 근원적인 가치를 무시한 채 남발되는 자기 계발서들이 진정 한 사람의 삶의 질을 바꾸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그렇지만 또, 여러분 중 삶의 성찰이 담긴 잠언집들을 진짜로 읽고 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느냐고.
이미 너무도 유명하여 읽지 않고도 수차례 읽어 버린 듯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잠언집과 작가의 첫 만남도 그러했다. 그러나 작가의 독서력은 돌고 돌아 뻔하다고 생각하고 놓아 버렸던 그 잠언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식과 지혜를 위해 그리고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구하기 위해 펼쳤던 수많은 책들에 예전 집어 들었던 그 잠언집의 지혜의 말이 들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아담과 이브인 우리들을 위한 이야기
깨친 자들의 말은 작가의 삶에 녹아들어 작가의 말로써 소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작가는 의미 있는 잠언들을 취사선택하여 10장의 주제로 나누어 구성하였으며 각각의 내용들은 끊임없이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각성시키도록 자극한다. 자신을 잘 알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더 이상 착각하지 말고 실제로 현실 속에서 현실을 부딪치며 살아 내 보라고.
작가가 제1장을 세상의 모든 아담과 이브인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로 선택한 것은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남녀 관계는 그만큼 한 사람의 최정점과 밑바닥 사이를 극명하게 까발리며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녀 관계를 사랑이라는 의미로 확장하여 이해하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하던 착각은, 사랑을 통해 깨고 나오는 데서부터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변화에 [이브의 변명 아담의 핑계]가 함께하고자 한다.
삶을 사는 이유와 지혜를 머리로 아는 것, 지혜로운 삶을 실천하는 것에는 천지와 같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착각을 잘한다. 의미 있는 잠언집들이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고리타분한 말들로 폄하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의 말
“서점에 넘쳐 나는 삶의 지침서들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마법의 주문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미친 마법사가 그런 주문을 저작권료와 맞바꾸려 하겠는가. 열거된 기적의 사례들이 자신의 경우가 되길 소망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증명하고 있는 삶의 원칙들을 깨달아야 할 일이다.
꿈의 나라 오즈에도 마법사는 없었다. 하지만 벽돌 길의 여정이 가져다 준 삶의 지혜가 이미 삶의 마법이었다.”
우리 삶의 근원을 변화시킬 빛나는 지혜들
격언, 명언, 잠언 유는 같은 방향을 향하는 뻔하디 뻔한 말들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하며 냉소를 짓거나 들춰 보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이미 읽어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생의 정수가 담긴 잠언 유의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상적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두 부류 모두 자기 과시나 변명을 위한 데 불과하다.
그저 아는 것과 체화하여 실천하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세상의 모든 이브와 아담인 우리들이 어떤 변명과 핑계로 지혜의 말들을 뻔하다고 치부하며 삶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성찰이 이루어진 뒤라야 실천과 변화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른 격언들과 달리 소탈하고도 소박하며 여백이 있는 [탈무드]를 비롯한 쇼펜하우어, 톨스토이, 헤르만 헤세의 저서에서 선별한 유대 격언의 지혜를 취하고자 하였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행하는 작태는 별도로 하고 말이다.
각성하고 실천하라, 지금 이 순간부터
실천을 위한 키를 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인생의 해답을 찾겠노라 수많은 지혜의 말씀을 뒤적거리거나 실천해야 할 때가 따로 있는 것처럼 여기며 나태하고 무기력한 일상으로 회귀하고 만다.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우선이다. 나태를 정당화하거나 삶의 실천을 더 이상 뒤로 미루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 안에 길들여진 채로 있거나 스스로를 착각하지 않도록. 그 이후에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를 파악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자신의 현재를 바꾸고 싶다면 [이브의 변명 아담의 핑계]를 통해 ‘잃어버린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뻔함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작가의 삶으로 소화된 우리 삶의 근원을 변화시킬 빛나는 지혜들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안에 까칠한 위트와 유머, 소탈한 해학과 여백까지 있으니 내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그렇게 심각하고 어려운 일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실천으로 삶을 바꾸고자 이 책을 집어 든 당신이라면 용기와 자신에 대한 당당함으로 그 변화를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 여자 say, 그 남자 talk"의 남녀 관계를 1장에 담은 이유
자기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삶에 변화를 목적으로 한 책에 남녀 관계를 위한 지침서와 같은 내용이 1장에 들어 있으니 책 첫 장을 펼친 독자들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녀 관계만큼 한 사람의 인간성을 철저하게 드러나게 해 주는 경우도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서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있는 경우 우리 삶에는 경이로운 의미가 부가된다.
지상에 사는 우리들을 금단의 열매라 지칭된 선악과를 먹은 이브와 아담으로 비유하여 생각해 보자. 이브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신의 말씀을 어긴 죄가 아니라, 인간의 호기심을 아는 신이 인간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하여 선악과를 먹도록 유도하였는지도 모른다. 신이 의도하지 않았다면 굳이 꼭 선악과만 지칭하여 먹지 말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셨을까.
이브와 아담 사이에 일 대 일의 이해가 온전히 이루어지면 타인과 인류에 대한 이해에도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자신 안에 내재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묻고 의심하면서 단단하게 만들어 나가고,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어야 한다. 인간의 삶을 사는 아담과 이브가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사랑의 깨달음을 세상으로 확장시키는 데 지상의 삶을 살아 내는 목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