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 욕망에 다름 아닌,
낙천적 생활로 포장된 상류사회의 뒷모습
호화로움의 극치에 가려진 삶의 진실과 고통
인간의 욕망이 갖는 양면성, 물질주의에 대한 진실한 통찰
세계전쟁 이후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이 이루어진 듯 호황을 누리며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자신감으로 팽배해 있었다. 경제적 정치적 승승장구에 따른 쾌활한 시대적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었기에 192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이 추구했던 물질주의가 일반적인 시대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아 낸 젊은 작가 피츠제럴드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또한 아름다운 아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자신의 작가적 역량을 발휘해 부를 축적하면서 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그 화려한 허영심과 물질주의에 대한 경도, 그 이면의 공허함, 미국 건립의 이상과 대치되는 도덕성 비성실성을 참으로 매력적이고도 당당한 필체로 그려 낸 소설이 『위대한 개츠비』이다. 이 소설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 읽는다 하더라도 미국의 표피적 분위기를 잘 드러낸 명료한 구성, 속도감 있는 극적인 전개와 풍자로 인해 독자들은 매혹당하게 된다. 피츠제럴드를 포함한 현대의 우리들이 여전히 물질적 화려함과 부가 가진 힘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물질주의의 상징은 톰과 데이지 부부이며, 물욕으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물욕으로 덧씌워진 대상을 사랑하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개츠비는 이상의 실패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허영심이 한 인간의 전부를 이루고 그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낭비적 생활은, 그 화려한 세계가 유지되는 동안은 참으로 경이로운 인생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 허위 가득한 세상은 작가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아내 젤다가 추구한 인생이었고,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처럼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재능을 쏟아부으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피츠제럴드와 개츠비는 떨어질 수 없게끔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가 개츠비라는 인물에 대해 말하기를 “나 자신도 개츠비라는 인물을 한번도 뚜렷이 떠올릴 수가 없었다. 개츠비는 처음에는 내가 아는 한 인물을 닮은 데서 출발했다가 어느새 바로 나 자신이 되어 버렸다”고 한 것처럼.
작가 자신이 허황된 부에 대한 콤플렉스로 화려하고 세련된 생활에 이끌렸고,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러한 삶을 지향하기도 했지만 피츠제럴드의 내부에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분열된 자아가 있었다. 그에게 자신이 속한 사회와 그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진실에 대한 통찰이 있었기에 현재까지도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을 완성해 낸 것일 터이다.
소설 속에서 개츠비가 순간순간 담담히 보이는 쓸쓸한 눈빛은 ‘나 자신도 (진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 - 속물적 화려함 - 가 가진 힘은 너무 거대해서 난 거부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무의미한 이상을 추구하던 개츠비가 물욕주의자의 탐욕과 위선에 희생당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데이지가 이상을 위해 자신이 가진 물질적 편안함을 손 놓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속 한 문장]
내가 더 어리고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웠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 주셨다. 그 후 나는 살면서 그 말씀을 마음 깊숙이 간직해 오고 있다.
“네가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엔 언제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네가 누리고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걸 떠올리거라.”
아버지는 더 이상 길게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평소 우리 부자는 이상하리만큼 무언중에 서로 마음이 통했기 때문에, 나는 그 말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 1. 특권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오자 그의 심장은 점점 더 세차게 고동쳤다. 그는 이 여자에게 키스하여 그의 형언할 수 없는 꿈과 그녀의 사라지기 쉬운 숨결이 결합된다면, 자신의 마음이 신의 마음처럼 다시는 붕붕 떠다니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소리굽쇠가 어떤 별에 부딪혀서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한동안 더 기다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자 그녀는 꽃처럼 활짝 피어나 그를 받아들였고, 둘의 결합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 6. 과거
“저 목소리는 뭔가로 가득 차 있어요. 그 목소리에는…….”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그랬다. 그때까지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돈으로 가득 찬 목소리였다. 높고 낮게 파도치는 그녀 목소리의 무궁한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딸랑거리는 그 울림, 심벌즈 소리 같은 곡조, 그것은 돈의 소리였다. 높은 곳에 있는 하얀 궁전에 사는 공주, 황금의 여자. - 7. 흥분의 열기
그날 아침 기차로 쓰레기 언덕을 통과하면서 나는 일부러 반대편으로 좌석을 옮겨 갔다. 아마도 거기에는 하루 종일 호기심 많은 군중들이 서성거렸을 터이고 먼지 속에서 검은 얼룩 자국을 찾는 애들이며,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상세한 내막을 되풀이해 지껄이는 말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을 떠벌리고 떠벌리는 동안에 점점 현실감이 사라져 결국 머틀 윌슨의 비극은 종내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다. - 8. 기대치 않은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