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낭만, 별 하나에 과학
서쪽 하늘로 붉은 태양이 내려가고 어둠이 몰려오면 별빛이 우리를 유혹한다. 이런 밤하늘을 보고 어떤 이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이는 꿈을 꿨다. 그리고 우리는 낭만과 과학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려온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을까.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이 글을 쓴 주인공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다. 아를 강변에서 본 별빛에 매료된 고흐는 캔버스에 출렁이는 별빛을 담는다. 이 작품이 유명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밤하늘에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북두칠성을 만날 수 있다. 일곱별이 국자 모양을 하고 있는 북두칠성은 밤하늘에서 찾기 쉬운 별이다. 하지만 북두칠성에 숨겨진 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국자 손잡이 끝에서 두 번째 별인 미자르 옆에는 약한 빛을 내는 알코르가 있다. 짝꿍처럼 서로 가까이 있는 두 개의 별을 ‘짝별’ 또는 ‘이중성’이라고 한다.
시인 윤동주는 가을 밤하늘의 별을 하나 둘 헤이며 추억, 사랑, 시, 어머니 등 아름다운 말 하나씩을 불러본다. 이렇게 쓰인 시가 ‘별 헤는 밤’이다. ‘별 헤는 밤’의 배경이 되는 계절은 왜 하필 가을일까? 대기가 불안정하거나 구름이나 먼지가 많아 하늘이 불투명하면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또 인공불빛과 먼지들로 밝아진 도심의 밤하늘은 그 너머에 있는 별빛을 가린다. 대기가 불안정한 여름을 지나고 윤동주가 올려다본 가을 밤하늘은 대기가 안정되고 투명해 수많은 별이 보석처럼 빛났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놀라운 과학관은 다름 아닌 ‘우주’다. 이 책은 우주가 품고 있는 신화와 전설, 그리고 과학을 통해 누구라도 밤하늘을 보며 낭만과 과학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커피와 우유를 섞는 순간, 은하가 탄생한다!
가장 간단한 실험으로 만나는 가장 심오한 우주
누구나 우주를 동경하지만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우주라는 공간이 인간의 감각을 뛰어 넘는 광활한 공간이라 그 크기와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숲속에 있으면 숲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듯이 평생 지구를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가 우주 곳곳에서 펼쳐지는 현상을 이해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이 책은 가늠하기 어려운 대상인 우주를 간단한 실험을 통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커피 한잔이면 당신의 눈앞에서 우리은하가 모습을 드러낸다. 따뜻한 물에 커피가루를 넣고 스푼으로 한 방향으로 빠르게 돌리다가 위에서 우유를 몇 방울 떨어뜨린다. 잠시 후면 찻잔에 여러 개의 나선팔이 휘감겨 도는 우리은하가 둥실 떠오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핵심 개념인 ‘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 힘에 부친다면, 종이 상자와 모기장만 준비하면 된다. 또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드라이아이스를 몇 덩어리 받았다면 당장 혜성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헤어드라이어기 바람 한 방이면 안방에서 혜성의 꼬리와 조우할 수도 있다.
뉴턴이 쿵하고 떨어진 사과 한 알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도출했듯이, 이 책은 가장 간단한 실험을 통해 가장 심오한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과학은 복잡한 실험 도구들로 둘러싸인 실험실에만 있지 않다. 축소되고, 단순해지고, 변형되어서 우리의 일상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좀처럼 ‘내가 과학이오!’하고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천문우주 실험실의 문을 두드리는 순간, 당신은 우주여행의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황홀한 사진과 일러스트에 한 번, 쉽고 재미있는 글에 또 한 번 매료
화려한 외서들과 달리 국내 천문우주 관련 책은 텍스트 위주로 구성돼 있어, 시각적 만족이 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화려한 그래픽과 아름다운 천체사진들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저자가 호주, 몽골 등지에서 찍어온 사진과 허블우주망원경 등 천체망원경이 포착한 우주는 한 장 한 장이 모두 그림처럼 아름답다. 천체망원경도 포착하지 못한 우주의 심연은 오랫동안 별과 행성을 그려온 천문일러스트레이터가 생생하게 구현해 냈다.
저자는 우주여행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 우주 이곳저곳을 친절히 안내한다. ‘별은 왜 반짝일까?’라는 기초적인 물음에서부터 우주탄생, 블랙홀까지 천문우주 분야의 핵심 주제 스무 개를 일상의 언어로 쉽게 풀어낸다. “별의 수명은 질량에 따라 달라진다. 질량에 따라 짧게는 수백만 년에서 길게는 수천억 년을 살기도 한다. 덩치가 큰 사람이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많이 먹듯이, 무거운 별은 강한 에쪳지를 뿜으면서 내부의 물질을 빨리 태워버린다.(261p)”, “예상했던 것보다 적은 수의 유성이 떨어지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유성 하나하나가 먼 옛날에 태어난 혜성이 남긴 부스러기로, 태양계 공간의 방랑을 끝내고 지구의 품 안에 들어오면서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빛줄기를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7p)” 과학자의 눈과 시인의 감성으로 풀어낸 각각의 주제는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54개 별자리를 다룬 ‘별이 찾아온 밤, 사계절의 별자리’다. 별자리의 모습은 익숙한 일러스트 대신 고(故) 박승철님이 남긴 50여 장의 실제 사진으로 깊이를 더했다. 박승철님은 천체사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에 1000여 장의 작품급 천체사진을 남긴 천체사진 전문가다. 우리나라 밤하늘의 사계를 통째로 옮겨 놓은 이 장을 통해서 우리는 언제라도 밤하늘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융합형 교과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교양 모두를 잡는다!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최근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가 대변신했다. 가장 큰 특징은 천문우주 관련 분야의 중요성과 비중이 확대된 점이다. 융합형 과학교과서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라는 단원으로 문을 연다. 이어지는 단원이 ‘태양계와 지구’, ‘생명의 진화’다. 학생들은 허블의 법칙을 통해 우주의 팽창을 이해하고 우주의 나이를 구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별이 탄생하고 적색거성과 초신성을 거치며 소멸하는 과정을 이해하고, 은하의 크기와 우주의 구조 등을 알아야 한다.
태양계, 소행성, 혜성, 변광성, 성단, 성운, 우리은하, 별의 일생, 블랙홀 등을 다루는 이 책은 자체가 한 권의 융합형 과학교과서다. 또한 간단한 실험을 통해 우주의 현상을 증명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교과 과정에서 다룰 수 없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천문우주과학의 눈으로 분석한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한밤의 하얀 집』, 신윤복의 『월하정인』, 조토의 『동방박사의 경배』 등의 예술 작품은 과학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주를 품은 사람들’ 코너에서는 ‘천문학의 아버지’ 히파르코스에서부터 ‘빅뱅 이론’을 주장한 가모브까지 스물한 명의 천문학자들의 족적을 더듬어본다. 신화와 전설, 역사와 예술, 과학사를 아우르는 이 책은 공식과 요점정리로 우주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의 지평을 넓히며 우주를 즐겁게 여행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