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깨끗하고, 더 어리며, 더 잘사는 사람들의 병
21세기형 질병에 해결책은 있는가?
제2의 게놈, 마이크로바이옴이 밝히는
신비한 미생물의 과학
2016년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배를 움켜쥐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 알레르기 비염으로 코를 킁킁대는 사람,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는 사람, 자폐증 아이를 둔 사람, 불안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사람, 아토피 증상이 있는 아이를 위해 자극 없는 세제를 고르고 있는 사람, 체중 관리 때문에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끼고 사는 사람…. 이러한 질병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나 병에 대한 경각심을 심각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삶의 질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것들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1940년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코 막힘 때문에 잠을 설치지도 않을 것이며, 직접 인슐린 주삿바늘을 꽂는 일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몸은 더 날씬하고, 피부도 깨끗할 것이며, 정신적으로도 더 건강할 것이다. 1940년대만 해도 과민성 장 증후군, 비염, 당뇨병, 자폐증, 알레르기, 비만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질환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채 한 세기도 되지 않아 인간에게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된 걸까? 이 책 《10퍼센트 인간》(원제: 10% Human)은 이런 문제의 근원이 우리 몸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미생물에서 비롯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몸은 살과 피, 뇌와 피부, 뼈와 근육 등 10퍼센트의 인체 세포와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등 90퍼센트의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자신은 하나의 개체가 아닌 수많은 생명이 어우러진 하나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제2의 게놈,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 몸속 미생물의 불균형이 우리의 신진대사와 면역체계, 더 나아가 정신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밝힌다. 또한 항생제 남용, 무분별한 제왕절개, 신중하지 못한 분유 수유, 항균 제품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우리 몸에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겨두었는지 이야기하고, 획기적 치료법인 대변 미생물 이식의 현재와 미래에 관해 논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지구 상의 선배인 미생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어떻게 그것과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비로소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될 것이다.
정말로 미생물이 비만과 자폐증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 책은 여러 현대 질병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비만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지구는 뚱뚱하다. 1999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인구의 총 64퍼센트가 과체중 혹은 비만이고, 예전에는 정상 체중이던 사람들 중 몸무게가 늘어 과체중이 된 비율도 34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왜 살이 찌는 것일까? 단지 예전보다 더 많이 먹고 덜 움직이기 때문일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실험에서는 비만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제프리 고든Jeffrey Gordon 교수의 연구팀에 속한 미생물학자 루스 레이Ruth Ley의 실험에서 마른 쥐와 비만 쥐의 미생물총을 비교했더니, 비만 쥐의 경우 마른 쥐에 비해 의간균은 절반 수준인 반면 후벽균(비만 유발균으로 알려짐)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또 인도 출신 의사 니킬 두란다는 위스콘신 주립대학교의 식품영양학 교수 리처드 앳킨스와 함께한 실험에서 살찌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실험들을 보면 살이 찌는 이유가 과식과 운동량 부족 때문만이 아니며, 감염에 의해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비만을 유발하는 미생물이 사람 간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만세균’이 정말로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바로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정상아로 태어났다가 잘못된 항생제 사용 때문에 자폐아가 되어버린 앤드루라는 한 아이에 대한 사례가 나온다. 앤드루의 어머니 엘렌 볼트는 항생제 치료 중 아이가 갑자기 자폐 증상을 얻게 된 데 의심을 품고 자기 아들을 이렇게 만든 원인을 밝히기 위해 미생물의 과학에 뛰어들었다. 엘렌은 중이염 치료 목적으로 처방받은 항생제가 앤드루의 장에 사는 보호성 박테리아까지 모조리 박멸한 뒤 그 빈자리를 신경독소 물질을 생산하는 다른 박테리아가 대신 차지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리고 연구 결과 그녀의 가설은 결국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힌, 장내 미생물총의 조성이 비만을 유발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폐 증상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 알레르기 등의 피부 질환, 그리고 과민성 장 증후군 등의 장 질환 또한 미생물의 불균형으로 비롯되었을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새로운 대안, 대변 미생물 이식의 현재와 미래
항생제 남용, 식습관의 변화, 항균 제품에 대한 맹신 등으로 현대인의 몸속 미생물 조성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그로 인해 배앓이가 늘고, 피부는 더 예민해졌으며,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심하게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시디프) 감염증 같은 자가면역 질환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병들을 치료하는 데는 대부분 항생제가 사용된다. 그러나 내성 때문에 거듭된 항생제 치료에도 차도가 없는 환자가 늘고 있다. 또 균을 선택적으로 죽이지 못함으로써 장내 미생물의 조성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도 생긴다. 이에 미생물학자들은 이를 해결할 새로운 치료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대변 미생물 이식이다.
대변을 이식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거북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대변 미생물 이식은 인간을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매우 간편하고도 획기적인 치료법이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환자의 대장에 이식한다는 아주 간단한 발상의 이 치료법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심각한 질병으로부터 구출해냈다. 저자가 밝힌 사례에 따르면, 오랫동안 변비로 고통받던 한 다발성 경화증 환자가 이식을 받은 뒤 변비는 물론 다발성 경화증에까지 차도를 보였다. 또 심각한 교통사고로 인해 치료를 받던 중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에 감염되어 끔찍한 설사와 함께 시력과 청력의 약화, 체중의 급격한 감소를 겪은 환자가, 남편의 대변 미생물을 이식 받고 이제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이 대변 미생물 이식은 우리가 먹는 유산균 캡슐과 같은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장에 유익균을 배달한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치료법은 유산균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현재 미국 33개 주에서 180개 병원이 비영리 대변 은행인 오픈바이옴과 연계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 치료법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그 미래는 더욱 촉망받고 있다.
이 책 《10퍼센트 인간》은 우리가 지금껏 등한시해온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미생물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반자이며, 미생물 불균형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미생물의 과학은 우리에게 한 가지 커다란 희망을 던져준다. 바로 우리가 쉽게 변화시킬 수 없는 인간 세포와는 달리 우리 몸속 미생물들은 우리의 노력으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시작은 평생의 동반자이자 인체의 숨은 지배자인 미생물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