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시작은 오래전이었다. 이슈투데이에서 발행하는 격주간지 [이슈&](당시는 [이슈&논술])의 원고 청탁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논술 붐을 타고 고전읽기가 활성화되었기에 독서를 안내하는 이런 글들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변별력 확보를 위한 객관식 문제 출제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 논술시험은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런 분위기는 대입 때 반짝 써보는 논술이 아니라 중등·고등 과정에 걸쳐 장기적으로 책을 읽고 토론해보고 글을 쓰는 방식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요즘은 디지털 세대니 영상 세대니 해서 과거에 비해 활자매체의 중요성이 격감한 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자매체, 그 중에서도 중요한 고전들은 요약본이 아닌 직접적인 체험으로 읽혀야 한다. 적어도 지식인을 자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에 관심을 가지고 몇 권 정도는 사서 읽어보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대학인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인문학적 소양이나 지적 풍토 등은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그것은 입시 위주의 줄 세우기 교육의 폐해, 취업에만 매달려 있는 대학의 현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 현실 때문이리라. 덧붙여 거기에는 양극화와 경제위기 심화로 어려워진 현실이 반영된 탓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반짝하던 독서습관마저 중고등학교로 넘어오면 입시교육 때문에 거의 중단되고, 취업준비에만 매달리는 대학교에 와서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 책이 성인을 포함, 10대와 20대까지의 독자들 일부라도 독서로 안내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아쉬운 점이 많다. 직접 읽으면 되는 책들을 청소년 대상으로 풀어서 안내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시대에 책을 읽으라는 책을 쓰고 있는 필자이기에 말이다.
글을 써나가면서는 문학전공자가 아닌 데서 오는 한계도 느꼈다.
여기 소개된 대부분의 해석은 어느 누구의 해석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독창성이 그나마 있다면, 그것은 10대와 20대의 눈높이를 포괄하도록 풀이하고 내용을 선별하려 한 정도일 것이다. 철학 전공자이다 보니 상징이나 구조보다는 메시지, 관점 등에 초점을 맞춘 면이 많았다.
과거에 썼던 글들은 주로 고전물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었다. 청소년을 위해 대학 측 선정 고전들을 염두에 둔 [변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당신들의 천국], [고도를 기다리며],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픽션들]이 그것이다. 늦깎이로 철학과 박사과정에 다니던 때라 배우는 기분으로 신나게 작업했던 기억이 새롭다.
재작년 다시 작업을 시작하면서는 그 대상을 현대소설, 그리고 한국소설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고전이라고 해서 오래된 책만 읽으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으로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공통된 주제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였다.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나름대로 선별해서 묶었다. 다소 조악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분류의 의의가 있었다고 변명해본다.
이 책은 책을 읽기 위한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원래의 책을 읽게 되면 이 책의 의무는 다하는 것이다. 직접 읽어보면 이 책의 안내보다 훨씬 더 풍부한 내용과 재미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고전은 어렵다. 소설조차도 말이다. 현대물이라고 쉽지만도 않다.
필자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다. 필자에게도 두꺼운 새 책을 들면 어떻게 읽을지 막연하고 앞의 몇 페이지만 읽어서는 도무지 흥미가 당기지 않았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흥미가 생긴다면 해당 책을 사서 읽은 다음 ‘작품 속으로’와 ‘작품 밖에서’를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품 속으로’는 주로 줄거리와 인물 이해 중심으로, ‘작품 밖에서’는 주로 우리 시대와의 연관 속에서 서술했다. 물론 끝까지 읽고 나서 직접 책을 읽어도 좋다. 스포일러는 많지만, 어차피 고전의 줄거리가 궁금해서 읽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고전은 인간 정신의 풍부한 보물창고다.
작가소개나 내용퀴즈는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의논술 문제를 보면 소설에서 논술주제를 뽑아내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기서 뽑아낸 책들은 대입논술 때 출제된 작품이 많다. 기출문제 그대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것이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취지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500자 논술 문제로 통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