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목숨 백 그램. 정확하게 계산했습니다.”
실천문학 신인상과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강윤화의 첫 소설집.
2009년 제16회 실천문학 신인상, 2013년 제7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강윤화가 첫 소설집 『목숨전문점』을 들고 우리들을 찾아왔다. 강윤화는 이번 소설집에서 강요된 정상의 틀에서 말 그대로 열외당한 오늘날 청년 군상들을 다룬다. 다름을 살아내고자 하는 이들 청춘들의 의지와 절규들을 강윤화는 유치찬란한 역설의 언어로 그려내면서 이 사회의 배제와 폭력의 틀을 전복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가 아닌,“왜 사는데”라는 절규.
유치찬란 언어들이 폭로하는 바퀴벌레 같은 청춘시대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탈락한 뒤 일본으로 유학성 도피를 떠난 재수생(「목숨전문점」)부터 아버지의 부재 속에 여동생의 몸을 탐하는 대학생에(「얼룩 사이다, 사이다 얼룩」), 원치 않는 자퇴 원치 않는 임신까지 해버려 생활전선에 뛰어든 토익 학원 수강생(「토익 학원 오전반의 미덕」), 왕따로 의문의 살해를 당한 형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오징어를 씹으며 ‘타임슬림’이라는 기상천외한 모험에 도전하는 고등학생까지(「세상에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독자들이 강윤화의 소설집에서 마주하는 것은 이처럼 기괴하면서도 우리 사회 특유의 고유명사를 주홍글씨처럼 안고 가는 ‘오늘날 청년’들이다.
청춘, 그야말로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이란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강윤화의 청춘들은 모두 뚜렷한 목적을 보이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 붙어 있는 목숨 자체를 의문시하며 ‘살고 싶은가’라는 패배적인 자조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살고 싶은 이유보다 살기 싫은 이유가 많았다, 늘. 삶이란 성가시고 귀찮은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얻은 시간 같은 거라고 생각해왔다. 아니, 지금 생각했다. 여태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살고 싶은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 건가를 고민했다. 그 고민이 더 정당한 거라고 생각했다.”(12쪽, 「목숨전문점」)
소설집 곳곳에서 청춘들은 이 자조를 반복한다. 대학도 떨어진 마당에 오빠 팬들 플카 제작으로 돈벌이를 하며 “재미없다. 정말로. 재미 없다”를 연발하고(「내꺼 하자」), 여동생과 관계 맺는 것이 지옥 같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며 길들여진 습관에 무기력하게 몸을 맡기고(「얼룩 사이다, 사이다 얼룩」), 아버지의 폭력과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 태산 같은 상황에서도, “뭐가 되든 자격증이라도 따두자”며 대책 없이 토익 학원을 끊는다.(「토익 학원 오전반의 미덕」) 이런 그들을 주변에서 따스히 바라볼 리 만무하다. 가족과 친구들은 이들을 향해 집안의 수치이며 집밖에선 곰팡내 풍기는 인생으로 최종 확인도장을 찍는다.
“솔직하게, 제 딸자식이 이상했던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진작 제가 감옥에 넣었지요. 바깥에 내놓기 두려워 집에 가두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다 집 안에 두기도 두려워 바깥에 내놓기도 여러 번이었죠. 네, 결국은 다 제 불찰이었습니다.”(57쪽, 「누구 아는 사람 있어요?」)
기괴함과 낙인의 핑퐁게임. 그러나 강윤화는 『목숨전문점』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패배적 자조를 집요하게 반복하며 이를 ‘존재론적 질문’으로 반전한다. 이들은 가출, 입시 탈락, 가정 폭력, 왕따, 저임금 노동, 예비 미혼모들로 이 사회의 문법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이다. 강윤화에게 이들은 사회가 끊임없이 정상성을 강제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다름’을 잉여나 루저라는 주홍글씨에도 끈질기게 고수하는 존재들이다.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걸어가야 하는지 모른 채 그 길에서 살짝 삐끗하기라도 하는 날엔 끝 모를 추락과 낙인이 모든 곳으로부터 채찍질처럼 날아드는 오늘날, 강윤화의『목숨전문점』은 말한다. 지금-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의지, 잉여나 루저라는 낙인에도 고집스레 살아간다는 것에 있지 어떤 삶이냐의 경중에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를. 옥상에 올라가 여기저기 물을 뿌려대며 이런 ‘민폐’가 오히려 세상을 순화시킨다고 호언하거나(「목숨전문점」), 쓰레기봉투로 맞아가는 수모와 온갖 오해에 자신도 그런 행위들이 우습다는 걸 알면서도, 오빠 팬 플카를 만들고(「내꺼 하자」), 안정된 직선의 삶을 동경하다가도 본능적으로 그 직선이 내게 준 트라우마에 몸서리치는 존재(「빨간 반성문」)들을 통해 강윤화는 말한다.
“정답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없는 게 아니라 아닌 거야.”(「목숨전문점」)
하지만 강윤화는 이 소설집에서 현실의 무게에 분열하고 절망하며, 끝내 파국을 맞이하는 청년들을 응시한다. “살고 싶어. 살 수 있는 만큼을 살아내고 싶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자신으로서 응시하는 법을 말이다. 강윤화의 소설집은 청년들이 처한 ‘벌레로서의 삶’(「빨간 반성문」)이라는 절망 가득한 현실과 폭력, 경쟁, 획일화된 규칙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끝내 ‘벌레’로서라도 ‘제대로 살아내겠다’는 생의 의지가 격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