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오늘도 비가 아니 올 모양인걸.』 신라 서울 황룡사(皇龍寺) 절 담 모퉁이 홰나무 그늘에는 노인 사오인이 모여 앉았다. 그중에 한 노인이 까만 안개 속으로 보이는 빨간 해를 보며 이렇게 한탄한 것이다. 『비가 무슨 비야.』 하고 다른 노인 하나가 무릎에서 기어 내리려는 발가숭이 어린 아이를 끌어 올리면서, 『칠월 칠석도 그대로 넘겼는데 비가 무슨 비야.』 『글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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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왕이 죽고 왕건이 고려 태조가 된 소문은 벌써부터 서울에 전하였으나 정식으로 고려 왕 왕건의 사신이 국서(國書)를 가지고 신라 조정에 이른 것은 왕건이 궁예를 내어 쫓은 뒤 약 일 개월, 궁에가 삼방에서 죽은 뒤 약 반 개월 후이었다. 왕건도 궁예가 죽은 줄을 확실히 안 뒤에야 비로소 천하가 내 것인 줄을 믿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