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이네 집 일행은 마치 친형제를 대하는 반가움으로 김 문제의 집을 찾아 들어 갔다. 반은 중국식, 반은 조선식인 김 문제네 집은 얼른 보기에 퍽 넉넉하고 즐거워 보였고, 특히 삼봉이네 식구들의 눈에 뜨인 것은 마당에 쌓아 놓은 五, 六십 석은 됨직한 높다란 좁쌀 노적이었다. 우리도 언제나 저렇게 넉넉하게 살앙 보나 하고 삼봉 어머니는 감개무량하였다.
소장 500원
이제 겨우 양지쪽 진펴리에 버들가지가 보얀 털을 돋힐락 말락한 때에 삼봉(三蜂)이네 집은 십여대 살던 고향을 떠나야만 하게 되었다. 십여대를 살던 고향이라고 그것을 그리워할 한가한 처지에 삼봉이네 집은 있지 아니하였다. 인제 이곳에 더 있으려도 있을수가 없어서 떠나는 것이다. 삼봉이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근농이요. 또 신용도 있고 수완도 있었기 때문에 박 진사(朴進士)집 논을 얻어 붙이게 되어서, 삼봉이 조부가 환갑이 되던 해에는 집도 하나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