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나의 반문명 선언서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나의 반문명 선언서

소장종이책 정가22,000
전자책 정가40%13,200
판매가13,200

나의 반문명 선언서작품 소개

<나의 반문명 선언서> 서양 문명의 근간을 다시 바라보는 『나의 반문명 선언서』. 이 책은 그저 침묵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현직 교사가 한국 사회를 누르고 있는 서구 문명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서구문명을 만든 정신의 근간은 어디에서 출발하며, 서구의 역사는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또한 자본주의, 민족주의의 뿌리와 이데올로기의 실체 등 서구 문명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언급한다.


출판사 서평

“나는 왜 서양에 분노하는가”
그저 침묵만 할 수 없는 현실 앞에 현직 교사가 한국 사회를 누르고 있는
서구 문명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밝히다

격렬함, 거침없는 비판, 새로운 문명 저항,
현직 교사가 전하는 서구 문명 비판서
이 책은 현대 문명의 근원적 기틀인 과학과 종교가 근대 초기에 어떻게 발아하였고, 전 세계의 선진 문명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는지 한층 다른 각도에서 서술한다. 서구 문명을 정의하는 관념인 민주주의, 합리주의, 기계주의, 물질주의, 자본주의의 잉태는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과연 그러한 정신들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적용하여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 문명을 구성하는 키워드, ‘과학, 종교, 기계’에 대한 색다른 정의
기계 공장과도 같이 돌아가는 한국의 교육 현장. 그 속에서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고통과 마음을 보듬어 온 현직 교사의 사회를 향한 거리낌 없는 외침이 담겨 있는 글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수업 시간에 배워온 상식을 넘어 한층 다른 각도에서 오늘날의 현대 문명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21세기는 여전히 자본주의, 물질주의 사회 속에서 첨단의 기술 발달을 이룩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발전’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자고 외치며, 과감히 서구 문물의 근원의 역사를 중세 이전으로까지 소급하여 밝히고 있다.
점차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점과 문제점들을 직시하게 되면서 차차 자본주의에 대한 속살을 파헤치고, 더 나은 미래의 자본주의, 안정된 사회경제를 꾸려갈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사회 일반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 한걸음 더욱 멀리 뒤로 물러나 포괄적으로 서구 문물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저자는 과감하게 단언한다. 현대 시대의 삼위일체는 신과 인간과 기계인데, 과학 지식은 자체의 발달 논리에 따라 자신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서구 근대화 역사가 증명하듯 하나하나 인간을 소외시키고 배신할 것이라고. 가령 오래전부터 들려오는 스마트 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상품화, 자본화의 길을 걸으며 조만간 우리를, 아니 지구의 모든 생명붙이들을 배신할 것이라고.
저자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1장 서구 문명을 여는 키워드, 제2장 코페르니쿠스적 배반의 역사, 제3장 서양화의 달콤한 유혹의 총 3장으로 나누어 구체화시키고 있다. 제1장에는 서구 문명의 기틀을 담당하고 있는 과학, 기계, 종교에 대한 속성을 파헤치고 있다. 제2장에는 유태인, 코페르니쿠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르네상스, 마르크스, 하비 콕스 등 역사적 혁명이라 불리는 순간에 서 있었던 인물들의 사상과 행보를 되짚어보고 있다. 제3장에서는 휴머니즘, 자본주의, 민주주의, 유토피아, 합리주의 등 서구화를 대표하는 5가지 사상을 대표로 꼽아 기술한다.
저자의 반문명선언서는 현대 문명의 내부에 응집되어 있는 비이성적인 부분들을 낱낱이 밝히고, 이를 통해 결국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찾아가고자 하는 쓰라린 호통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반문명선언서 중 일부>
서양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하얀 얼굴의 태양신’으로 숭배됩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놀라운 기계들과 과학 지식의 정교함은 우리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기계 문명은 인류의 삶에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현대 사회가 획일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해 가면서 또 자본주의 단일 문명권으로 통일되어가면서 인간 사회는 정말로 한결 자유롭고 풍요로워졌나요? 서양 정신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과 같이 ‘진보’는 항상 좋은 쪽으로만 나아가는 것인가요? 합리적 이성과 기계로 가득 들어찬 이 세상은 과연 진보한 세상인가요?
서구 문명의 양대 기둥은 <종교와 과학>입니다. 현대 서구 문명의 상징물로 우리는 주저 없이 <기계>를 듭니다. <기계>의 상징성과 <종교와 과학>의 그것은 일정한 상관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계는 인간의 피조물인데, 그것은 인간이 꾸며낸 논리적 인과 관계와 자연계의 물질이 완전하게 결합할 때 탄생하는 것입니다. 기계는 수학적 원리와 물리 화학적 법칙이 만들어내는 확실성의 실체이며, 동시에 감성이 배제된 가장 정밀한 이성적이고 물질적인 실체입니다. 기계는 확실성의 신앙 형태와 신의 빛으로 받은 이성 능력을 강조하는 서양 사상의 밑뿌리를 드러내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계 비판은 곧 서구 문명의 양대 기둥인 <종교와 과학>의 비판과 동의어가 되며, 기계 해부는 곧 서구 문명의 해부와 같은 뜻이 됩니다.
서구의 자연은 인간과 분리 단절된 대상으로 존재하는 자연입니다. 기계 역시 인간과 분리 단절된 대상으로서의 자연입니다. 서양에서도 기계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계는 자연의 연장 개념입니다. 서양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반대 개념은 ‘자연’입니다. 기계는 인간과 분리 단절된 자연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변화’를 초점으로 삼고 살아 있는 실제 세계를 통째로 인식하는 동양 전통 사상에서 볼 때, ‘자연’의 반대 개념은 ‘기계’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자연에는 인간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인간 중심주의와 서양의 그것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정확하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동양에서 인간은 자연과 하나로 연결되어 기계와 다툼을 벌이며 살아왔습니다. 기계 문명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살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기계는 우주적 조화와 중용과 생명의 근본을 깨뜨리는 존재이므로 그 이용을 최소한의 정도로 눌렀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조절하며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도덕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이 있었기에 서양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 활자를 발명하고서도 그 이용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하여 조선은 서양에서와 같은 인쇄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서양의 기계는 인간 욕망으로 만들어진 자연물로서 이것 역시 자연 세계 전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이용되고 지배됩니다. 동양의 기계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라면, 서양의 기계는 인간의 욕망으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자본주의 기계 문명의 숲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기계는, 인간의 욕망으로 설계된 자연의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변형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자연과 기계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 차이는 문명의 색깔을 다른 것으로 만들기에 필요한 조건이 됩니다. 나머지 충분조건은 인간의 욕망에 달린 것입니다. 중세의 종교적 질곡을 탈출하기가 무섭게 욕망의 인간으로 탈바꿈한 근대 서양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의 충족이며 자기의 이익이며 권력이었습니다. 종교성에 억압되어 있던 서양인들의 욕망 대폭발은 엄청난 힘으로 작용합니다.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정반대되는 성격의 문명을 만들어냅니다. 서양인 전체의 욕망 지향적 성격이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류 문명사에서 돌연변이 현상이라 할 만한 자본주의 체제를 제작해 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 원리가 가지고 있는 ‘분리 대립의 정신’과 ‘절대성의 원리’가 천년의 세월 동안 서구인의 유전자 속에 깊이깊이 새겨진 까닭입니다. 서구 근대인들이 자기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고 정복하면서 각종 기계를 만들어내고 이전보다 더욱더 편리하고 욕망 충족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의 욕구와 욕망은 더 큰 욕구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렇게 욕구와 욕망이 끝없이 연결 고리를 이어가면서 생성되는 사회 현상을 가리켜 우리는 그것을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의 욕망은 극한의 정도까지, 인간 생활의 극히 세밀한 부분으로까지 치닫고 있음을 봅니다.
자본주의 발생 이전의 서구 사회의 그것은 동양의 과학 기술에 비해 훨씬 뒤떨어져 있었음은 역사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법칙으로 굴러가는 서양 자본주의 문명은 자연 개발과 물질 만능의 사회 풍조를 이끌어내고는 곧장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 체제로 들어섭니다. 그 결과 사람살이의 모습이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문명은 곧 물질 위주의 문명이며 기계 중심의 문명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소비를 통해 인간은 행복을 누리게 되리라는 믿음이 자본주의 종교의 제일가는 신앙심입니다. 오늘을 기계 문명 시대라고 하는 것은 기계가 많아서라기보다는 인간이 기계 없이 하는 일이라고는 별로 없어진 시대, 그러니까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는 정도가 극단에 이르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분리, 단절의 정신으로 하나의 구조물을 만들면, 인간은 곧장 그것과 소외되고 맙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각종 기계 장치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과 분리 단절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며 기계 문명의 속성입니다.
서양에도 일원론과 이원론이 있고 동양에도 그런 것이 있는데, 굳이 서양의 그것만 비판하고 나무라는 것은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냐는 항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기본 생각이 그렇게 다를 게 있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 때 똑같은 것보다는 차라리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정확히 가려내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비슷하나 같지 않은 것은 이른바 ‘사이비(似而非)’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가령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변을 동서양은 서로 다른 대답을 준비합니다. 서양에서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합니다. 인간의 합리적인 정신 능력을 예찬하는 속성이 작용한 까닭입니다. 여기에는 주체와 객체로 나누어 생각하는 일에 밝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인간을 도덕적 존재라고 말합니다. 대상과 나를 분리하지 않고 관계의 그물 망 안에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서양에서 무신론이 탄생한 배경은 그 대척점인 ‘유신론’ 곧 예수교 사상에 대한 반격과 혐오의 의미가 절대적입니다. 이 점에서 불교를 가리켜 무신론의 종교라고 하는 의미와는 이것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유신론자는 나의 진리만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신은 오직 하나’라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그 신은 전지전능한 자라고 광고하는 자입니다. 유신론자는 신과 인간을 분리하고 나와 너를 분리하고 적과 동지를 구분합니다. 유신론자에게 유일신은 자기 권력을 실현하는 데 가장 튼튼한 형이상학적 기반이 됩니다. 그에게 신은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무소불능의 권력을 지닌 절대적 빽입니다. 그는 신에게 자신의 맹목적인 신앙을 바치는 대신 그 대가로 절대 진리의 소유와 함께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신념의 마력을 선물 받습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예수교를 믿는 자는 유신론자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교를 믿지 않는 자는 대부분 유신론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예수교 불신자가 곧장 무신론자라는 딱지를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양의 역사 무대에 등장한 무신론자처럼 그가 딛고 선 자리가 예수교를 혐오하고 공격하는 대척 지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신론과 무신론이라고 하는 도깨비 같은 관념 놀음은 유일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양자택일의 흑백 논리에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 무 종교인은 인간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우는 편협한 인간 중심주의자가 아닌 까닭입니다.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어 그 분리된 조각에 초점을 맞추어 힘을 집중시키는 서양 정신은 극단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서구 역사의 길목마다 양극 중 한쪽 길을 택하여 막다른 길목까지 질주하면서 저희끼리 절대 진리를 다투며 싸우는 한편, 다시 그 반대 방향으로 분노의 얼굴을 한 채 소리치며 몰려가는 무리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가령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후 정신을 절대시하면서 만들어온 근대 합리주의 세계관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명제를 극단적으로 사회화하며 실천한 결과물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대 방향으로 몰려가는 무리들이란 극단의 이성적 논리가 가지고 있는 편협성과 기계적 억압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 이성주의, 곧 낭만주의, 육체적 감각주의, 원시적 자연주의의 깃발을 높이 든 자들을 일컫는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계는 인간의 기계적 사고와 기계적 정신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기계 문명 비판은 인간의 기계적 사고를 비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근대 사상에 따르면 인간성을 배제한 것일수록 과학적이고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원리로 인정받습니다. 인식의 대상은 객체로 고정되고 거기에 인간의 이성적 능력이 동원되어 대상은 철저히 분석되고 해체되고 실험되는 과정을 거쳐 보편 타당한 원리가 도출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때 주체와 객체는 아무런 관계성을 맺지 않고 기계적으로 딱 단절된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런 관점과 태도가 서양에서 말하는 과학 지식의 독립성, 달리 말해 대상 인식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획득하는 원리입니다. 그에 따라 인간과 분리 독립되어 있는 지식이라야 객관적인 지식이 됩니다. 지식 속에서 인간의 체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야 완전한 지식이 됩니다. 그런 까닭에 서양에서는 인간과 분리 단절되어 자기 원리로 미쳐 날뛰는 과학은 있지만 반성하는 지식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과 자연을 아울러 생각하는 동양적 성격의 지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재앙과 병고로 가득해진 인간 생활에 있어서 과학 기술은 그 치료를 전담하는 의사이며, 기계는 만병 통치약으로 선전되고 있습니다. 기계의 숲에 둘러싸인 채 생존 경쟁의 짐을 지고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학 기술과 기계의 도움으로 삶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인간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으로부터 비껴나 있는 기계를 부러워하며 마침내 기계의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인간성을 벗어 던지고 기계성으로 옷을 갈아입으려 합니다. 인간성을 지닌 채 기계 문명 시대를 살아가기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까닭입니다. 더구나 인간은 냉정한 인과 관계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 까닭에 기계 시대를 헤쳐 나가기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은 더욱더 과학 기술에 의존하게 되고 기계에 매달리게 될 수밖에요. 그도 그럴 것이 서양의 과학 기술과 그 대명사인 기계는 얼핏 보아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발전해 가는 듯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착각이며 오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들이 자신과 소외 격리된 채 굴러가는 과학 기술 문명에 공연히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헛된 공상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이나 희망과는 관계없이 어디까지나 과학 기술과 기계와 자본주의 문명은 자체의 발전 논리에 따라 굴러가는 것입니다. 서양 근대 정신이 출발할 때 약속한 것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서양의 기계 문명은 처음부터 인간과 분리 단절된 지식과 원리로 움직여왔던 까닭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인간 자신과 격리된 자체의 발전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는 서구 문명의 상징입니다. 말하자면 서구 문명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기계’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서구 문명의 정체를 알아보는 작업은 기계의 정체를 밝히는 일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기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몇 개의 문을 열어 젖혀야 하는데, 이제 서구 문명의 본질을 구체적인 키워드를 짚어가며 들여다볼까요.

추천사

■ 현대인은 폭염의 사막에 갇혀버린 낙타 신세, 이 책은 시원한 폭포수이다. - 류춘자(시조 시인)

■ 조심하라. 독파 후 날개가 돋아날 수 있다. - 권채영(수필가)

■ 봄 산이 기지개를 켜듯이 이 책의 끝에는 새로운 생각이 열릴 것
이다. - 김정호(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

■ 이 책은 내 가슴에 던져온 봄꽃 한 송이다.
-송정은(시인)

■ 이 책은 낭떠러지에 다다른 폭포의 결단을 담
았다. -정홍영(고등학교 교사)

■ 먹구름을 찢고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부시다. -이용식(고등학교 교사)

■ 이 책에는 춘하추동이 다 들어 있다. 순서는 ‘겨울 겨울 겨울 봄’이다. -임종진(경북대 교수)

■ 책명을 대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벚꽃처럼 내 가슴에 피어났다. -김령희(중등 수석교사)

■ 이것은 핏줄기를 곤두세우는 들끓는 청춘의 책
이다. -박영일(해동검도 관장)

■ 새 지식이 빼곡 들어차서 눈은 고달팠지만, 정신은 얼음처럼 맑아졌다. -박기찬(공무원)

■ 이 책을 읽고 이 땅의 청춘들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안경미(초등학교 교사)


저자 프로필

이동훈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 경력 새글터문학회 회장
    한국 문예춘추문인협회 이사
    심인고등학교 교사
  • 수상 2013년 제1회 무예올림픽 진검베기 1위
    2011년 제3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2008년 문예춘추 현대시 신인상
    2008년 문장21 시조 신인상

2014.12.1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이동훈(李東熏)은 경북 예천 출생, 안동고등학교,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대구국어교사모임 회장, 전) 심인고등학교 국어교사, 현재 새글터문학회 회장, 진검베기연구모임 심검회(매호당) 회장, 한국문예춘추문인협회 이사, 세계해동검도연맹 대한해동검도대구경북협회 상임이사, 현) 대구 심인중학교 국어교사. 2008 문장21 시조 신인상, 2008 문예춘추 현대시 신인상, 2011 시집 <부릉부릉 봄날에 살다> 출간, 제3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

목차

서문. 학교는 지금 몇 시인가?

제 1장 서구 문명을 여는 키워드
1. 서구 문명의 쌍두 마차-종교와 과학
2. 기계를 설명하는 12개의 키워드
3. 유일신의 닉네임, 과학 기술

제 2장 코페르니쿠스적 배반의 역사
1. 유태인 : 절대주의의 아버지
2. 코페르니쿠스 : 신의 이름으로 연 과학의 시대
3.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 절대주의와 다양성
4. 르네상스 : 욕망의 인간 부활
5. 마르크스 : 제3의 종교 혁명가
6. 하비 콕스 : 신에서 인간으로
7. 서구 근대화와 종교 개혁 : 눈부신 모순의 열매
8. 쇼킹 아메리카 : 신 유럽의 실험장

제 3장 서양화의 달콤한 유혹
1. 휴머니즘 : 휴먼테크의 거대한 뿌리
2. 자본주의 : 물질의 완벽한 승리
3. 민주주의 : 정말로 민(民)이 주(主)인가
4. 유토피아 : 종말의 끝에서 꿈꾸는 천국
5. 합리주의 : 기계로 사는 방식

맺음말. 한국 사회, 어디로 가나

참고문헌


리뷰

구매자 별점

0.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0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