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는 세상의 위기와 문제를 예언자로서 지적하는 신학자와 보통 사람들 간 소통의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지적한 것이지만 그 지평을 확대하여 보면 유럽의 근대 사회의 불신이 자초한 상황을 빗댄, 즉 오늘날 우리 사회의 생태 위기 상황을 풍자하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덴마크를 순회하던 어느 곡예단에서 공연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 단장은 관중 앞에 나설 차례로 준비를 다 끝낸 광대를 이웃 마을에 지원을 청하러 보냈다. 추수가 끝난 전답에 불씨가 옮아 번졌다가는 그 마을에도 불이 번질 위험이 컸다. 광대는 바삐 그 마을로 뛰어가 마을사람들에게 곡예장의 진화작업을 호소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광대의 이러한 호소를 구경꾼을 끌어들이려는 기발한 수법으로만 생각하고 손뼉을 치며 요절(腰絶)하는 것이었다. 광대에게는 울 일이지 웃을 일은 아니었다. 제 말이 진담이지 장난도 계교도 아니라고, 정말 불이 나고 있다고 애걸하듯 설득하여 보았으나 모두가 허사였다. 아니, 호소를 거듭할수록 웃어 대기만 했고, 연극 한번 그럴싸하게 잘한다고 더욱 더 흥겨워할 뿐이었다. 결국 마을에까지 번져서 손을 쓸 겨를도 없이 곡예장, 마을 할 것 없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실제 20세기 중반 이후 지구 생태계를 위협해온 급속한 산업화와 소비화는 급기야 지구를 ‘불타는 마을’로 전락시키고 있으며 생태 위기에 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할 어릿광대의 예언자 역할 역시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교회 밖에 외부적인 요인에 있지 않고 우리의 내부에 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인간의 구원 중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계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방식으로 복음 해석과 사목 실천이다. 대부분의 사목자들이 본당 사목활동으로 환경운동에 참여는 하지만 여전히 신앙인과 합일체로서 자연세계와의 관계 인식을 꺼려하는 것이 주류이다. 사목자 강론도 하느님의 창조된 세계보다 구원중심으로 이야기하는 복음서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영적 지혜에 강하게 집착하면서, 오히려 우주 자체에 계시된 신적 지혜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을 타자화(他者化)하고 소외시키는 아이러니가 사목현장에서 일상화 되고 있는 것이다.
린 화이트(Lynn White, Jr.) 교수는 1967년에 쓴 그의 논문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에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인간과 환경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이원론적 윤리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도 개인적인 십계명의 실천이나 레지오 신심은 열심인데 생태 사도직이나 그 실천적 대안은 웰빙 먹을거리나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또 4대강과 제주도 해군기지 같은 대규모 자연파괴나 부당한 개발에 맞선 투쟁이 소수의 뜻있는 종교인과 시민 단체 공조하여 이벤트식 항거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받기도 하였다. 오히려 시민단체에 종속된 모습으로 보여져 가톨릭 생태운동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그 활동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제기 되어 왔다. 바로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이 시대에 직면한 생태 복음화 사명을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 정의와 생태 정의의 통합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태적 전망을 계승하면서 생태 복음화를 위한 복음적․신학적․사목적으로 잘 응답해 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할 때가 왔다. 지난 20여 년간 본당과 교구 그리고 전국환경사제 모임에서 면밀히 기획하고 모색하고 투신한 경험과 현장의 사례를 토대로 하여 가톨릭교회 안에 ‘조직적인 측면’에서 연대가 왜 일관성을 이루지 못 했는지와 ‘생태의식적인 면’에서 본당 사목의 현장까지 왜 내면화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0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 <창조주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 모든 창조물들과 함께 하는 평화>를 발표한 이후에 교회는 생태의식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적어도 20년 동안 한국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생태 운동의 여정을 성찰하고 그 생태 사목과 활동의 결과를 토대로 하여 과제를 밝혀내고, 가톨릭교회 생태의식의 실천적 생활을 위한 패러다임과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21세기 생태위기에 직면한 지구의 운명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는 운동의 시작에서부터 현재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큰 흐름에서 짚어보고 새로운 대안과 모색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특히 19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화생태 메시지에서부터 2010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평화를 이루려면 창조물을 보호하십시오.’라는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의 가톨릭 생태 운동사의 흐름과 여정을 먼저 살펴보면서 성찰한다.
각 교구에서 추진해 왔던 작고 큰 생태운동과 전국의 본당에서 환경위원회나 소공동체를 통하여 일구어낸 녹화의 사례들은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한다하더라도 현대 가톨릭교회의 생태 운동사를 큰 흐름에서 돌아봄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생태운동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었던 그 요인들을 알아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