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첫 번째 책 『역동하라 대구경제』를 출간한 지 꼭 4년이 흘렀습니다. 공론이 사라진 대구에서 제가 먼저 매를 맞겠다는 각오로 화두를 던지고 나름의 답을 내놓은 뒤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국가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분에서부터 주민 생활 현장의 소소한 일들을 실행하는 분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떨치고 있는 전문가에서부터 먹고사는 일이 더 급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각양각색의 말씀을 듣고 새겼습니다.
그 속에서 제가 가야 할 길을 찾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무엇을’ 보다 ‘어떻게’를 더 앞세우는 시대적 변화 역시 제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습니다. 행정은 일이 되도록 하고, 정치는 삶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어떻게’ 현실을 파악하고, ‘어떻게’ 방법을 찾아내서, ‘어떻게’ 결과를 이루어내느냐에 더 깊은 공부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실사구시인가?
많은 만남과 공부 속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미와 기능,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할 등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순간 ‘실사구시實事求是’ 한마디가 거대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친숙하지만 명확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던, 실천한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체화되지는 않았다는 마음에 늘 숙제처럼 여기던 말이었습니다. 마침 여러 정치인들이 자기 필요에 따라 마구잡이로 끌어다 쓰는 통에 오히려 본래의 의미가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해 안타까움이 크던 참이었습니다.
현장을 다니고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틈틈이 책을 읽으며 실사구시의 의미를 이리저리 곱씹고 새겨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행정가와 정치인으로 30여 년을 치열하게 살아온 저의 삶이 실사구시 한마디에 정리가 되고, 도시경영의 올바른 방향과 방법에 대한 해답 역시 그 한마디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왜 정약용인가?
실사구시에 대한 궁구窮究의 과정 속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을 만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목민심서』 서문의 두 문장은 저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군자의 학문은 수신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라는 준엄한 정의와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라는 안타까운 백성 사랑은 오늘날에도 결코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이후 『다산 정약용 평전』을 비롯한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님의 저서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비롯한 한양대 정민 교수님의 연구서들을 읽으며 선생의 삶과 학문, 현실을 대하는 자세와 문제해결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다졌습니다. 다산연구회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펴낸 『정선 목민심서』를 통해 선생의 목민정신을 더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다산학술문화재단에서 20년 가까이 발간하고 지원해온 학술지와 학술논문, 연구서들과 함께 다산연구소를 통해 소개되는 자료와 글들은 선생과 실사구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더욱 다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공부로 감히 선생을 저의 졸저에 모신다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용기를 내었습니다. 위대한 학자라는 말 한마디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선생의 엄청난 연구와 실천, 저술들을 조금이라도 쉽게 일반에 알리려면 오히려 풋내기의 얕은 이해가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일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며 쌓은 선생의 정신을 알리는 데는 오히려 정치와 행정 현장의 실제를 담는 것이 한편으론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진훈의 실사구시란?
정약용 선생을 비롯한 실학자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의 실사구시에 대한 견해를 저 나름대로 오늘날 상황에 맞게 정리해 봅니다.
‘실實’이란 열매 맺게 만든다는 것, 알차고 쓸모 있게 되도록 한다는 것, 공허한 주장이나 겉만 번지르르한 말장난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일을 온 힘을 다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사事’란 시민들의 삶과 연관된 모든 일, 도시의 미래 설계에서부터 소외된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석진 일상까지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 소임과 책무로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구求’란 지극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지식을 쌓고 지혜를 모으고 용기 있게 나서는 것, 하루 24시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고민하며 정성을 쏟아 결단하고 나아가는 마음입니다.
‘시是’란 옳고 바른 것, 도시에 역동성이 넘치게 하고 시민들에게 자부심과 행복감이 들 수 있도록 해 주는 방향이며 가치를 높이고 미래를 풍성하게 만드는 비전입니다.
그래서 실사구시란 일을 쓸모에 맞게 바른 방향을 정해 충실한 성과를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이진훈의 실사구시는 일이 되도록 하는 행정, 삶을 변화시키는 정치입니다.
도시경영과 실사구시
세계는 바야흐로 도시의 시대입니다. 2025년에는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도시에서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고, 2030년에는 인구 5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150개를 훌쩍 넘어서리란 전망이 나옵니다. 도시는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투자를 일으키고 성장을 이끌어내면서 때론 협조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대한 유기체입니다.
도시를 경영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크고 작은 분야에서 도시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질이 중요해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 도시경영의 가장 근원적인 철학이자 실질적인 방법론으로서 실사구시가 최선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사구시 리더들이 실사구시 철학과 방법론으로 경영하는 도시만이 협조와 경쟁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모셔서 나눈 대화들이 도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생각과 행동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