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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4 상세페이지


이 책의 시리즈


책 소개

<한국 근대사 산책 4> 생각하는 역사
한국언론사 ·한국문학사 ·한국철학사 등 각 분야의 역사는 그 분야에 관계된 역사에 대해서만, 즉 언론 ·문학 ·철학에 대해서만 말한다. 물론 각 분야와 관계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은 들어가지만 역사의 큰 줄기와, 각 분야의 유기적인 관계를 조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그간 나온 책들은 너무 간결하게 압축돼 있거나 특정 주제만을 다룬 전문서들 뿐이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는 한국의 근대사를 종합화 ·총체화하면서 한국 근대의 큰 줄기와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진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쟁과 논란을 충실히 소개하여 어떤 주장이나 편견에서 자유롭게 함으로써 ‘생각하는 역사’를 전개한다.

<한국 근대사 산책>의 특징
나이스비트가 <메가트렌드>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들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었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스비트는 <마인드 세트>에서 그런 평가에 대해 “‘익은 과일 따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라면서 “문제는 무엇을 따서 어디에 놓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연관 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의 첫 번째 특징 역시 바로 이러한 ‘종합’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역사의 현재화’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개화기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화기 이전은 너무 멀고 개화기 이후는 너무 가깝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시절 조선은 열강들의 각축전의 와중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이 오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주로 개화기 사건을 거론하면서 오늘을 논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현재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켜 풀어 쓰는 새로운 기술방식을 시도했다. 과거와 현재의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책과 논문은 물론 신문기사 ·칼럼 등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언론 ·문화 ·커뮤니케이션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그 상호작용 ·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고 ‘대화’보다는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역사를 그렇게 이해할 때에 인간이 역사에 끌려 다니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역사 서술은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와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은연중 드러냈다.

네 번째 특징은 이른바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메타 역사’란 ‘역사에 관한 역사’다. 개화기 시절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며 수많은 주장과 이견들이 난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명쾌한 역사란 있을 수 없으며 ‘교과서’는 늘 위험하다.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종합’에 의미를 둔 이 책은 다양한 주장들을 다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 역사는 단순명쾌할 수 없으며 매우 복잡하다. 과거의 복잡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복잡성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현재라는 변수가 더해져 현재보다 오히려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복잡성은 한 차원 높은 재미를 재공한다. 매 사건마다 각기 다른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을 감상하다 보면 “아, 똑같은 사안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이해와 체험은 “역사는 외우는 과목”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역사 서술의 다양한 시각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면서 도식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정한 지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 보수 ·진보 시각이 충돌을 빚으면 둘 다 균형 있게 소개하려고 했으며 개화기 역사에서 잘 나타나곤 하는 민족사적인 서술 시각도 공정하게 보려고 애를 썼다. 암울한 역사의 그늘을 거닐며 독자가 자괴감이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해 특정한 시각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우리의 저력이 무섭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발상의 전환을 해보길 권하는 게 옳은 일이다.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시작된 개화기
개화기 역사는 가슴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동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우리나라의 처지는 사나운 늑대 떼에게 포위된 한 소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위험한 곳으로 간 소년의 잘못에 대해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말하기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의 몸부림이 너무 눈물겹다. 그 소년은 나름대로 꾀를 내보기도 하지만 다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늑대의 밥이 되고 만다.

한반도에 ‘늑대 떼’가 본격 출몰한 건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1870년대부터였다. 개화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바로 이 시기에서부터 1910년에 이르는 30~40년간을 개화기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개화기가 시작되었다는 건 그들을 무조건 막아내 싸우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었으며 그 만큼 대처 방안을 놓고 내부의 혼란과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 혼란과 갈등은 크게 보아 ‘개화론’과 ‘수구론’의 대립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런 이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당시의 지식인 ·위정자들의 사고를 개화 혹은 수구의 어느 한쪽에 끼워 넣으려는 것은 당시 조선의 정치지형, 그리고 현실정치의 역학관계 및 문맥을 이해하는 데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 이런 시각에 입각하게 되면 동요하고 있던 시대를 살았던 당대인들의 정치적 고뇌와 선택의 의미가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 어렵다.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사고의 경직성을 탓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저자 프로필

강준만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6년 1월 5일
  • 학력 1988년 위스콘신대학교메디슨캠퍼스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
    1984년 조지아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
    1980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학사
  • 경력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 수상 2005년 제4회 송건호 언론상

2014.11.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강준만 (康俊晩)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다'라는 평가를 받는 얼마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한명.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유별나다'는 평가는 흠이 되지는 않을 지는 몰라도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젊어서는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물러나서는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은 '유별난' 지식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준만은 그런 소리들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세력에게나 퍼부어대며 책을 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별나다'는 사람은 강준만의 입바른 소리가 성가신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라면 겸손하고 자신의 의견을 직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식인 상에서 강준만은 완전히 반대쪽 극에 서있다. 강준만의 문체는 매우 직선적이고 도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다'라는 평가를 받는 얼마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한명.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유별나다'는 평가는 흠이 되지는 않을 지는 몰라도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젊어서는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물러나서는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은 '유별난' 지식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준만은 그런 소리들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세력에게나 퍼부어대며 책을 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별나다'는 사람은 강준만의 입바른 소리가 성가신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라면 겸손하고 자신의 의견을 직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식인 상에서 강준만은 완전히 반대쪽 극에 서있다. 강준만의 문체는 매우 직선적이고 도발적이라는 점에서 읽는 이를 통쾌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리고 강준만에 제기하는 문제 또한 그의 문체를 닮아 있다. 왜냐하면 강준만이 문제삼는 부분은 많은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준만의 비판은 더욱 전투적이고 신랄할 수 밖에 없다. 지역주의와 연고주의, 학벌 중심 주의, 비합리주의 등의 요소는 현재의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행동 규칙으로 정착된 면이 있다. '좋은 것이 좋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의 비판은 바로 그러한 '은밀한 합의'를 불편하게 만드는 면을 가지고있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그의 문체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강준만의 비판의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너무나 직선적인 문체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서는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까지도 동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부담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공격적이 방식은 논리와 합리성에서 벗어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강준만의 대답은?
"매달 원고지 600장 분량의 글쓰기 작업을 한다. 그래서 문장과 논리가 거친 게 사실이다. 그게 내 단점이자 한계다. 그러나 내 글쓰기의 목적은 독자들에게 교양이나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왕따」당할 각오를 하고 우리 사회의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지식인의 역할로 규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회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은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한 사회과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지식인의 사명이 바로 지식의 대중화에 있다고 여긴다. 굳이 대중이 지식을 생산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좀 더 쉽고 간편하게 지식을 유통하고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그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 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선도적인 구실을 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2013년 벽두엔 ‘증오 상업주의’를 화두로 던지며 2012년 대통령 선거와 한국 정치를 분석했다. 2012년에는 ‘멘토 열풍’에 주목했다. 이어 2012년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라고 선언하며, 증오의 정치가 정치의 주요 동력과 콘텐츠가 되고 시종일관 진영 논리의 포로가 돼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증오 시대를 끝낼 적임자로 안철수를 꼽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결국 ‘증오의 굿판’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 절반을 절망시키는 정치 현실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강준만은 모든 비극은 ‘증오 상업주의’에서 비롯됐으며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한국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분열과 절망의 정치를 끝내고 소통과 화합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생활문화 사전』,『나의 정치학 사전』,『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세계문화 사전』,『선샤인 논술사전』,『대중문화의 겉과 속』(전3권),『한국인 코드』,『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글쓰기의 즐거움』,『대학생 글쓰기 특강』,『인간사색』,『한국 현대사 산책』(전18권) ,『한국 근대사 산책』『지방은 식민지다』, 『고종스타벅스에 가다』, 『입시전쟁 잔혹사』『대한민국 소통법』,『행복코드』『미국사 산책』,『세계문화전쟁』,『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안철수의 힘』, 『멘토의 시대』, 『강남 좌파』,『교양 영어 사전』, 『세계 문화의 겉과 속』『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교양 영어 사전 2』외 다수가 있다.

목차

:: 한국 근대사 산책 4 -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제1장 러일전쟁 전야
01 용암포 개항사건
4년 동안 20번 바뀐 외부대신|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러일전쟁 개전설과 삼국제휴론|양무호 사기 사건
02 고종의 황제 즉위 40주년
즉위 40주년, 50회 탄신일 잔치|월미도 매각사건|웨베르의 한국 방문 소감
03 간도 민족주의의 등장
장지연의 "대한강역고" 출간|1712년 백두산정계비 논란|19세기 후반 조선인들의 간도 이주|간도관리사 이범윤의 활약
04 원산 부흥운동과 YMCA의 탄생
회개와 눈물의 원산부흥운동|‘청년’을 발견한 황성기독청년회의 탄생|YMCA의 교육·계몽 활동|단일교회의 좌절|장로·감리교의 선교방법 차이

제2장 러일전쟁과 한일의정서
01 한반도 쟁탈을 위한 러일전쟁
영일동맹과 노불선언|일본의 38도선 분할론 제시|일본의 전쟁 전략|제물포 해전|충격에 휩싸인 조선 조정|러시아의 ‘영웅 만들기’|‘두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쟁탈 전쟁’
02 한국을 병참기지로 만든 한일의정서
한국의 러일전쟁 병참기지화|도탄에 빠진 민생|아시아주의의 망령
03 황무지개척권 반대투쟁과 한일협정서
일제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와 보안회의 반대투쟁|한일협정서(제1차 ‘한일협약’)와 고문정치|친일단체 일진회의 발족|보부상들의 공진회 활동
04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영국 기자 베델을 사장으로 내세운 신문|박은식·신채호의 참여|일본인 신문들의 창간|"황성신문" "제국신문"의 경영난

제3장 갑진개화운동과 위생청결법
01 동학교단의 신문화운동
일본에 망명한 손병희의 활동|진보회의 단발흑의(斷髮黑衣), 바리캉의 등장|갑진개화운동의 평가
02 화장실 파동과 화투 열풍
서울 거리는 대소변 투성이|김옥균의 "치도약론" "독립신문"의 계몽|한국인의 똥으로 돈 버는 일본인|일본에서 수입된 화투|개화기는 화투의 개화기
03 이승만의 출옥과 출국
감옥생활 5년 7개월 만에 석방된 이승만|상동교회 엡워스 청년회|민영환·한규설의 밀사로 도미(渡美)
04 한국인의 왕성한 호기심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한국인의 서양인 구경|강한 호기심은 한국인의 장점|“코레아의 태양은 서울에만 뜬다”

제4장 일본과 미국의 결탁
01 강압과 착취로 이루어진 경부철도 개통
한국인이 겪은 고통과 굴욕|철도가 만든 개화미신|1906년 경의선 개통|7살 소년을 총살시킨 야만성·잔인성|일진회의 참여|철도가 결정한 도시의 흥망성쇠|철도는 진정 ‘진보의 상징’이었나?
02 일제의 여순 점령
일본의 첩보전에 밀린 러시아|여순 전투의 정치학|부정적인 한국 이미지의 유포|일제의 외교권·독도·통신권 강탈
03 노예로 팔려간 멕시코 이민
이민자 1000명 중 400명 사망|1901~1905년 7226명 미국 이민|해외 교포신문 발간
04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
일본이 압승을 거둔 쓰시마 해전|미국이 조달해준 일본의 전쟁자금|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국을 먹다|20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논쟁
05 이승만의 루스벨트 면담
윤병구·이승만, 루스벨트를 만나다|루스벨트의 일본 사랑|‘이승만은 애국열성의 청년지사’
06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 포츠머스 조약
루스벨트가 주도한 포츠머스조약|일본 국민의 폭동|일제강점이 5년 더 걸린 이유|러일 전쟁 발발 100돌을 맞은 일본|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제5장 을사늑약과 시일야방성대곡
01 한국의 주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앨리스 루스벨트의 한국 방문|“정부 대신들이 의논하여 조처하라”|‘을사5적’의 찬성으로 통과된 을사늑약|‘을사5적’인가, ‘을사7적’인가?|민중의 분노|‘침몰하는 배에서 황급히 도망치는 쥐떼’
02 을사늑약 유·무효 논쟁
헐버트·민영찬의 활동|‘을사늑약은 무효다’|고종의 처신|‘낭만주의적 역사인식의 위험’
03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오늘이야말로 목 놓아 크게 울 날이로다’|‘거의 집집마다 보관하고 외웠다’|‘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년 화근을 면함이라’|곧 잊혀진 ‘시일야방성대곡’
04 민영환의 자결이 촉발시킨 연쇄 자결
민영환의 할복자살|민영환의 유서|서울은 ‘흥분의 도가니’|연쇄 자결
05 알렌은 어찌 되었는가?
알렌과 루스벨트의 논쟁|“미국은 우리에게 맏형처럼 느껴진다”|알렌의 모순

제6장 1900년대 중반의 생활문화
01 천도교로 개명한 동학
손병희의 귀국|천도교로의 개명의 정치학|이용구 등 일진회 간부 출교 처분|이용구의 시천교 선포
02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야구 경기
축구대회의 확산|‘YMCA 야구단’|최초의 부인용품 상점
03 흰옷금지령과 공창제
천년 묵은 백의 논쟁|검은색은 ‘문명의 색’|일본 매춘문화의 확산|통감부의 적극적인 공창화 정책
04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등장
애국가 작사자 논쟁|1998년 국가상징연구회 세미나|최병헌 유족과 윤치호 유족의 대결|‘한국민족 구성원의 공동 작품

제7장 애국계몽운동과 실력양성론
01 일제 통감부 설치
‘상왕(上王)으로 군림한 이토’|고종 밀서 사건|밀서 진위 논쟁
02 애국계몽운동의 시작
이제 남은 희망은 교육|사립학교 설립 열기|학회의 조직과 활동|애국계몽운동 개념 논쟁|선교사와 한국인 신도의 갈등
03 최익현의 의병 봉기
최익현 부대의 실상|최익현의 순국|최익현 평가 논쟁
04 민영환의 ‘혈죽(血竹) 신드롬’
“누가 민영환이 죽었다고 말하는가?”|‘대한제국이 처음으로 낳은 국가 영웅’|민영환 서거 100주년
05 "국민신보" "만세보" 창간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 창간|1906년 "만세보" 창간|"만세보"와 일진회의 관계
06 이인직의 "혈의 누"의 정치학
왜 신소설인가?|임헌영의 "혈의 누" "은세계" 비판|이인직의 친일행적|‘애국계몽주의의 통속화’
07 "경성일보" "경향신문" "대한신문" 창간
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 창간|천주교의 "경향신문" 창간|"경향신문"을 계승한 "경향잡지"|이완용내각의 기관지 "대한신문" 창간

제8장 국채보상운동과 고종 퇴위
01 개신교의 평양대부흥운동
“미워하던 일본인까지 사랑하게 되었다”|3배로 증가한 개신교 신자 수|부산·경남지역은 예외|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2007 한국교회대부흥 기념대회’|‘목사안수 100주년 기념 참회기도회’
02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치학
안창호의 한탄|주진오·이만열의 평가|김정기·이혜석의 평가|김진호·백찬홍·최형묵의 평가
03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
일제의 화폐정리사업|“나랏빚을 갚아 국권회복을 도모하자”|거절해도 밀려드는 의연금|일제의 방해공작
04 세브란스병원·대한의원 설립
세브란스병원의 설립|‘알렌 신화’ 논쟁|대한의원의 설립|‘대한의원 100주년·제중원 122주년 기념사업’ 논쟁|“설립정신의 계승이 중요하다”|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05 헤이그 밀사파견 사건
이완용 ‘3품 내각’의 등장|이상설·이준·이위종 파견|일본과 러시아의 방해공작|"만국평화회의보"의 이위종 인터뷰|이위종의 국제기자클럽 연설|이준의 사망|‘헤이그 특사 파견’ 100주년|이준 열사 순국 100주기 기념행사|헐버트 박사 58주기 추모식
06 고종 퇴위, 순종 즉위
이토·송병준의 퇴위 협박|내시가 대신한 황위 양위식|박영효 체포·유형|순종 즉위, 단발 논란|고종의 러시아 망명설

제9장 정미7조약과 군대 해산
01 정미7조약·군대 해산
“매국노를 수입하려거든 대한으로 건너오시오”|광무신문지법 공포|한국군의 마지막 전투와 해산|‘총포 화약류 단속법’과 호랑이 출몰|의병 총대장 이인영의 ‘어처구니없는 일’|신용하의 새로운 해석|의병의 통신시설 파괴|일진회와 자위단의 행패
02 일본 망명 12년 만에 귀국한 유길준
유길준 쿠데타 음모의 전말|흥사단·한성부민회 창설|왜 유길준은 이토를 지지했나?|유길준의 재발견|2003년 유길준 관련 행사
03 일제 소비문화의 침투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의 서울출장소 개설|박람회는 ‘국가적 제전의 가장 중요한 형식’|도쿄권업박람회의 한국인 전시|초상사진 열기
04 자동차의 등장, 열악한 도로 사정
1903년 최초의 자동차 등장|최악의 도로 사정|1908년 최초의 신작로 개통|1905년 교통경찰의 등장|상수도 등장
05 "대한매일신보"의 반일 민족주의
광무신문지법의 효과|일제의 "대한매일신보" 탄압|"대한매일신보"의 의병관과 기독교구국론|장도빈·양기탁의 반일 민족주의 논설|학생들의 ‘단지(斷指) 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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