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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견문록 상세페이지

동방견문록작품 소개

<동방견문록> 경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아시아의 혼
유럽인들에게 신비로운 동양정신을 불어넣은
『동방견문록』 한국최초 완역 결정판!


운명적 만남이 낳은 위대한 불후의 고전
마르코 폴로는 열다섯 살 때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 동방 여행길에 올라,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를 거치는 25년의 여정을 마치고 고향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그 뒤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베네치아군에 참가했다가 포로가 되는데, 감옥에서 소설가 루스티첼로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마르코 폴로의 경험담을 루스티첼로가 글로 옮겨, 마침내 위대한 고전『동방견문록』이 탄생한다.
『동방견문록』은 모두 248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여덟 개 장으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서장은 마르코 폴로가 어떻게 여행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책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제1장은 대 · 소아르메니아와 투르크메니아를 거쳐 이라크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서아시아를 다룬다. 제2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미르를 넘어 타림분지를 거치는 중앙아시아에 대해 서술한다. 제3장은 쿠빌라이 칸 수도인 상도(上都)와 대도(大都)의 모습, 그리고 대칸의 통치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제4장은 중국 북부(카타이)와 사천·운남, 미얀마를 설명하며 제5장은 중국 동남부, 당시 '만지'라고 불리던 남송 영역을 다룬다. 제6장은 베네치아 귀국 길에 보고 들은 인도 각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마지막 제7장은 중앙아시아 대초원과 러시아, 북극지방을 설명한다. 이처럼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당시 알려진 모든 세계를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동방견문록』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13세기 서양인의 시각으로 쓴 세계문화편람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인류역사 최초 대위업
13세기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유럽과, 종교적으로 대립하는 이슬람 문화권만을 ‘세계’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동방’은 단지 여러 구전이나 소문으로 어렴풋이 들려올 뿐, 구체적인 세계의 일부로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시 아시아에서는 세계역사상 가장 강력한 정복왕조가 세워져, 유목과 농경이 조화된 화려하고 웅장한 문화가 탄생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마르코 폴로는 중국을 여행하여 그것을 직접 보고 겪었다.『동방견문록』을 통해 드디어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단절되어 있던 동 · 서가 이『동방견문록』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동방 왕국의 화려한 궁정생활, 신화에나 나올 듯한 신비스런 짐승들, 위대한 왕 프레스터 존, 어마어마한 금은보화와 각종 특산품, 거대한 도시와 신기한 풍습, 수십만 기마대가 펼치는 처절한 전투 등,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유럽 밖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던 당시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로 치부했다. 어느 것에든 ‘수백만의…’하며 수를 부풀리는 그에게 ‘백만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324년 마르코 폴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친구들은 그의 손을 잡으며, 지금이라도『동방견문록』에 담은 이야기들이 거짓임을 밝히고 참회하라고 설득했다. 물론 마르코의 대답은 이러했다. “거짓이라니, 난 내가 본 것의 절반도 다 쓰지 않았어.”
이때 사람들은『동방견문록』이 인류역사 큰 획을 그은 세계고전으로 남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수많은 논란에도『동방견문록』은 필사본으로 전 유럽에 퍼졌고,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더 넓은 세상을 동경하던 사람들은『동방견문록』을 읽고 동방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그리하여 동서양은 더욱 가까워지고 문화교류를 통해 유럽 근대화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서양인 시각으로 본 동양인
13세기는 몽골에 의한 중국 전역 통일이 완성된, 대원 정복 왕조의 통치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다. 물론 이 시기에 대한 중국의 자료가 특별히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이 특수한 시기를 중국 이외의 시선으로 남긴 기록이 있다는 것에 그 중요성이 있다.
본디 이역 사람에 의한 중국 사정의 보고에는, 중국인이라면 진부하기 짝이 없어서 간과할 법한 사항에 대해서도 이국인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관찰해서 서술한 것이 꽤 있다. 특히 마르코 폴로는 색목인(서역인)을 몽골인과 비슷하게 우대했던 원조의 독자적인 정책에 힘입어 말석이긴 해도 직접 정치계층에 낄 수 있었기에, 당연히 그 보고는 보통 외국인 여행자가 그렇듯이 그저 스쳐지나가는 관찰만이 아닌 그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 쿠빌라이 칸의 여름 수도가 되는 상도, 겨울 수도가 되는 대도의 궁전 각각의 구조, 대칸 궁정에서 개최된 향연을 비롯한 연간행사, 유림에서 대칸의 행궁과 사냥놀이의 묘사는 궁정에 드나들 수 있었기에 비캷소 가능했으며, 이는 중국 문헌의 누락이나 결함을 보충할 자료이기도 하다.
마르코 폴로는 본디 상인이다. 따라서 그의『동방견문록』은 타국의 색다른 성격과 풍속을 주로 기록했던 평범한 여행자들의 여행기와는 전혀 다르다.『동방견문록』은 그보다도 각지의 산물, 물가, 시장상황, 통화 등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면서 그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산물 중에서도 특히 황금, 은, 보석, 진주, 향료, 향수, 비단 같은 상품이 자주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마르코 폴로가 사치품 무역에 종사하던 상인이었음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들에게는 실익을 가져다줄만한 것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그와 관련된 사정을 부정확하거나 애매하게 기록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당연히 이러한 사항을 면밀하게 기록했다. 그런데 실은 이런 기록이 있었기에 이 풍부하고 정확한 ‘견문록’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과 구전을 바탕으로 한 놀랍고 신비로운 기록
『동방견문록』은 피사 출신 소설가 루스티첼로가 제노바 감옥에서 마르코 폴로의 구술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을 조본(祖本)으로 한다. 소설가의 손을 거쳤으므로, 소설과 비슷한 구절이 곳곳에서 보인다. 예를 들면 26~29절 그리스도교도 구두장이의 기적, 32~33절 사바의 성인 세 명이 받은 계시, 36절 토질과 인정의 관계에 대한 케르만 왕의 실험, 42~44절 ‘산속 노인’, 55절 사마르칸 교회에서 일어난 기적 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코 폴로나 루스티첼로가『동방견문록』에 지어낸 이야기를 넣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산속 노인’이나 69~73절 프레스터 존 멸망의 전말, 제96절 아크메트 암살 이야기 등은 모두 소설같이 서술되어 있기는 해도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예를 들면 121~122절의 ‘금왕’과 프레스터 존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도 마르코 폴로는 그 지방의 구전을 바탕 삼아 서술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각지에서 전승된 이야기가 저자를 통해서 이러한 형태로 재연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동방견문록』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비교적 단조로운 문체와 더불어 ‘상투적인 표현’을 지적받았고, ‘허풍쟁이 마르코 이야기’라고 깎아내려지며 단지 어린이용 옛날이야기 같은 취급을 받았다. 이후 시대가 중세를 벗어남에 따라 이 책의 신빙성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오랜 세월 이런 취급을 받아온 『동방견문록』은 19세기 이후 번역자들의 노력으로 재평가되었다. G. 포티에의 1865년 프랑스어 판이 그 시초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역작이라면, 1871년 이후 수년에 걸친 H. 유울의 영어판 및 1918년 이후 P. 페리오의 주석은 그 역작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다.『동방견문록』이 참으로 위대한 동양학자의 주석에 의해 수세기 만에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를 하나로 이어낸 숭고한 업적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동과 서를 잇는 교통노선을 오간 사람의 수는 실로 막대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름 없는 자들이다. 이름 없는 자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자라고 해도 그 지식은 본인을 통해 반드시 주변으로 퍼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범위는 대단히 한정적이고, 그 전승도 전해들은 각 개인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다양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국 망각 속으로 묻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록과 필사는, 정보를 올바르게 전승하여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다 같은 기록과 필사라도, 체험자 본인이 남긴 견문록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가치가 높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참으로 숭고한 그 기록들이 당시, 그리고 후세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동방견문록』은 그중에서도 다른 것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규모에서 비롯되는 내용의 풍부함이 그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세계 일주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그 여행의 의의와 더불어 그 내용의 풍부함을 통해, 그의 업적에는 이중적인 중요성이 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저자 -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는 1254년경 이탈리아의 상업도시 베네치아에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로 폴로는 그가 태어날 때 중앙아시아의 중국에 있었으며, 그가 15세 때 돌아왔다. 17세 때 아버지와 함께 베네치아를 떠나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1275년 원나라의 세조가 있던 카이펑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원나라에 간 이유는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의 요청으로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의 성유와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을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서방과의 교류를 원하고 있었던 쿠빌라이 칸으로서는 그리스도교(기독교)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같이 여행을 시작한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들은 모두 돌아가, 성유만 갖고 황제를 알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세조의 신임을 얻은 그는 정치, 외교 등의 요직을 맡게 되었다. 마르코 폴로는 관리로써 원나라를 위해서 일하면서 17년 동안 중국의 여러 도시와 지방을 비롯하여 몽고·버마·베트남까지 다녀왔다. 1292년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제노바와의 해전에 가리 함대에 속하여 출전하였으나 전쟁에 패하여 포로가 되었다. 1년간 감옥 생활을 하면서 아시아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들려 주었는데, 이때 작가 루스티켈로가 자신의 중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마르코의 이야기를 받아적어, 그 유명한 《동방견문록》이 쓰여졌다. 하지만 원제는 《세계의 서술》이었으며, 이는 유럽인이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세한 지식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서적은 유럽인의 동방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중세 동방 연구에 관한 중요한 문헌이다.

역자 - 채희순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졸업, 배화여고 교사, 동국대학교 교수,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 사범대 교수를 지냈다. 고등고시위원 역임. 지은책에 『동양사개론』,『동양문화사』,『대세계의 역사』,『(고등학교)세계사』 옮긴책에『맹자(역해)』,『손자(역해)』,『오자(역해)』,『한비자(역해)』『손자병법(역해)』 등이 있다.

목차

서장
제1장 서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횡단
제2장 중국의 서북 변경
제3장 쿠빌라이 칸의 통치
제4장 윈난으로의 사절행
제5장 대운하 연안 공도를 따라 푸젠으로 가는 여정
제6장 남해 경유 귀국 항로
제7장 터키국의 사정
동방의 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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