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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 상세페이지

책 소개

<초사> 초사란 전국시대 후기 초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음악을 이용해 지어진 새로운 시체이자 굴원과 그 이후의 작가들이 이 시체를 이용해 지은 시가를 말한다. 당시 북방에서 유행했던 <시경>과는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히 다른 시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 초사는 <시경>의 현실적인 시들과 달리 개인의 고뇌와 번민을 수많은 비유와 대구로 표현하여 중국 문학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한층 높였다. 형식적으로는 매 구의 중간 혹은 끝에 ´혜兮´, ´사些´, ´지只´ 같은 어조사를 두어 뛰어난 운율미를 갖고 있고 문장 끝에 ´난亂´을 두어 작품 전체를 총결하기도 한다.

초사는 굴원이 활동할 당시에는 새로운 시체였지만 초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한나라 때였다. 전한 성제 때 유향(기원전 77~기원전 6)이 옛 문헌을 정리하면서 초나라의 굴원과 송옥宋玉의 작품을 비롯한 한나라의 가의.회남소산.동방삭.유향.왕포.엄기의 작품들을 한 곳에 엮어 ´초사´라고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이때부터 초사는 하나의 새로운 시체로 인식되었다.

후한 안제 때 왕일은 유향이 엮은 <초사>에 주석을 달고 자신이 직접 쓴 <구사>를 넣어 <초사장구>라는 책을 펴냈다. 나중에 유향이 엮은 <초사>는 실전되고, 왕일의 이 <초사장구>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우리가 초사의 면모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사> 주석본이다.


출판사 서평

“백세百世가 지나도 필적할 수 없는 문장”
한나라 작품까지 포함한 전체 『초사楚辭』
국내 첫 완역

초사란 전국戰國시대 후기 초楚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음악을 이용해 지어진 새로운 시체이자 굴원屈原과 그 이후의 작가들이 이 시체를 이용해 지은 시가를 말한다.
당시 북방에서 유행했던 『시경詩經』과는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히 다른 시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 초사는 『시경』의 현실적인 시들과 달리 개인의 고뇌와 번민을
수많은 비유와 대구로 표현하여 중국 문학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한층 높였다.

▲ 『시경』과 양대 산맥으로 중국 문학의 또 다른 원류
▲ 민간의 집체창작에서 작가 개인이 창작하는 시대 개창
▲ 중국 낭만주의 문학의 시초이자 남방 신화의 진미
▲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묘사로 만들어낸 아름다운 표현

초사楚辭란
초사란 전국戰國시대 후기 초楚나라의 고유한 언어와 음악을 이용해 지어진 새로운 시체이자 굴원屈原과 그 이후의 작가들이 이 시체를 이용해 지은 시가를 말한다. 당시 북방에서 유행했던 『시경詩經』과는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히 다른 시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 초사는 『시경』의 현실적인 시들과 달리 개인의 고뇌와 번민을 수많은 비유와 대구로 표현하여 중국 문학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한층 높였다. 형식적으로는 매 구의 중간 혹은 끝에 “혜兮” “사些” “지只” 같은 어조사를 두어 뛰어난 운율미를 갖고 있고 문장 끝에 “난亂”을 두어 작품 전체를 총결하기도 한다.
초사는 굴원이 활동할 당시에는 새로운 시체였지만 초사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한나라 때였다. 전한前漢 성제成帝 때 유향劉向(기원전 77~기원전 6)이 옛 문헌을 정리하면서 초나라의 굴원과 송옥宋玉의 작품을 비롯한 한나라의 가의賈誼(기원전 201~기원전 169)·회남소산淮南小山·동방삭東方朔·유향劉向·왕포王褒·엄기嚴忌의 작품들을 한 곳에 엮어 “초사”라고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이때부터 초사는 하나의 새로운 시체로 인식되었다.
후한 안제安帝 때 왕일王逸은 유향이 엮은 『초사』에 주석을 달고 자신이 직접 쓴 『구사九思』를 넣어 『초사장구楚辭章句』라는 책을 펴냈다. 나중에 유향이 엮은 『초사』는 실전되고, 왕일의 이 『초사장구』가 지금까지 전해온다. 우리가 초사의 면모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책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사』 주석본이다.

초사의 작가와 작품
굴원은 초사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다. 굴원은 전국시기 초나라 선왕宣王 17년, 즉 기원전 353년 정월 23일에 태어났다. 이름은 평平, 자는 원原이다. 왕족 출신이라 어려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초 회왕懷王 때는 능력을 인정받아 당시 초나라 최고의 행정장관인 영윤令尹 다음인 좌도左徒라는 직책을 맡아 국사를 처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국충정에서 나오는 타협할 줄 모르는 곧은 성격 때문에 많은 신료의 미움을 받아 세 차례나 유배되는 고초를 겪는다. 이는 그를 철저히 좌절시켰고 임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이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초사라고 할 수 있다.
굴원이 살았던 전국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기였다. 제齊·초楚·연燕·한韓·조趙·위魏·진秦나라가 천하를 다투었다. 이중 진나라의 국력이 가장 강성했다. 초나라는 강성해지는 진나라를 막고자 제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었다. 진나라는 초나라를 치기 위해서 이 군사동맹을 와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에 진 혜왕惠王은 언변에 능한 장의張儀를 초나라로 보냈다. 장의는 초나라에게 제나라와 동맹관계를 끊는다면 그 대가로 상商·어於 땅 600리里를 돌려주겠다고 한다. 회왕은 마음이 동해 제나라와 동맹관계를 끊고 진나라로 사람을 보내 이 600리의 땅을 요구한다. 그러나 장의는 600리의 땅이 아니라 6리의 땅이라고 우긴다. 화가 난 회왕은 군사를 동원해 단양丹陽에서 진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결과 초나라는 진나라에 대패하고 한중漢中 지방까지 빼앗긴다.
위기감을 느낀 회왕은 제나라와 동맹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굴원을 불러 사자로 보냈다. 회왕 18년(기원전 311), 진나라는 한중 지방을 돌려주겠다며 화친을 요구한다. 이때 회왕은 화친의 대가로 장의를 보내줄 것은 요구한다. 장의는 초나라에 와서 회왕의 총애를 받는 근상?尙에게 뇌물을 주어 초나라 임금에게 좋은 말을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이로써 장의는 석방된다. 회왕 24년(기원전 305), 초나라는 제나라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진나라와 연합한다. 이때 진나라와 연합을 반대했던 굴원은 간언을 올렸다가 조정 신료들의 미움을 받아 한북漢北으로 유배를 당한다.
회왕 30년(기원전 300), 진나라는 초나라를 공격하여 8개 성을 점령한다. 회왕은 굴원을 다시 불러들였으나 굴원은 끝까지 제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대항할 것을 주장한다. 당시 진 소왕昭王은 회왕에게 편지를 써서 두 사람이 무관武關에서 만나 맹약을 체결하자고 제의했다. 회왕은 굴원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관으로 간다. 회왕은 무관에 들어서자 바로 연금되고 땅을 할양하라는 협박을 받는다. 초나라에서는 대신들이 태자 횡橫을 임금으로 세우는데 이가 경양왕頃襄王이다. 경양왕 3년(기원전 296), 회왕은 끝내 초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진나라에서 사망한다. 굴원은 영윤 자란子蘭에게 회왕이 죽은 책임을 돌린다. 자란은 상관대부上官大夫를 사주해 경양왕 앞에서 굴원을 비방하게 한다. 경양왕은 대로하여 굴원을 강남으로 유배를 보낸다. 굴원은 결국 자신을 시기하는 신료들과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임금에게 절망한다. 조정이 무능한 신료들에 의해 장악당하면서 초나라의 국세도 나날이 기울어져갔다. 경양왕 21년(기원전 278)에 진나라의 장수 백기白起가 초나라의 수도 영도?都를 공격해 초나라는 결국 패망한다. 이에 절망한 굴원은 멱라강汨羅江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굴원의 작품으로 『사기史記』는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 「회사懷沙」 5편이 있다고 했고,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는 25편이 있다고 했다. 『한서』에서 말하는 25편은 왕일의 『초사장구』와 주희朱熹(1130~1200)의 『초사집주楚辭集註』의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 25편은 각각 「이소」 「구가九歌」(11편), 「천문」 「구장九章」(9편), 「원유遠遊」 「복고卜居」 「어부漁父」다. 여기에 현대 학자들의 고증으로 굴원의 작품으로 보는 「대초大招」까지 포함하면 총 26편이 된다. 『사기』에서 언급한 「초혼」은 『초사장구』에서 송옥宋玉이 지은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굴원의 작품에 넣지 않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굴원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 「이소」다. 「이소」는 중국 고대 시가 중에서 가장 긴 작품으로 굴원이 한북으로 유배당했을 때 지어졌다. 내용은 좋은 자질을 가지고도 등용되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인데 작가 굴원의 고고한 인품이 잘 나타나 있다. 「구가」는 민간에서 신에게 제사지내는 악곡에 개인의 정서를 넣어 만든 시다. 「구가」에는 「동황태일東皇太一」 「운중군雲中君」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 「대사명大司命」 「소사명少司命」 「동군東君」 「하백河伯」 「산귀山鬼」 「국상國?」 「예혼禮魂」이 수록되어 있다. 「구가」는 제사지내는 신에 따라 하늘·땅·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천신을 찬미하는 것으로는 「동황태일」 「운중군」 「동군」 「대사명」 「소사명」이 있고, 지신을 찬미하는 것으로는 「상군」 「상부인」 「하백」 「산귀」가 있고, 사람귀신을 찬미하는 것으로는 「국상」이 있다. 「천문」은 「이소」 다음으로 긴 시다. 시에는 170여개의 질문을 하며, 천지의 생성과 일월성신의 운행에서 고대의 신화전설과 하·상·주의 역사적 흥망성쇠 그리고 초나라의 장래 등을 묻고 있다.
「구장」은 굴원이 지은 9편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석송惜誦」 「섭강涉江」 「애영哀?」 「추사抽思」 「회사懷沙」 「사미인思美人」 「석왕일惜往日」 「귤송橘頌」 「비회풍悲回風」이 수록되어 있다. 「귤송」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굴원이 유배당한 곳이거나 유배 가던 중에 지은 것이다. 이들 작품 중 시기적으로 「석송」이 가장 이르다. 그 다음이 「추사」 「사미인」으로, 굴원이 한북으로 유배당했을 때 지어졌다. 「섭강」 「애영」은 경양왕 때 강남으로 유배되었을 때 지어졌고, 「비회풍」 「회사」 「석왕일」은 굴원이 멱라강에 투신하기 전쯤에 지어졌다. 「석왕일」은 굴원의 절명사다. 이 여덟 편은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하소연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이외에 「원유」 「복거」 「어부」 등도 굴원이 유배를 당하게 된 이유와 자신의 처지 및 심정을 읊고 있다.
송옥은 굴원의 뒤를 잇는 초사문학의 중요한 작가다. 굴원과 같은 초나라 사람이지만 굴원보다 약간 후대의 문인이다. 대략 초나라 경양왕 원년(기원전 298) 전후에 태어났고, 초나라가 패망할 무렵인 대략 기원전 222년에 사망했다. 경양왕·고열왕考烈王·유왕幽王 시기에 활동했다. 경양왕의 신하로서 몇 차례 간언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부 등도자登徒子와 당륵唐勒 등의 모함을 받았다. 그는 굴원의 뒤를 잇는 초사 문학의 대가이자 한부漢賦의 시조다. 초사와 한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작은 「구변九辯」과 「초혼招魂」이다. 「구변」은 가을의 처량한 경치를 대하면서 자신의 처지와 초나라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읊고 있다. 쇠퇴해가는 초나라의 현실이 초목이 시드는 가을날의 처량함과 일치하고 있어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초혼」은 굴원의 「대초」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으로 초 경양왕의 혼을 부르는 작품이다.
가의賈誼는 낙양 사람이다. 18세 때 고향에서 이미 문재를 떨쳤고, 20살 때 한 문제文帝가 박사博士로 불렀다. 그리고 얼마 후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승진했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다 대신들의 배척을 받고 장사왕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되었다. 나중에 다시 양회왕태부梁懷王太傅로 자리를 옮긴다. 양회왕이 말에 떨어져 죽자 가의는 대단히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후 얼마 있지 않아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석서惜誓」 「조굴원부弔屈原賦」 「붕조부鵬鳥賦」가 있다.
회남소산淮南小山은 사적이 분명치 않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기원전 179~기원전 122)의 문객으로 추정된다. 대표작으로는 「초은사招隱士」가 있다.
동방삭東方朔은 한 무제武帝 때의 사람으로, 무제가 천하에 재능 있는 선비를 구할 때 자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크게 중용되지 못했다. 대표작으로는 「칠간七諫」 7편이 있다.
유향劉向은 초나라 원왕元王의 후대로, 패현沛縣 사람이다. 황명을 받들어 각종 전적을 교감하여 선진 이전의 전적들을 보전하고 전래하는 데 큰 업적을 세웠다. 그러나 벼슬길이 순탄하지 않아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성제成帝 때 중용되어 여러 차례 간언을 올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으로는 「구탄九歎」 9편이 있다.
왕포王褒는 전한 촉군蜀郡 사람이다. 문재가 뛰어나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일찍 병사한다. 대표작으로는 「구회九懷」 9편이 있다.
엄기嚴忌는 문재와 언변이 뛰어났다. 오왕吳王 유비劉?의 문객으로 있다가 나중에 유비가 모반을 일으키자 글을 올려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오왕을 떠나 양효왕梁孝王에게 기탁했
다. 양효왕이 예로써 대우해주었지만 정치적으로 어떤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작으로는 「애시명哀時命」이 있다.
왕일王逸은 남군南郡 의성宜城 사람으로 교서랑校書郞과 시중侍中을 지냈다. 가장 이른 초사의 주석본인 「초사장구」를 지었다. 관운은 좋지 않아 세상을 한탄하는 내용의 작품들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구사九思」 9편이 있다.

문학사적인 의의
중국 문학의 원류는 보통 산문은 『상서尙書』에서, 운문은 『시경』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시경』은 서주西周 초년(기원전 11세기)에서 춘추春秋 중엽에 이르는 약 500년간 동안 유행했다. 『시경』 이후 또 300여 년 동안은 『좌전左傳』 『논어論語』 『장자莊子』 같은 역사 산문과 제자諸子 산문이 많이 지어졌다. 초사는 바로 이들의 뒤를 잇는 중국 문학의 또 다른 거대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초사는 여러 가지로 중국 운문의 원류인 『시경』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초사는 중국 문학의 또 다른 원류다. 『시경』은 사언이 위주이고 한대 오언 고체시古體詩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사의 육언六言 형식은 한대의 부賦와 정형화된 칠언시七言詩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중국 소설과 희곡도 초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복거」와 「어부」의 대화체 그리고 「초혼」과 「대초」 등은 중국 희곡의 원류가 되었다. 이로 보면, 비록 『시경』보다 늦게 나타났지만 중국 문학의 또 다른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초사는 민간의 집체창작에서 작가 개인이 창작하는 시대를 열었다. 『시경』에 수록된 시들은 서주 초기부터 민간에 유행한 시가들을 채집한 시들로 후인들이 정리하고 편집해 만들었다. 초사는 굴원과 그의 후학 송옥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내용 또한 『시경』과 달리 개인의 정서를 집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문학에서 이렇게 작가가 개인의 울분과 정서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한 것은 초사에서 시작되었다.
셋째, 초사는 중국 낭만주의 문학의 시초다. 초사 이전의 문학은 중원의 북방문화 위주였다. 『상서』와 『시경』을 봐도 황하 유역의 문화가 집중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작품의 내용도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색채가 두드러진다. 초사는 남방 문학과 음악의 영향을 받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색채가 강하다. 용龍과 함께 노닐며, 신들과 함께 구름 위를 달리는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런 낭만주의적 요소들은 중국 문학을 더 풍요롭게 해주었다.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의 기상천외한 시, 명대 오승은吳承恩의 『서유기西遊記』 등의 작품들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했다.
넷째,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내심의 묘사는 중국 문학의 표현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굴원은 개인의 울분을 노래하면서 고대의 신화·전설과 역사를 넘나들고 천신과 용을 부렸고, 또 복잡한 내심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는 전대의 작품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일례로 “근심을 빙 둘러 띠로 만들고, 시름과 고통을 엮어 속옷으로 만드네?思心以爲?兮, 編愁苦以爲膺.”(「비회풍悲回風」) 같은 구절은 작가의 온 몸이 근심·시름·고통에 휩싸여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그 감정묘사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초사의 뛰어난 점은 이렇게 작가의 굴곡진 인생경력에 뛰어난 문학적 상상력과 섬세한 감정묘사를 결합해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글항아리판 초사 번역의 의의
현재 국내에도 여러 편의 번역서들이 나와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이민수의 『초사』(1992), 류성준의 『초사』(2002), 하정옥의 『굴원』(2003)이 있다. 아쉬운 점은 국내의 번역서는 굴원의 작품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민수의 『초사』와 하정옥의 『굴원』은 굴원의 작품만 대상으로 하고 있고, 류성준의 『초사』는 송옥의 「초혼」까지 넣고 있으나 이 역시 기본적으로 굴원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번에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로 나오는 『초사』 완역본은 이들 국내 초사 번역서를 참고해 굴원과 송옥을 비롯한 한대 초사 작가들의 작품까지 모두 번역해 초사 작품 전체를 완역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시경』과 쌍벽을 이루는 문학작품을 국내에 정식으
로 완전하게 소개하는 것임은 물론 국내에 초사 작품 전체를 감상하거나 연구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굴원屈原
전국시대 초나라의 신하이자 문인. 나라를 올바로이끌어보려 했으나 중상모략으로 궁궐에서 밀려나 유랑하며 불운한 말년을 보냈다. 「이소離騷」 「천문天問」 「초혼招魂」 「애영哀郢」 「회사懷沙」 등의 절창을 남겼다. 진나라의 장수 백기白起가 초나라의 수도 영도郢都를 공격해 초나라가 결국 패망하자 멱라강汨羅江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송옥宋玉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의 궁정시인. 굴원에게 사사하여 초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었으나, 뒤에 실직했다. 굴원에 다음가는 부賦의 작가로, 두 시인을 ‘굴송屈宋’이라 병칭했다. 대표작은 「구변九辨」 「초혼招魂」이다.

가의賈誼
한나라 시기 낙양 사람이다. 18세 때 고향에서 이미 문재를 떨쳤고, 20세에 한 문제文帝가 박사博士로 불렀다. 당시 고관들의 시기로 좌천되자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굴원에 비유해 「붕조부鵩鳥賦」 「조굴원부弔屈原賦」 등을 지었다.

회남소산淮南小山
사적이 분명치 않으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문객으로 추정된다. 대표작으로는 「초은사招隱士」가 있다.

동방삭東方朔
한 무제武帝 때의 사람으로, 무제가 천하에 재능 있는 선비를 구할 때 자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에도 크게 중용되지 못했다. 대표작으로는 「칠간七諫」 7편이 있다.

유향劉向
전한 시기 사람으로 각종 전적을 교감하여 선진 이 전의 전적들을 보전하고 전래하는 데 큰 업적을 세 웠다. 벼슬길이 순탄치 않아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 고 성제成帝 때 중용되어 여러 차례 간언을 올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으로는 「구탄九歎」 9편 이 있다.

왕포王褒
전한 촉군蜀郡 사람이다. 문재가 뛰어나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일찍 병사한다. 대표작으로는 「구회九懷」 9편이 있다.

엄기嚴忌
문재와 언변이 뛰어났다.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문객으로 있다가 유비가 모반을 일으키자 글을 올려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양효왕梁孝王에게 기탁했다. 정치적으로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 대표작으로는 「애시명哀時命」이 있다.

왕일王逸
남군南郡 의성宜城 사람으로 교서랑校書郞과 시중侍中을 지냈다. 가장 이른 초사의 주석본인 「초사장구」를 지었다. 관운은 좋지 않아 세상을 한탄하는 내용의 작품이 많다. 대표작으로는 「구사九思」 9편이 있다.


옮긴이 권용호
중국 난징대 중문과에서 고전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대 남희南戱 곡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 객원교수로 있다.
연구 분야는 중국 고전문학이고, 『송원희곡사』(2001)와 『중국역대곡률논선』(2007)은 학술원 우수도서에 선정된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 문학이 창작되는 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중국 문학의 탄생』을 집필하고 있다. 아울러 중국 문학 연구에는 고전에 대한 기초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절감하고 『상서』 『장자』 『한비자』 『초사』 같은 주요 고전들을 읽고 번역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 문학』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역대곡률논선』 『송원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측천무후』 『6년 교육』 『장자 내편 역주(장자의 마음)』 『그림으로 보는 중국연극사』 등이 있다. 이외에 「왕국유의 『송원희곡사』 연구」 등의 논문이 있다.

목차

해제


제1편 이소離騷 원망과 이별 그리고 떠남의 노래

제2편 구가九歌 신들에게 올리는 노래
동황태일東皇太一 하늘의 신
운중군雲中君 구름의 신
상군湘君 상수의 신
상부인湘夫人 상수의 여신
대사명大司命 생명의 신
소사명少司命 어린이의 신
동군東君 태양의 신
하백河伯 황하의 신
산귀山鬼 사랑과 혼인의 신
국상國殤 호국영령들의 신
예혼禮魂 혼을 떠나보내는 신

제3편 천문天問 하늘에 물음

제4편 구장九章 슬픔과 원망의 노래
석송惜誦 진심을 밝히며
섭강涉江 장강과 상수를 건너며
애영哀郢 영도郢都를 그리며
추사抽思 그리움에 사무쳐
회사懷沙 강물로 돌아가리
사미인思美人 임을 그리며
석왕일惜往日 지난날을 소중히 여기며
귤송橘頌 귤을 찬미하는 노래
비회풍悲回風 회오리바람에 슬퍼하며

제5편 원유遠遊 멀리 떠돌며

제6편 복거卜居 점을 쳐 진로를 물음

제7편 어부漁父 어부와의 대화

제8편 대초大招 회왕懷王의 혼을 부름

제9편 구변九辯 가을날의 원망

제10편 초혼招魂 경양왕頃襄王의 혼을 부름

제11편 석서惜誓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제12편 초은사招隱士 은거하는 이를 부르며

제13편 칠간七諫 임금에게 올리는 노래
초방初放 첫 유배를 당해
침강沈江 강에 몸을 던지며
원세怨世 세상을 원망하며
원사怨思 원망과 그리움에
자비自悲 스스로 슬퍼하며
애명哀命 운명을 슬퍼하며
유간謬諫 하고 싶은 말을 올리며

제14편 애시명哀時命 시운을 슬퍼함

제15편 구회九懷 그리움과 아쉬움의 노래
광기匡機 위태로움을 바로 세우며
통로通路 영도로 가는 길
위준危俊 인재들이 위태로워
소세昭世 세상을 밝히며
존가尊嘉 덕망 있는 이를 존중하며
축영蓄英 아름다운 자질과 덕을 기르며
사충思忠 마음을 슬퍼하며
도옹陶壅 버림받음 것을 답답해하며
주소株昭 간사한 이들을 꾸짖으며

제16편 구탄九歎 회고와 떠남의 노래
봉분逢紛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이세離世 세상을 떠나며
원사怨思 원망과 그리움
원서遠逝 멀리 떠나며
현惜賢 어진 이들을 슬퍼하며
우고憂苦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민명愍命 운명을 슬퍼하며
사고思古 옛날을 생각하며
원유遠游 멀리 떠돌며

제17편 구사九思 슬픔과 미움의 노래
봉우逢尤 화를 당해
원상怨上 임금님이 원망스러워
질세疾世 세상을 미워하며
도란悼亂 어지러운 세상을 슬퍼하며
상시傷時 때를 슬퍼하며
애세哀歲 가는 세월을 슬퍼하며
수지守志 뜻을 지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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