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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끝에 철학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청소 끝에 철학

쓸고 닦았더니 사유가 시작되었다
소장종이책 정가13,000
전자책 정가30%9,100
판매가9,100

청소 끝에 철학작품 소개

<청소 끝에 철학>

책 속으로


생물의 분비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듯 공간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생활의 증거이다. 치워도 또 나오고, 다시 치워도 계속 나오는 쓰레기 자체가 그 공간에 ‘생활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중략) 오랫동안 단독주택에 살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집을 산 사람이 집을 부수고 그 자리에 연립주택을 지을 계획이라면서, 버릴 가구나 쓰레기를 굳이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중략) 무심코 쓰레기를 분리하다가 문득 ‘아 참, 이거 내버려둬도 되지. 청소할 필요 없지’ 하는 생각이 들면 아련하고 서운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이 공간이 진짜 ‘사라진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p.6~7 <프롤로그: 청소가 끝난 자리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은 세제가 담긴 스프레이를 바닥에 뿌리고 물기 없이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다. 이러한 방법이 효율성 측면에서는 물걸레질보다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물걸레질을 주된 청소 방법으로 하는 우리나라 가정집에서는 다른 요소가 들어 있지 않은 청량한 물이 더러움을 씻어내주어야 비로소 가장 깨끗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단순한 액체가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깨끗한 물을 떠놓고 소원과 안녕을 빌던 것은 물에 정화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22~23 <물은 가장 오래된 약>

하나하나 버리면서 공허함보다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쓸모’의 많은 부분이 나의 집착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해방감은 포기를 ‘선택’하면서 얻게 된다. 포기를 선택하는 것은 주체적인 삶의 방법으로, 집착해서 얻는 것보다 열등하지 않다. 샤키야족의 왕인 아버지와 코살라 왕국의 공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영원히 번뇌를 끊고자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출가했다. 싯다르타의 출가를 ‘마하비닛카마나(Mahabhinikkhamana)’라고 부르는데, 이는 ‘위대한 출가(the Great Departure)’ 또는 ‘위대한 포기(the Great Renunciation)’를 의미한다. 비움은 의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도적이며 자발적인 행위다.
p.61 <비움으로써 다시 채우는 힘>

머물렀던 공간에는 나의 자취가 묻는다. 그 자취를 치우는 것은 미래의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따라서 청소는 과거에 내가 존재했던 증거를 돌아보는 일인 동시에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하는 행위이다. ‘나는 청소한다. 고로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p.88~89 <자취를 치우는 이유>

청소를 하면서 의자를 옮기다 방문을 찍어 자국이 났다. 원목 문양의 깨끗한 방문에 자국이 나니 무척 신경이 쓰였다. 방문 앞을 걸레질할 때면 꼭 그 자국을 찾아봤다. 평소에는 들여다보지 않던 방문이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찍힌 자국을 자세히 보고 어루만지며 속상해했다. 그러고 나서 2주 정도 해외에 나가게 되었다. (중략) 평온하게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아, 방문!’ 하는 생각에 찻잔을 내려놓고 문 앞으로 급하게 갔다. 하지만 문짝요정이 왔다 갔나 싶을 정도로 도무지 그 찍힌 자국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자국을 찾아내는 데 한참을 몰두했다. 마침내 자국이 나오자 반가움에 ‘아, 다행이다. 그렇지. 깜짝 놀랐네’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찬찬히 보니 그렇게 눈에 띄는 자국은 아니었다.
p.100 <상처를 위한 시간>

쌓았다 치우면 그만큼 명확하게 치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은 행복에 슬픔이 필수라고 했다. 슬픔이 없다면 행복은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중략) 1985년 미국 미네소타주 램지종합병원의 윌리엄 프레이 박사 등 연구진은 육체적 자극에 의해 나온 눈물과 감정이 고조되어 나온 눈물의 성질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양파를 잘게 썰어 눈가에 대고 흘린 눈물과 슬픈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을 채취해서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감정이 고조돼 흘린 눈물에만 카테콜아민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다. 카테콜아민 호르몬은 몸속에 많이 쌓이면 다양한 질병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물질이다. 슬픔을 표출하는 눈물은 몸속의 유해한 물질을 배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위로한다.
p.109~110 <더러워야 깨끗해진다>

아이가 인형에게 걱정을 말하고 베개 밑에 넣어두면 부모는 몰래 그 인형을 치워버린다. 그리고 인형이 아이의 걱정을 가져갔다고 말한다. 아이는 자신이 둔 자리에서 인형이 없어진 것을 보고 자신의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고 확신하며 평온을 되찾는다. 그 인형들을 ‘걱정인형’이라 부른다. 구체화된 형태는 눈에 보이는 사실이므로 ‘치워진 사실’도 존재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치울 수 없다. 깨끗해진 것을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깨끗해졌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한데 모아 버린 후에야 깨끗해진 자리를 인식할 수 있듯이, 걱정인형이 걱정을 갖고 사라진 자리에는 아이들의 미소가 남는다.
p.119~120 <걱정을 저장하는 인간>

가부장제 사회에서 청소를 비롯한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어머니들에게 맡기면서 칭찬처럼 하는 말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기질이 가족을 보살피고 꼼꼼하게 청소하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논리가 또 있었다. 산업혁명기 유럽의 굴뚝에서는 활발한 산업화의 물결을 증명하듯 끊임없는 잔재가 검은 구름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굴뚝을 청소할 일이 많아졌는데, 성인이 들어가기에는 좁았기 때문에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미성년자들이 들어가서 청소를 했다. 어린 소년들은 몸이 작고 불만을 표출하지도 않아 굴뚝 청소에 적합했다. 그 소년들은 피부암이나 호흡기 질환으로 죽어갔다.
p.128 <‘열심히’ 하는 것 중에 예외적으로 폄하되는 일>

유목민에게 넓게 드리워진 초원은 가축과 자신들을 위한 생명의 푸른빛이다. 담이 없기 때문에 마당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제한이 없다. 자연이 준 혜택의 푸른빛은 나의 것인 동시에 그들의 것이다. 그래서 유목민에게 함부로 무언가를 버리는 일은 어렵다. 외부로 배출되더라도 그 쓰레기는 여전히 자연이 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목민과 달리 정착민에게 버리는 것은 너무나 쉽다. (중략) 사실 청소는 내 집 안에 있던 쓰레기를 외부로 옮기는 일이다. 단지 우리가 외부의 자연과 사적 공간을 구분해, 담으로 둘러싸인 나의 공간에 있던 쓰레기가 밖으로 배출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깨끗해졌다고 느낄 뿐이다.
p.157~159 <담장 안의 청소와 담 너머의 청소>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것’을 의미한다. 이 앞에 부사가 덧붙는다면 그것은 ‘현재’일 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을 맞고 비가 오는 날은 비에 젖는다. ‘있는 그대로’라는 것은 지금 현재의 상태를 말한다. 청소를 도와달라는 어머니의 말에 나름의 반항이랍시고 한마디 하던 때가 있었다. 주로 어차피 내일 할 건데 뭐하러 오늘 또 청소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내일 먹을 건데 오늘 밥은 왜 먹냐?”로 대응하는 어머니의 승리였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매일 끊임없이 죽기 전까지 하는 것이 청소다. 그래서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말은 현재 살아 있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다. 오늘의 청소는 어제의 청소와 다르다.
p.207 <‘그때’의 내가 아니다>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가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제시했던 방법 중 효과적인 것이 두 가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야구장에 가서 열렬한 함성과 응원을 쏟아내는 사람들 틈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으로 주변의 열정적인 기운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를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일주일 내내 집을 대청소하는 것이었다. 구석구석 먼지를 떨어내고, 걸레로 가구와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면서 무거운 감정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을 덜어내면 그 자리에 에너지를 채울 수 있고 다시 일상을 꾸려갈 수 있다.
p.222 <에필로그: 걸레를 짜며, 다시 시작하다>


출판사 서평

청소, ‘새롭게 되돌리는’ 역설의 미학
변화와 유지를 반복하는 인생이, 청소에 있다

청소는 삶을 닮았다.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의 반복이며, 인간은 변화와 유지를 동시에 원한다. 굳이 힘과 시간을 들여 ‘전처럼 새롭게’ 만드는 청소는, 반복과 변화와 유지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행위다.

먼지를 떨고 걸레질을 하는 ‘삶’ 속에서 인문학적 사유가 시작된다. 각기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을 보존하는 일이므로 청소에는 문화가 있다. ‘빗자루 탄 마녀’라는 여성 차별의 역사가 있고, 상처를 다루는 프로이트의 심리학도 있다. 비움으로써 충만해진다는 붓다의 철학은 물론이다.

평생을 일곱 살 아이처럼 그리려고 노력한 피카소가 즐겨 사용한 단어는 ‘naive(순진한)’나 ‘pure(순수한)’가 아니라, 배운 것을 고의적으로 잊는다는 뜻의 ‘unlearn’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문득 무겁게 느껴질 때 집 안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내고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나면, 마음속 우울과 슬픔도 조금 덜어진다. 그 자리에 에너지를 채워 다시 새날을 시작하는 우리는 그렇게 삶의 모든 순간, 청소를 한다.



사유와 지성의 청소
청소한 자국마다, 세상 모든 공부

‘과자 부스러기가 더러운가, 엎질러진 우유가 더러운가.’ 이것은 청결에 대한 개인적 기준이나 선호도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바닥에 앉고 눕는 생활 습관과 집 안에서도 신발을 신는 생활 습관의 차이가 ‘공간을 통제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더러움’을 인식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깨끗하게 만드는 기술은 그들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문화를 반영한다. 즉, 청소라는 행위를 뜯어보면, 가구를 놓는 위치에서부터 난방을 하는 시점까지, 인간이 자신의 ‘둥지’를 어떻게 만들고 보존해왔는지 조망할 수 있다.

또 청소를 통해 더러움을 치워 없애는 ‘사람’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차별을 짚어볼 수도 있다. 저자는 오래전 사회생활을 갓 시작하면서 사무실의 ‘청소 담당’이 되었을 때, 그 공간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자신이 영향력을 가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사무용품이 어디에 있는지, 우편물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는 직원들에게 저자는 ‘대답’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만한 대우를 받지는 못한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엄마! 내 신발주머니 어디 갔어?”라고 물어보면서도 “내 스케치북 왜 버렸어!”라고 쉽게 화를 내었던 것과 같다.

청소에 대한 사유는 결벽증이나 저장강박증 같은 심리학적 탐구로도 나아간다. 또 본질적으로 현대인의 청소가 쓰레기를 ‘내 담장’ 안에서 밖으로 옮기는 일이라는 점에서, 소유의 개념과 자연의 의미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청소를 합니다, 삶이 설레지 않으면

한참 실의에 빠졌던 사람이 극복의 신호를 보이는 순간은, 방치해두었던 자신의 공간을 청소하는 때다. 단순히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다. 저자는 무기력할 때 나를 위한 공간을 청소하다 보면, ‘한번 해보자!’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말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주변을 깨끗하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나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인간의 생활에서 더러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을 강조한다. 먼지가 ‘생긴’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과 먼지가 ‘생길까 봐’ 불편해하는 것은 다르다. 청소가 주는 자유를 아는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간을 자연스레 더럽히는 행동을 오히려 구속하지 않는다. 다시 지저분해지면 그때 또 치우면 된다. 삶도 그렇다. 힘든 일이나 무거운 감정 자체를 두려워하기보다 그것들을 한번씩 ‘청소한’ 자리에 다시 에너지를 채우면 된다고, 저자는 청소의 즐거움을 삶에 빗댄다.



저자 소개

저자 임성민

무슨 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숨쉬기 운동’이라고 우스갯소리처럼 대답한다. 하지만 숨 쉬는 것을 운동으로 생각하면 운동이고, 또 진짜 운동하듯 숨을 쉴 수도 있다. 어떤 질문에 대답하려 할 때 뭔가 대단한 것을 떠올리려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매일 꾸려가는 일상과 그 일상이 모인 삶 자체가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경희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화의상 스타일리스트, 홍보회사 아트디렉터, 패션가방전문회사 대표 등을 거쳐 현재 패션컨설팅회사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며 겸임으로 경희대학교 의상학과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에 《지식인의 옷장》이 있다. 하루를 마치고 자기 전에 유튜브로 샤넬 패션쇼나 <나는 자연인이다>를 본다.

목차

목차


Prologue
청소가 끝난 자리에서

01. 청소 끝에 공간을 알다 : 청소와 문화
바닥, 그리고 걸레
물은 가장 오래된 약
과자 부스러기가 더러운가, 엎질러진 우유가 더러운가
태양의 살균력
마녀의 빗자루
청소의 기준

02. 청소 끝에 내려놓다 : 청소와 무(無)
비어 있었음을 인식하다
이미 채운 것을 돌아보는 힘
비움으로써 다시 채우는 힘
‘없음’이 있다
가치를 키우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식상한 말

03. 청소 끝에 자아를 찾다 : 청소와 존재
내가 나를 나로 생각하면 내가 된다
누가 천지를 창조하는가
오점이냐 무늬이냐
알 수 없어 흥미로운 삶
자취를 치우는 이유
‘나’라는 기막힌 존재

04. 청소 끝에 아물다 : 청소와 상처
끝이 있는 이야기
상처를 위한 시간
기억은 다르게 적힌다
더러워야 깨끗해진다
왜 버리지 못하나
걱정을 저장하는 인간

05. 청소 끝에 사회를 읽다 : 청소와 노동
계획을 위한 계획
'열심히' 하는 것 중에 예외적으로 폄하되는 일
혼자서, 다수를 위하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
청소를 돈으로 환산해보기
익숙해서 몰랐던 고마움

06. 청소 끝에 자유롭다 : 청소와 유목
새것 같은 집
터전으로서의 집
담장 안의 청소와 담 너머의 청소
‘카페’라는 자연
언제까지 행복을 미룰 것인가
누가 행복에 점수를 매기나

07. 청소 끝에 엄마를 보다 : 청소와 어머니
익숙해진다고 안 아픈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초능력
반짝거리는 순간
엄마니까, 엄마라서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08. 청소 끝에 인생을 만나다 : 청소와 나
사소한 것들의 사소함
자꾸 일이 꼬이면 당장 청소부터
방 정리, 생각 정리
‘그때’의 내가 아니다
잊히는 것들
낡은 것이 좋다

Epilogue
걸레를 짜며,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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