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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소장종이책 정가14,000
전자책 정가30%9,800
판매가9,800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작품 소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 왜 우리는 지금 ‘관용’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장 칼라스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1762년 5월 9일, 그의 장남이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했다.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판관들은 장 칼라스에게 사형을 선고를 내렸다.

이 책은 광신과 편협함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장 칼라스의 무죄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자 쓴 책이다. 볼테르는 사건의 본질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편협함과 맹신에 있다고 보았다. 생각의 자유와 종교 선택의 자유가 인류와 국가에 큰 이익이 된다는 볼테르의 주장은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유럽으로부터 큰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냈다.


출판사 서평

《장 칼라스 사건》 개요
장 칼라스는 툴루즈에서 도매상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이자 성실한 가장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신교도이지만 종교적 편협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둘째 아들이 가톨릭교로 개종했지만 용인했으며, 열렬한 가톨릭 신자인 하녀에게 자식들을 모두 맡길 정도였다.
그러던 1762년 5월 9일, 장남인 마르크 앙투안 칼라스가 삶을 비관한 나머지 목을 매고 자살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모여든 군중들 가운데 누군가가 칼라스의 장남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가족이 뜻을 모아 그를 살해했다고 소리쳤다. 근거 없는 소문과 의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어, 마침내 신교도에게 적대적이며 맹신적이었던 당시 툴루즈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툴루즈 법원은 여론에 휩쓸려 칼라스 가족을 체포했다. 이후 거듭되는 가혹한 심문에도 장 칼라스는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맹신과 편견에 빠진 일부 재판관들은 증거가 불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장 칼라스만 수레바퀴에 매달아 죽을 때까지 매질과 고문을 하는 사형을 집행했다.

종교적 박해의 근거가 된 편견과 미신을 타파하고, 관용 정신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다.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구약과 신약 성서 등에 많은 장을 할애한 데에 있다.
볼테르는 먼저 종교와 생각의 자유가 충만했던 고대 그리스의 사례를 들며 박해의 근거를 반박한다. 소크라테스는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하며, 그의 복권은 고대 그리스가 오히려 종교적 관용이 넘쳐난 사회였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둘째, 고대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국가보다는 종교를 우선시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의 태도 그리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들면서 고대 로마인에 대한 신화를 반박한다. 박해에 대한 거짓 신화를 볼테르가 공격한 이유는 꾸며진 이야기 때문에 오히려 종교에 냉담해지고, 무신론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무신론은 사랑과 관용이 없는 이성만 발달한 궤변론이므로 광신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편협함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유대인들을 둘러싼 오해를 반박했다. 유대인들의 편협함의 이면에 있는 율법 해석의 자유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목자로 세우는 신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어느 구절에서도 예수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박해하라고 말한 대목을 발견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즉, 그리스도교가 원래 편협한 종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단과 폭력적인 면모를 보여 온 것은 교리 논쟁과 종교에 대한 잘못된 열정 때문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볼테르가 역사 속에서 종교적 관용이 넘쳐났던 시기를 다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장 칼라스 사건》을 일으킨 광신과 맹신이 박해의 이유를 아무데서나 찾고 있었으며 또한 편협한 정신은 가장 잘못된 동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는데 꼭 필요한 논증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관용’에 관해 말해야 하는가?
볼테르의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는 250여 년 전, 광신과 편협함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칼라스의 무죄를 밝힘으로써 억울한 희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인 책이다. 우리가 볼테르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차이’를 ‘다름’으로 인식하고, 그 ‘다름’을 빌미로 삼아 온갖 잔인한 폭력과 살인을 초래하는 편협함을 치유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관용의 정신이다.
가령, 볼테르는 모두의 의견이 같을 수는 없음을 지적한다. 이는 다른 의견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칼라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을 하느님이 용서하므로 우리도 역시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 볼테르에게 있어 진정한 관용이란, 부족한 존재인 우리 인간들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볼테르의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에 관해 다시 말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계몽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역사가이기도 하다. 1694년, 파리에서 출생하여 1778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본명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이지만, 정부와 교회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저술 활동을 계속했다. 루이 14세 사후,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한 필립 오를레앙의 섭정(1715년~1723년) 시기에는 오를레앙 공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 모이는 문학 살롱에 참여했다. 그러던 1716년, 오를레앙 공을 비방하는 시 《나는 보았네》를 썼다는 죄목으로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는 비극이나 서사시와 같이 당대에 인정받고 있던 장르에 도전했는데, 이름을 ‘볼테르’라는 필명으로 바꾼 것도 이때이다. 그리고는 1718년 11월(24세), 옥중에서 집필한 비극 『오이디푸스』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어느 귀족과의 싸움으로 다시 부당하게 투옥되었다가 국외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은 볼테르는 구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1726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영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고난 비판 정신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 결과, 16세기 내내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신교와 구교 간의 종교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앙리 4세를 찬양하는 서사시 『앙리아드』(1728년)를 펴낸다. 1729년, 프랑스로 돌아온 후에는 비극 『자이르』 (1732년)를 발표하기도 했다. 1733년에는 수학과 물리학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샤틀레 후작부인(에밀리 뒤 샤틀레)의 애인이 되어 그녀의 영향으로 문학가에서 철학자로 변신한다. 볼테르는 『철학 편지』(1734년)를 통하여 영국의 입헌군주정을 이상화하고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비판함으로써, 프랑스 왕실과 종교계의 미움을 사게 된다. 문제가 되자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하여 파리 입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샤틀레 가문의 영지에 머물면서 10여 년간 저술과 연구 활동에 매진했다. 이 시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뉴턴에 관한 편지』(1736년)와 『뉴턴 이론의 철학적 요소들』(1736년)을 출간하고 비극 『마호메트』(1741년)와 『메로프』(1743년) 등도 발표하였다. 1744년에는 친구의 외무장관 취임을 계기로 루이 15세의 궁정에 들어가 역사 편찬관이 되었다. 이후 1746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혀 비로소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던 1750년, 이미 오래전부터 친분을 쌓아 둔 프로이센의 계몽 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베를린으로 간다. 그곳에서 역사서 『루이 14세의 세기』(1751년)를 완성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2세와 마찰이 일어나자, 1753년에는 베를린을 떠나게 된다. 이후 프로이센의 여러 도시를 거쳐 프랑스의 국경에 도착(1754년)한 볼테르는 파리 입성이 금지된 사실을 알고 스위스 국경 인근인 페르네에 정착한다. 이곳에 머무는 20여 년간 볼테르는 계몽 사상가로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볼테르는 수많은 저서 출판과 다양한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해 왔는데, 그러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재건하고 주변을 정비하는 등,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던 페르네를 활기찬 소도시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볼테르는 반봉건·반교회 운동의 지도자로서 공격적인 글을 수없이 발표했다. 이 시기에 종교적 편견에 의한 불공정한 재판을 규탄한 『관용, 세상의 모든 칼라스를 위하여(원서 제목: 관용에 대한 개론)』(1763년)와 세계 문명사인 『풍속에 관한 에세이』(1756년), 철학 콩트인 『캉디드』(1759년), 『철학 사전』 (1764년) 등이 만년에 출간되었다. 1778년, 드디어 파리로 입성한다. 생애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 의 상연을 위해 파리를 찾은 볼테르는 이 작품의 첫 공연을 직접 감독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 83세였다. 『이렌』을 관람하기 위해 ‘코메디 프랑세즈’를 찾은 대중들은 그를 둘러싸고 “칼라스 옹호자 만세!”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사실 그들은 작품보다는 ‘작가’를 보러 온 것이었으며, 볼테르가 일생 동안 제안한 새로운 가치관, 즉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잃지 않은 이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1778년 5월 30일에 사망한 볼테르는 비록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는 못했지만, 1791년에는 국가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만 잠들어 있는 ‘팡테옹’에 안치되었다.

목차

볼테르 / 7
빅토르 위고의 추모사로부터 / 16
옮긴이의 말 / 22
1장 《장 칼라스 사건》 개요 / 33
2장 《장 칼라스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 / 51
3장 16세기 종교개혁에 대한 이해 / 57
4장 신앙의 자유가 위험하다면 과연 그것을 허용한 나라가 있었겠는가? / 65
5장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면 좋은 점 / 79
6장 자연이 인간에게 편협함을 가르친 적이 있는가? / 86
7장 고대 그리스인도 박해를 겪었을까? / 89
8장 로마인들이 보여 준 종교적 관용 / 95
9장 순교자 / 107
10장 순교와 박해에 관한 거짓 전설의 위험성 / 129
11장 종교가 박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 143
12장 유대인들은 편협함이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나? / 155
13장 유대인들이 누린 율법 해석의 자유 / 177
14장 만약 예수그리스도가 편협한 태도를 가르쳤다면… / 191
15장 편협한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증언들 / 202
16장 죽어가는 사람과 교리에만 밝은 사람의 대화 / 211
17장 어느 예수회 신부가 르텔리에 신부에게 쓴 편지(1714년 5월 6일) / 219
18장 관용이 필요 없는 예외적인 경우 / 227
19장 중국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보고서 / 233
20장 차라리 미신을 믿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 241
21장 너그러운 마음이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 249
22장 보편적 관용 -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 254
23장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 263
24장 덧붙이는 말 / 266
25장 글을 마치며 - 편협함에 희생된 장 칼라스를 위하여 / 275
참고문헌 / 284
해외 독자 서평 /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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