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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이야기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국자 이야기

조경란 소설
소장종이책 정가8,800
전자책 정가30%6,200
판매가6,200

국자 이야기작품 소개

<국자 이야기> ‘나’를 이야기하는 칼리그람으로서의 글쓰기
-- 이것은 고백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는 작품집 해설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칼리그람’으로서의 조경란 소설에 주목한다.(칼리그람이란 글자로 된 그림, 말하자면 점과 같은 글자들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을 가리킨다. 가령 ‘龍’이라는 글자들을 화소로 한 커다란 용 그림 같은 것을 예를 들 수 있겠다. 칼리그람에 가까이 다가가 글자를 읽으려 하면 그림이 보이지 않고, 멀리 떨어져 형상을 주시하면 글자들은 점으로 변한다. 결국 보는 이는 글자와 형상을 동시에 바라볼 수 없다.)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그의 소설을 지켜봐온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그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언제나,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고 나를 통해 또한 타인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관계를 이야기한다.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기’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조경란의 소설의 근원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욕망은 우선 언어(의식)에 의해 직관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형상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 형상은 ‘알기 어려운 그림’처럼 추상적인 형태로서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거기에는 다시 ‘제목’(언어)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좁은 문」과 같은 작품에서 조경란이 말하고 있는 ‘점묘화’란 사실 칼리그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동일성과 자기성의 틈을 포착하고자 하는 언어와 형상으로 된 이중의 덫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경란은 ‘나’라는 텍스트를 직조하기 위해 왜 칼리그람의 형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 물음은 조경란의 소설세계의 새로운 전환점에 걸려 있는 것이자 동시에 우리 소설사의 새로운 국면과 관련된다.
타자화될 수 없는 ‘나’를 글이라는 거울로 투명하게 비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이른바 ‘고백’이 성립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나’의 자기성을 동일성의 차원에서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고백’이 창출한 내면은, 혹은 ‘고백’의 형식 속에 유폐된 의식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이며 시대적인 것이다. 처음에는 사회적 의식에 의해 억압되었던 한 개인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겨졌던 이 고백의 양식이 결국 사회적인 기제에 지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90년대 문학을 통과하여 21세기 문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동일성의 차원으로 해소되지 않는 ‘자기성’의 일방적인 노출은 객관적인 현실적 근거를 결여한 추상적인 글쓰기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식의 ‘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씌어질 수 있는가. 고백의 형식 속에 유폐된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이야기하기, 그리고 언어실험의 유희로부터 벗어나 ‘나’를 이야기하기, 바로 이 지점에서 조경란의 새로운 소설 스타일이 성립되고 있는바, 칼리그람으로서의 글쓰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쓰기 또한 내면 속에 감추어진 자기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필사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끊임없는 자아 탐구/자아 해석과 관련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보여주고자 하는 ‘나’가 이미 존재하는 ‘고백’과도, ‘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부재하고 의식만이 비대하게 남겨진 ‘실험’과도 그 차원이 다르다. 이 경우 ‘나’는 ‘나’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타자의 이야기들을 뚫고 그 고유함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의 성립과정과 더불어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조경란의 소설을 두고 우리는, 르네 마그리트가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썼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것은 고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해설 「‘나’를 이야기하는 칼리그람으로서의 글쓰기」 중에서

‘나’와 타인, ‘또다른 나’, 그 미묘한 관계와 소통을 이야기하기

「좁은 문」「입술」 등의 소설들에는 ‘자기 이야기를 남 이야기처럼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두 소설에서 인물들은 양자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체들로 설정되어 있다. 때문에 이 경우 주체는 타자와 절대적으로 구분되지도 그렇다고 스스로 소멸되지도 않는, 타자와 닮은, 타자를 통해 자기를 인식해야 하는 존재들이다. 곧 이 지점에서 조경란이 제기하는 소통의 문제가 떠오른다.
또한 ‘나’를 제목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앞세우고 있는 「나는 봉천동에 산다」 「난 정말 기린이라니까」는 조경란의 소설세계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봉천동에 산다」와 「난 정말 기린이라니까」는 소통과 공존의 문제, 그리고 그 궁극에 놓인 글쓰기의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 이 추구의 끝지점에서 전자에서의 ‘구멍 들여다보기’와 후자에서의 ‘멀리 내다보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구멍을 들여다보는 순간 현실의 풍경은 스러지고 현실을 보는 순간 구멍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 내다보면 가까이 있는 것이 보이지 않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먼 풍경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구멍 들여다보기’와 ‘멀리 내다보기’는 ‘나’와 ‘세계’를 동시에 포착하기 위한 자전과 허구의 칼리그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봉천동에 산다」 「난 정말 기린이라니까」에서의 소통과 공존에 대한 기대와 모색은 「잘 자요, 엄마」 「국자 이야기」에 이르면 불안과 공포, 반복강박과 우울증으로 전환되어 있다. ‘나’의 삶과 의식은 끊임없이 진동하는 유동체이므로, ‘나’의 이야기 또한 그러한 삶 속에서 의식의 진동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쪽 극으로 치달았던 의식이 그 전개의 어느 지점에서 그 반사적 의식으로 귀결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잘 자요, 엄마」 「국자 이야기」는 ‘나’의 깊은 내부를 응시하는 과제에 대응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극을 끊임없이 왕복하며 그려내는 궤적이 곧 삶이라면 글쓰기 또한 그러한 운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글쓰기를 통해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병립 불가능한 두 의식의 모순이 하나의 칼리그람 속으로 통합된다.
‘나’를 이야기하기 위한 칼리그람의 끝에 놓인 작품은 「100마일 걷기」이다. 「100마일 걷기」에는 영국의 조각가 리처드 롱의 ‘걸어서 생긴 선’이 밑그림으로 놓여 있다. 이 소설에서 ‘걷기’는 어머니의 죽음을 타자로 하여 ‘나’의 정체성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나’는 그 과정에서 ‘그녀’를 만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죽음을 매개로 한 ‘나’의 내부를 향한 응시와 ‘그녀’와의 소통의 과제가 하나로 맞물리기에 이른다.

“텍스트에 현실을 반영한다는 소박한 믿음에 근거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텍스트를 현실로 만드는 모더니스트의 퍼포먼스도 아닌 글쓰기의 차원에 조경란의 소설은 놓여 있다. 요컨대 조경란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나’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소설적 방식을 마주 대하고 있는바, 거기에서 우리는 소설 속의 ‘나’가 소설 속의 인물이면서 동시에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인 마지막 칼리그람을 발견하게 되기에 이른다.”

조경란은 또다시 걷는다. “소박하고 엄격한 삶, 이 작고 푸른 정신, 내 생의 이 희귀한 열정으로, 새 지도를 그리려” 조용히 걷고 또 걷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그 발끝에 걸린 무게와 열정과 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결코 쉽지 않은 그의 길을 조용히 뒤쫓고 싶어진다.

어떤 장엄한 나무 한 그루를 만나게 될 때, 나는 나의 일부가 그 나무속으로 서서히 미끄러져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분리할 줄 아는 힘, 아마도 나는 그런 것을 원했던 것 같다. 저항과 흥분과 체념과 냉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불완전하며 변덕스럽고도 위협적인 세계를 만질 수도 입을 수도 껴안을 수도 없는 이 연약한 언어가 과연 어떻게 그려낼 수 있는지. 나를 표시해줄 수 있는 어떤 점 하나 같은 게 저 길 끝에 정말 있을지.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프로필

조경란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9년
  • 학력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사
  • 데뷔 1996년 단편소설 `불란서 안경원`
  • 수상 2008년 동인문학상
    2003년 현대문학상
    1996년 제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 상

2014.11.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조경란
1969년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1994년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문학 수업을 받는다.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해에 첫 장편 <식빵 굽는 시간>이 문학동네 제1회 작가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대표작으로 <나의 자줏빛 소파> <가족의 기원>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일요일의 철학> 등이 있다.

목차

국자 이야기
나는 봉천동에 산다
돌의 꽃
난 정말 기린이라니까
잘 자요, 엄마
100마일 걷기
입술
좁은 문
 
해설/손정수:'나'를 이야기하는 칼리그람으로서의 글쓰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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