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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편 문학선 2 상세페이지


책 소개

<한국 단편 문학선 2> 1950-1960년대 어두웠던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전후세대 작가 11명의 수작 13편
1920년대 초, 김동인으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현대 단편소설은 그 이후 불과 10여 년만에 많은 작가들에 의해 다양하고 수준 높은 작품들이 발표되어 1930년대 한국의 소설 문학은 이미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식민지 시대 말기의 가혹한 상황과 해방 직후의 비극적 역사는 한국문학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되기도 했지만, 한국의 소설문학은 세대를 이어가면서 꾸준히 발전해 왔고, 많은 수작들을 축적해왔다. 문학이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실린 한국 단편소설들은 지난 시대의 삶을 재생시켜 주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보편적 문제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저자 프로필

황순원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915년 3월 26일 - 2000년 9월 14일
  • 학력 1939년 와세다 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 경력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외솔회 이사
    1980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가협회 소설분과 위원장
  • 데뷔 1931년 동광 `나의 꿈` 등단
  • 수상 2000년 금관문화 훈장
    1987년 제1회 인촌상 문학부문
    1983년 제1회 대한민국 문학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66년 3.1 문화상
    1961년 예술원 상
    1955년 아시아자유 문학상

2014.10.3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김동리
1913년 경북 경주 출생.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었으며,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됨으로써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였다. 해방 후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계급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하여 인간주의 민족문학론을 주창하였다. 1947년 제1창작집 [무녀도]를 펴낸 후 지속적으로 [황토기] [귀환장정] [실존무] [등신불] 등의 창작집을 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 한국소설가협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1995년 8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저자 - 황순원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에서 유복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살이 되던 1921년에 평양으로 이사해 1923년 숭덕소학교에 입학한다. 소학교 시절에 황순원은 철봉이나 축구 등 운동을 즐겼으며 당시로선 드물게 스케이트를 타거나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도 했다. 1929년 숭덕소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중학교에 입학했다가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했다. 오산중학교 재학 시절에 황순원은 남강 이승훈 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단편 <아버지>(1947)에서는 이때 만난 남강 선생을 묘사하고 있다.
193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31년 7월에 처녀 시 <나의 꿈>을 ≪동광≫에 발표하면서 신예시인으로 주목받는다. 1934년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로 유학해 제2고등학원에 입학한다. 도쿄 유학 시절인 1934년에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예술 연구 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창립한다. 그해 11월, 이 단체의 명의로 첫 시집 ≪방가(放歌)≫를 간행한다. 검열을 피해 도쿄에서 시집을 간행했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황순원은 평양경찰서에 한 달간 구류를 당한다.
1935년에 신백수, 이시우, 조풍연 등의 주도로 모더니즘을 표방하던 문예지 ≪삼사문학≫에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1936년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고, ≪창작≫의 동인이 되었다. 1937년에 ≪창작≫ 제3집에 <거리의 부사(副詞)>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변신한다. 1939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1940년에 첫 단편집 ≪황순원 단편집≫을 간행한다. 1946년에 월남해 그해 9월 서울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취임한다.
이후 황순원은 단편집 ≪목넘이 마을의 개≫(1948), ≪기러기≫(1951), ≪곡예사≫(1951), ≪학≫(1956), ≪잃어버린 사람들≫(1958), ≪너와 나만의 시간≫(1964), 장편소설 ≪별과 같이 살다≫(1950), ≪카인의 후예≫(1954), ≪인간 접목≫(1957),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일월≫(1964), ≪움직이는 성≫(1973), ≪신들의 주사위≫(1982) 등 한국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독보적인 소설 미학을 완성한다.
1966년 3·1 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경희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황순원 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해 1985년 전 12권으로 완간했다. 2000년 9월 서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저자 - 오영수
1911년 2월 11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 313번지에서 아버지 오시영 씨와 어머니 손필옥 씨 사이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월주(月洲) 또는 난계(蘭溪)이며 9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 언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2년 일본 오사카에서 나니와중학 속성과를 수료하고 1935년 일본대학 전문부에 적을 두었으나 각기병으로 중퇴하고 귀국하여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동시를 발표한다. 1937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국민예술원에 입학한 뒤 도중에 학도병에 징집당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닌다. 1938년 국민예술원을 졸업한 뒤에 귀국하여 동래 일신여고 출신의 김정선과 결혼한다. 1939년 만주 신경으로 가서 방랑생활을 하다가 1943년 처가가 있는 경남 양산군 일광면 산전리로 이사하여 김동리와 교우를 갖는다. 1945년 부산 경남여고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다가 나중에는 국어를 가르친다.
1948년 시 <산골 아가>(<백민>)를 발표하고, 1949년 단편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1950년 단편 <머루>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진행한다. 6·25를 맞아 청마 유치환과 함께 동부전선에 종군하고, 1954년 첫 창작집 ≪머루≫를 문화당에서 간행한다. 1955년 조연현을 주간으로 ≪현대문학≫ 창간호를 편집, 발행하고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한다. 1956년 제2창작집 ≪갯마을≫을 간행하고 1957년 서울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하는데, 이 무렵부터 신경성 위궤양을 앓는다. 1958년 제3창작집 ≪명암≫을 간행하고 1959년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한다. 1960년 제4창작집 ≪메아리≫를 간행한다. 1963년 서울 도봉구 우이동으로 이사하고, 1965년 제5창작집 ≪수련≫을 간행한 뒤 1966년 위궤양으로 ≪현대문학≫사의 실무를 떠난다. 1968년 ≪오영수 전집≫ 전 5권을 현대서적에서 간행하고 1970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위원장에 피선된다. 1974년 ≪오영수 대표작 선집≫ 전 7권이 동림출판사에서 간행되고, 1977년 제22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한다. 1978년 창작집 ≪읽어버린 도원≫을 간행하고 1979년 5월 15일 경남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자택에서 간염으로 타계한 뒤 언양면 송태리 선영에 안장된다.
그는 토착적인 한국인의 정서와 풍경을 간결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그려내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작가다. 향토성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대립을 통해 선량한 인간성을 탐구하고 묘사해 온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서민층 생활의 애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낸 작품세계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각박한 현실의 폐해를 비판함으로써 따사로운 인정의 미학을 선보인다.
평소 성품이 소박하고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만년에는 고향 근처로 낙향하여 요양과 창작에 정진했으나 1979년 발표한 단편 <특질고(特質考)>로 인해 뜻하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정신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 작품은 사투리와 지역민의 특성을 담은 작품으로 작가의 의도는 향토성의 고찰 속에 방언의 고수를 피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지만, 소설의 내용이 사실적 기록으로 받아들여져 특정 지역을 비하했다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결국 문협에서 오영수가 제명되고, 그의 사과문이 공개됨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된다.

저자 - 손창섭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후 아내와 함게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가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저자 - 정한숙
평북 영변 출생. 전광용·정한모·전경영 등과 동인 ‘주막’을 조직(1947). '흉가'를 《예술조선》(1948. 3)에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전황당인보기'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1955).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1950), 휘문고등학교 교사(1952~58)와 고려대학교 교수(1957~87)를 거치는 동안 왕성한 창작 활동과 저술 활동을 펼치며 후진들을 양성함.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역임.
제1회 내성문학상(1958), 제15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3), 대한민국 예술원상(1986), 3·1 문화상(1988) 등 수상.

저자 - 이호철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원산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월남했다.「탈향」과 「나상」이 문학예술에 추천되어 등단했고 「판문점」으로 현대문학상, 「닳아지는 살들」로 동인문학상, 『남녘사람 북녘사람』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서울은 만원이다』『소시민』등이 있다.

저자 - 장용학
1921년 함북 부령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1952년 '미련 소묘'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요한 시집>, <오늘의 풍물고>, <산방야화>, <하여가행>, <원형의 전설> 등이 있다.

저자 - 서기원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상대를 중퇴했다. 1956년 '암사지도'로 등단했다. 같은 해에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서울신문」 사장,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이 성숙한 밤의 포옹>, <혁명>, <광화문>, <징비록>, <마록열전> 등이 있다.

저자 - 박경리
본명은 금이(今伊).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였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 등이 <현대문학>에 실리면서 등단했다. 이후 1959년 <표류도>, 1962년 <김약국의 딸들>, 1964년 <파시>, <시장과 전장> 등의 장편을 발표했다.
<토지>는 1969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여 1972년 9월까지 1부를 집필했다. <토지> 2부는 같은 해 10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문학사상>에 3부는 1978년부터 <주부생활>에 4부는 1983년부터 <정경문화>와 <월간경향>에 각각 연재했다.마지막 5부는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1994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하소설 <토지>의 전작이 완결되었다. 25년에 걸쳐 원고지 4만 장 분량으로 탈고된 것이다.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고 있는 대하소설 <토지>는 탈고 전에 이미 한국문학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박경리는 한국문학사에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봉으로 우뚝 섰다. 이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1979년과 1984년에 각각 한국방송공사에서, 2004년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그녀가 1980년부터 1994년 8월 15일까지 원주시 옛집에서 <토지>를 지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토지문학공원이 조성되었고,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는 토지 문화관에서 집필생활을 하였다.
2007년 7월말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뇌졸중 증세까지 나타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후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경 숨을 거뒀다. 정부는 박경리의 사망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다.

저자 - 강신재
작가 강신재는 1924년 5월 서울 남대문로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와 신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출생한 그녀는, 1930년에 함경도 청진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1937년 부친이 별세하자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기여고와 이화여전에 진학한다. 이화여전 가사과 2학년을 중퇴하고 결혼한-당시 이화여전 학생들은 학칙에 따라 재학 중에는 결혼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후 친구의 권유로 본격적인 소설 창작을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불리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강신재는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얼굴>(1949. 9)과 <점순이>(1949. 11)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강신재의 첫 작품은 1949년 7월 ≪민성≫에 발표한 <분노>로 알려져 있지만 대다수의 작가 연보를 참조할 때 <얼굴>과 <점순이>를 통해 정식 등단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는 단편소설을 꾸준하게 발표하며 단편집 ≪희화(戱畵)≫(1958), ≪여정≫(1959) 등을 출간했다. 그리고 ≪여정≫을 출간하던 해에 단편 <절벽(絶壁)>으로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부터는 주로 중·장편 소설을 집필한다. ≪임진강의 민들레≫(을유문화사, 1962)를 비롯해 ≪청춘의 불문율≫(1960), ≪이 찬란한 슬픔을≫(1964), ≪그대의 찬 손≫(1965), ≪바람의 선물≫(1965), ≪신설(新雪)≫(1967), ≪숲에는 그대 향기≫(1969)와 펜클럽작가기금을 받고 쓴 ≪오늘과 내일≫(1966)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967년에는 ≪이 찬란한 슬픔을≫로 제3회 여류문학상을 받는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작가 강신재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지속된다. 1970년에 그녀는 자신의 작가적 명성을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 단편 <젊은 느티나무>(사상계, 1960)를 제목으로 단편집 ≪젊은 느티나무≫를 엮는다. 아울러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장편 ≪파도≫(1972)를 간행한다.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특히 강신재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는데, 단편집 ≪황량한 날의 동화≫(1976)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장편 ≪유리의 덫≫(1970), ≪북위 38도선≫(1973), ≪레이디 서울≫(1975), ≪서울의 지붕 밑≫(1976), 창작집 ≪그래도 할 말이/이 겨울≫ 등을 상재했다. 특히 1974년에는 ≪강신재 대표작 전집≫을 전 8권으로 간행했다.
한편, 강신재는 장편 ≪천추태후≫(1978)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사도세자빈≫(1981), ≪소설 신사임당/문정왕후 아수라≫(1987), ≪명성왕후≫(1991), ≪혜경궁 홍씨≫(1992)를 거쳐 ≪광해의 날들≫(1994)에 이르는 작품들은 강신재 특유의 감각적이고 신선한 문체를 바탕으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역사소설들이다. 1994년 마지막 작품 ≪광해의 날들≫을 발표하기까지 강신재가 남긴 작품 수는 대략 중·단편 90여 편과 30여 편의 장편으로 집계된다.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과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으로 피선되기도 했던 작가 강신재는 2001년 5월 12일 7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저자 - 선우휘
1923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43년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9년 육군 소위로 입대하여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1955년 「신세계」에 단편'귀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One Way', '테러리스트'를 발표했다. 1957년 단편 '불꽃'이 「문학예술」 신인작품 모집에 당선되었고, 이 작품으로 제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후 '화재', '보복', '오리와 계급장' 등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일보 및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하였고, 1964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취임하였다. KBS 방송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78년 아세아신문재단으로부터 고재욱 언론상을 수상했고,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86년 부산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지은 책으로 소설집 <불꽃>, <반역>과 장편소설 <사도행진> <노다지> 등이 있다.

목차

김동리 - 황토기/까치 소리
황순원 - 소나기/비바리
오영수 - 갯마을
손창섭 - 혈서
정한숙 - 전황당인보기
이호철 - 나상
장용학 - 비인탄생
서기원 - 암사지도
박경리 - 불신시대
강신재 - 젊은 느티나무
선우휘 - 반역

엮은이의 말/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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