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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매체사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정치/사회

한국대중매체사

소장종이책 정가32,000
전자책 정가30%22,400
판매가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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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매체사작품 소개

<한국대중매체사> 한국 대중매체의 역사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대중매체의 속성!

『한국 대중매체사』는 개화기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다양한 매체 속에 투영된 120년 대한민국의 모습과 변화상이 담겨 있다. 대중문화 비평가인 저자는 TV, 라디오, 신문, 노래, 영화, 인터넷 등의 대중매체가 우리 사회와 구성원의 소통이 장이며, '세상'과 만나는 창구라는 점에 주목하여, 한국 대중매체의 변화상을 남다른 식견과 통찰력으로 정리했다.

본문은 일제 식민통치, 6·25 전쟁, 군사독재, IMF 등 엄청난 속도로 변한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며 카멜레온처럼 입장을 바꿨던 언론 및 여러 매체들에 대해 속 시원히 분석한다. 특히 정치권력에 따라 돌변하는 신문·방송의 태도에 중심을 두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노래, 주요 사건을 추적하여 정치와 언론의 상관관계를 명쾌히 규명한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을 필두로 한 대중매체가 언론권력으로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권한을 행사했었는지, 현재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한국 대중매체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이 책을 통해 언론과 대중문화가 대한민국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과 관련한 각종 경계성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다. [양장본]

☞ 이 책의 독서 포인트!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개인들의 에피소드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내 당대의 생활상을 선명하게 재현하였다. 아울러 단순히 언론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아닌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다양하게 변하는 대중매체의 속성을 명쾌하게 분석하였기 때문에 한 편의 잘 만든 교양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다.

▶ 2000년에 출간된『권력변환』의 개정판입니다.


저자 프로필

강준만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6년 1월 5일
  • 학력 1988년 위스콘신대학교메디슨캠퍼스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
    1984년 조지아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
    1980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 학사
  • 경력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 수상 2005년 제4회 송건호 언론상

2023.08.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자 - 강준만
한국 사회에서 '유별나다'라는 평가를 받는 얼마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한명.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에게 '유별나다'는 평가는 흠이 되지는 않을 지는 몰라도 듣기에 좋은 소리는 아니다. 모름지기 지식인이라면 '젊어서는 관직에 나아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물러나서는 후학 양성에 힘쓰는' 선비와 같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은 '유별난' 지식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준만은 그런 소리들에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입바른 소리를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느 세력에게나 퍼부어대며 책을 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별나다'는 사람은 강준만의 입바른 소리가 성가신 사람들에게서 나왔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인이라면 겸손하고 자신의 의견을 직선적이고 감각적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지식인 상에서 강준만은 완전히 반대쪽 극에 서있다. 강준만의 문체는 매우 직선적이고 도발적이라는 점에서 읽는 이를 통쾌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리고 강준만에 제기하는 문제 또한 그의 문체를 닮아 있다. 왜냐하면 강준만이 문제삼는 부분은 많은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준만의 비판은 더욱 전투적이고 신랄할 수 밖에 없다. 지역주의와 연고주의, 학벌 중심 주의, 비합리주의 등의 요소는 현재의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국 사회에 있어서 일종의 행동 규칙으로 정착된 면이 있다. '좋은 것이 좋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강준만의 비판은 바로 그러한 '은밀한 합의'를 불편하게 만드는 면을 가지고있다. 그런 점에서 강준만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그의 문체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은 강준만의 비판의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너무나 직선적인 문체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나아가서는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까지도 동의 의사를 표현하기에 부담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공격적이 방식은 논리와 합리성에서 벗어난 수준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강준만의 대답은?
"매달 원고지 600장 분량의 글쓰기 작업을 한다. 그래서 문장과 논리가 거친 게 사실이다. 그게 내 단점이자 한계다. 그러나 내 글쓰기의 목적

목차

머리말 : '언론사'에서 '대중매체사'로

01 개화기의 대중매체 ① (1883~1896)
1876년 병자수호조약|개화파의 등장|급진개화파·온건개화파·위정척사파|1882년 임오군란|1883년 『한성순보』의 창간|『한성순보』 이식설 논쟁과 사회진화론|『한성순보』의 '상업제일주의'|1884년 갑신정변|1884년 『한성순보』의 폐간|1885년 한성조약·천진조약|1886년 『한성주보』의 창간|전신과 개신교 선교활동|1888년 『한성주보』의 폐간|1894년 동학혁명·청일전쟁|1894년 갑오개혁|1895년 삼국간섭·을미사변|1896년 아관파천|전신과 우편|차라리 가난이 다행이었던, 민중의 삶
자세히 읽기 : 『한성순보』 이전의 언론|사회진화론|윤치호의 귀국|유길준의 활약
연구문제

02 개화기의 대중매체 ② (1896~1900)
『한성신보』의 활동|1895년 서재필의 귀국|『독립신문』 창간 배경|1896년 『독립신문』의 창간|『독립신문』의 역사적 의미|『독립신문』의 편집정책|『독립신문』의 '옥시덴탈리즘|『독립신문』의 기독교 예찬|『독립신문』의 제국주의·의병관|『독립신문』의 독자와 광고|『독립신문』과 독립협회|정부의 『독립신문』 탄압|윤치호의 『독립신문』 인수|서재필과 필립 제이슨|『독립신문』의 소유권 문제|1898년 만민공동회 활동|윤치호와 이완용|1898년 『협셩회회보』 『매일신문』 창간|1898년 『제국신문』 창간|1898년 『황성신문』 창간|『대한신보』 『시사총보』 『상무총보』|개신교의 선교, 출판활동|『죠션크리스도인회보』 『그리스도신문』|전화를 향해 큰절을 네 번 하다|유성기·전차·철도·자전거
자세히 읽기 : 개화기의 아시아주의
연구문제

03 개화기의 대중매체 ③ (1900~1910)
1902년 공중용 전화의 등장|1904년 러일전쟁|『제국신문』과 이승만|『황성신문』의 경영난|1904년 『대한매일신보』의 창간|1905년 을사늑약과 '시일야방성대곡'|1906년 일진회의 『국민신보』 창간|1906년 『만세보』 창간|『경성일보』 『경향신문』 『대한신문』|『대한매일신보』의 반일 민족주의|1907년 고종퇴위·정미7조약·군대해산|1907년 광무신문지법|『대한매일신보』와 국채보상운동|국채보상운동의 좌절|『대한매일신보』의 몰락|의병의 통신시설 파괴|『소년』과 『대한민보』|1909년 『경남일보』의 창간|사회진화론적 출판물 유행|영웅숭배주의와 문약망국론|일제의 강점과 신문들의 폐간|해외 교포의 신문 발행|영화의 인기
자세히 읽기 : 신문과 민족주의
연구문제

04 일제하의 대중매체 ①(1910~1920)
일제의 농민 착취와 '무단정치'|'무단정치 시대'의 신문|신문 사진의 발전|사학에서 문학으로|1910년대의 영화|1919년 연쇄극의 탄생|3·1 운동과 지하신문의 활약|국외 독립운동단체의 신문|일제의 '문화통치'|조선 엘리트·민중의 양극화|일제가 신문 발행을 허가한 이유|1910년대의 철도·자동차
자세히 읽기 : '105인 사건'과 윤치호|장지연 친일 논란
연구문제

05 일제하의 대중매체 ②(1920~1929)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창간|『시사신문』의 창간|『동아일보』는 '청년 신문'|1922년 이광수의 '민족개조론'|『동아일보』의 '안창남 상업주의'|잡지 『개벽』 『동명』의 창간|문예잡지 『창조』 『폐허』 『백조』의 창간|1924년 이광수의 '민족적 경륜'|1924년 『조선일보』의 변화|1920년대의 사회주의 열풍|1924년 최남선의 『시대일보』 창간|1926년 이상협의 『중외일보』 창간|신문의 '광고 마케팅'|언론단체의 활동|한국 최초의 여기자|백두산·축구 민족주의|전화·우편·무선전화|조선일보사의 실험 방송|1927년 경성방송국의 개국|무성영화와 변사의 인기|나운규의 '아리랑'|일제의 영화통제|윤심덕의 '사의 찬미'|유성기·레코드·다방문화|1920년대의 유행 문화|'모던 걸' '모던 보이'의 등장|1920년대의 철도·자동차
자세히 읽기 : 1920년대의 지하신문 연구 |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친일 논쟁 | 1925년 전조선기자대회
연구문제

06 일제하의 대중매체 ③ (1929~1945)
1929년 광주학생운동|1931년 만보산사건|만주사변을 위한 음모|조선·동아의 한글보급운동|1933년 방응모의 『조선일보』 인수|방응모의 『동아일보』 인력 스카우트|『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싸움|'기생관광'까지 동원한 광고 경쟁|비행기까지 동원한 속보 경쟁|동아·조선의 잡지 경쟁|신문에 대한 사회적 인식|신문의 문학 지배|신문의 출판·학술활동|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조선중앙일보』의 폐간|1937년 황국신민화운동|일제의 보도지침|1940년 창씨개명|『동아일보』 『조선일보』의 폐간|윤치호가 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폐간|『조광』의 활동|『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이중방송과 방송통제|1942년 단파방송 밀청사건|1930년대의 전화|우리나라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영화와 '현대성의 형성'|백화점과 소비문화|'만문만화'를 통해본 백화점|오늘은 부민관, 내일은 화신|'황성옛터'와 레코드의 홍수|유성기의 사회적 의미|'타향살이'와 '목포의 눈물'|'서울에 딴스홀을 허(許)하라'|'눈물·사랑'에서 '혈서'로
자세히 읽기 : 식민지근대화론
연구문제

07 미군정하의 대중매체 (1945~1948)
'언론의 둑은 터졌다'|'엄정중립은 기회주의적 이념|『조선일보』『동아일보』의 속간|'찬·반탁' 논쟁과 『동아일보』|정파성과 신문 테러|신문의 '좌익 우세'|미군정의 언론통제|'출판의 둑도 터졌다'|『경향신문』의 창간|'좌우(左右)는 싸움으로 세월을 허비하고 있다'|라디오의 '정당 방송'|'양키문화'의 유입|'이 땅의 사나이 목메어 운다'|악극의 인기와 흥행 모리배|'똘똘이의 모험'|공연·방송 분야 좌익 제거작업|쫓고 쫓기는 '신문 전쟁'|미군정의 언론탄압|제주 4·3 항쟁과 5·10 단독 총선거
자세히 읽기 : 연설 커뮤니케이션의 호황|미군정의 공보활동
연구문제

08 이승만 정권하의 대중매체 (1948~1960)
좌익지의 소멸, 우익지의 번성|한국전쟁과 신문들의 시련|종군기자들의 어려움|만화·문학·영화·가요의 참전|신문은 이권을 챙길 수 있는 권력기관|1954년 『한국일보』의 창간|1954년 기독교방송의 개국|'자유부인'과 '허벅다리 부인'|1955년 대구매일 테러사건|1955년 '견통령(犬統領)'사건|『사상계』 『학원』의 창간|반공 영화, 미국 지향적 가요|『동아일보』를 보면 재미없다|1956년 한국 최초의 TV 방송|영화 '자유부인'과 '고무신 관객'|1957년 관훈클럽과 '신문의 날' 탄생|라디오 연속극과 춤바람|'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사상계』와 장준하의 친미·반공|1959년 『경향신문』 폐간사건|신문의 정론성과 상업성|라디오와 아나운서의 인기|멜로영화의 전성시대|김주열의 시체 사진
자세히 읽기 : '사랑방'에서 '다방'으로|1950년대의 전화|'자유부인'사건|한국영화 최초의 키스신
연구문제

09 장면 정권하의 대중매체 (1960~1961)
10배 가까이 늘어난 신문|사이비 기자의 발호|독자들의 '실력행사'|'누가 더 비판을 잘하나' 경쟁|'때려야 잘 팔린다'|'신문망국론'의 등장|『민족일보』의 창간|『민족일보』와 장면 정부의 충돌|4·19 1주년|'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
자세히 읽기 : 사이비 언론과 박정희
연구문제

10 박정희 정권하의 대중매체 ① (1961~1967)
5·16 쿠데타와 신문|신문의 박정희 찬양|장준하의 쿠데타지지|『민족일보』 조용수 사형|KBS TV의 개국|TV 수상기를 갖기 위한 경쟁|김지미와 최은희의 대결|부패 언론인 단속과 단간제 실시|필화사건과 『사상계』 탄압|"주여! 상업방송을 금지시켜 주시옵소서"|1964년 6·3 사태|'굶주림 사태 보도 사건'과 '앵무새 사건'|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황용주·리영희 필화사건|『주간한국』의 대성공|신성일·엄앵란·최희준의 '맨발의 청춘'|최초의 민간 상업 TV|1965년 『중앙일보』의 창간|5개 라디오 방송사의 코미디 경쟁|'7인의 여포로' '춘몽'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중앙매스컴'의 삼성 비호|『경향신문』 경매, 기자 테러|'하숙생' '동백아가씨' '가슴 아프게'|'신민당 소명서'사건|'홍길동'과 '팔도강산'
자세히 읽기 : 공중전화의 보급|'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억울하면 출세하라"|'분지(糞地)' 또는 '똥땅'사건
연구문제

11 박정희 정권하의 대중매체 ② (1967~1972)
'신문은 편집인 손에서 떠났다'|'신문은 중앙정보부의 손으로 넘어갔다'|신문의 상업적 성장|기자의 빈곤·촌지·전직|1968년 『선데이서울』 창간|재벌의 영향력 증대|1969년은 한국영화의 최전성기|TV 안테나는 '번영과 문명화'의 상징|클리프 리처드와 스타킹 광고|1970년 김지하의 「오적(五賊)」|일일연속극 '아씨'의 인기|『다리』 탄압 사건|'언론화형선언문'|기자들의 '언론자유수호선언'|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데스크' 탄생|MBC의 민간 분양|프레스카드·언론통폐합
자세히 읽기 : 통일혁명당·『청맥』·신영복|『한국일보』 장기영의 활약|전화 전쟁|'아침이슬'과 포크문화
연구문제

12 박정희 정권하의 대중매체 ③ (1972~1979)
'10월 유신'과 언론|남진·나훈아·김추자·신중현|'유신 방송법'과 한국방송공사의 탄생|'유신 영화법'의 탄생|언론인의 정관계 진출|TV 일일연속극 붐|'별들의 고향'과 호스티스 문화|'청년문화'와 『전환시대의 논리』|'오일 쇼크'와 여권 매체 계열화|10·24 자유언론실천선언|『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조선일보』에서 내쫓긴 32명의 기자|『동아일보』에서 내쫓긴 113명의 기자|프레스카드제·보도지침 강화|TV 일일연속극 비판|TV 드라마 '팔도강산'|대중가요 통제|'영자의 전성시대'|외래어 추방 캠페인|신문·TV의 광고 갈등|'하이틴 영화'와 '호스티스 영화'|MBC 대학가요제|리영희 필화사건|『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민권일지 사건|신문들의 판매전쟁과 독과점화
자세히 읽기 : 장발·미니스커트 단속|해직 기자들의 수난과 고통
연구문제

13 전두환 정권하의 대중매체 (1979~1988)
1980년 K 공작|자유언론실천운동|5·18 광주항쟁과 언론|언론인 933명 해직|언론통폐합|언론통폐합의 7대 효과|컬러 TV 방송 실시|컬러 TV가 영화·신문에 미친 영향|언론기본법 제정|신문의 산업적 호황|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1982년 통금 해제와 '애마부인'|프로야구와 방송|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KAL기 실종과 '땡전 뉴스'|1985년 '이념서적' 파동|'보도지침' 폭로 사건|TV시청료거부운동|1986년 '평화의 댐' 사건|1987년 언론기본법 폐지와 언론노조 결성
자세히 읽기 : 고별방송의 비극|'국풍 81'
연구문제

14 노태우 정권하의 대중매체 (1988~1993)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서울 올림픽과 대중매체|자유화의 물결, 사이비 언론의 창궐|'어머니의 노래' '광주는 말한다'|신문들의 증면·CTS 경쟁|UIP 영화직배 반대 투쟁|국산영화 점유율 20%|1990년 4월 KBS 사태|방송법 국회 날치기 통과|1991년 수서사건|언론의 촌지·향응 잔치|'땅' '여명의 눈동자' '사랑이 뭐길래'|1991년 9월 김중배 선언|신문의 엔터테인먼트 상품화|SBS 라디오·TV 개국|1992년 SBS의 반란|'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질투'와 '최진실 신드롬'|'김영삼 장학생' 논란
자세히 읽기 : '올림픽의 감격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할리우드 직배영화와 비디오
연구문제

15 김영삼 정권하의 대중매체 (1993~1998)
김영삼의 여론정치|1993년 신문 전쟁|서편제 열풍|텔레비전 시청률 무한경쟁|신세대 신드롬|'연예인 신드롬'과 연예저널리즘|1994년 신문·방송의 광고 전쟁|신세대·매니아·PC통신|차인표·신은경·'모래시계'|케이블TV·지역민방·'땡김 뉴스'|1996년 '부끄러운 신문 100돌'|'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의 전쟁|서태지의 '시대유감'과 은퇴 파동|음반 사전심의제도 철폐|영화 사전검열 위헌 판결|'몸' '불륜'|'섹스'의 재발견|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대중화
자세히 읽기 : 지역생활정보신문 돌풍|맥주 전쟁|'젖소부인 바람났네'
연구문제

16 김대중 정권하의 대중매체 (1998~2003)
'서바이벌 게임'에 들어선 언론|신문을 많이 팔수록 손해본다|최장집 사건|일본 대중문화 개방|영화진흥법·스크린쿼터·'여고괴담'|'제1권부'로 등극한 언론|통합방송법 제정|스크린쿼터 사수 삭발투쟁과 '쉬리' 열풍|IMF가 만든 한류?|인터넷의 급성장|PC방과 스타크래프트|휴대폰은 '종교'인가?|언론사 세무조사 논란|'겨울연가 신드롬'|2002 월드컵 열풍
자세히 읽기 :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출범|'방(房)'의 전성시대|투표·여론 괴리현상
연구문제

17 노무현 정권하의 대중매체 (2003~2006)
노무현 정권과 언론의 갈등|신문 위기론|대통령 탄핵방송 논란|'조선·동아는 역사의 반역자' 논란|신문법 논란|지상파 방송 위기론|'손안의 TV' 시대 개막|보수파의 인터넷 우세|'삼순이 신드롬'|'조선·동아는 독극물' 논란|노무현의 댓글정치|휴대전화라는 신흥 종교|포털 논쟁|UCC 열풍|'괴물'과 '1천만 신드롬'|'이틀에 한 번꼴로 중재 신청'|'언론은 불량상품' 논란
자세히 읽기 : 오마이뉴스|신문법 일부 합헌, 일부 위헌 결정|네티즌의 사이버 정치
연구문제

맺는말 : '카타르시스 효과'를 넘어서
개화기∼미군정하의 언론|이승만 정권∼박정희 정권하의 언론|전두환 정권∼노무현 정권하의 언론|대중매체는 카타르시스 산업|한국은 '대중매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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