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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여지도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정치/사회

노동여지도

두 발과 땀으로 써내려간 21세기 대한민국 노동의 풍경
소장종이책 정가16,800
전자책 정가40%10,080
판매가10,080
노동여지도 표지 이미지

노동여지도작품 소개

<노동여지도> “우리의 일은 당신의 돈보다 아름답다”
가장 보통의 노동 현장 스물여덟 곳으로 떠나는 희망의 여정


기획의도
숫자와 구호 뒤에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노동의 맨얼굴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지도는 크게 달라졌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해고자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그러나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넘기고 사정이 나아져도 고용을 전과 같이 늘리지 않았다. 남은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법원은 해석했다. 이제 노동자는 아직 닥치지 않은 위기 앞에서도 해고될 수 있다. 지난 15년간 진행된 ‘노동 유연화’의 실상이다.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회,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들 뿐 아니라 나쁜 일자리마저 ‘갑질’ 앞에 무릎을 꿇고 지켜야 하는 사회, 이것이 한국의 평범한 일상이다. 경쟁과 도태에 익숙해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삶을 옥죄는 막연한 불안에 일상적으로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이런 곪은 상처를 표피적으로 관리하려고만 해왔을 뿐, 정작 당사자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는 일은 도외시해왔다. 환부를 직시하고 정밀하게 진단해야 가장 유효한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문제를 살피고, 그곳에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정책과 통계치, 구호와 숫자 뒤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사회문제는 삶의 문제로 바로 설 수 있다. 《노동여지도》는 바로 그런 얼굴들, 오늘 이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맨얼굴을 찾아나섰다.

당신이 사는 도시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노동여지도》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실제를 보여주는 한 편의 르포르타주이자 역사서다. 20여 년을 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해온 저자가 2014년 3월 ‘삼성의 도시’ 수원에서 시작해 2015년 4월 ‘책의 도시’ 파주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 28개 지역을 발로 뛰어 ‘오늘 이 땅의 노동여지도’를 그려냈다.
모아 펼친 풍경은 신산하다. ‘1800만 노동자들과 그 가족, 서민들에게는 일상이 세월호의 선실과 다를 바 없’었다(송경동 시인, 추천사 중). ‘사람장사’가 기승을 부리는 안산의 하청노동자들은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의 부모였다. “직영이세요?”라는 맞선 자리 질문에 모멸감을 곱씹어야 하고, 청춘을 바친 공장을 지키기 위해 고공의 굴뚝에 올라야 하고, 열차에서 일하지만 사고 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저자의 여정을 이어가게 한 것은 곳곳에서 싹 트고 있는 희망들이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노동자 자주관리회사로 전환하고 흑자로 돌아선 시내버스회사, 노조와 병원장이 함께 일궈낸 행복한 공공병원, 성과급을 받는 대신 후배들을 정규직으로 만든 선배 노동자들…. 21세기 한국 노동 현장에서 발견한 희망은 아직 작지만 분명 또렷하다.
세밀한 희망을 발굴해 기록한 행간에는 골목을 뒤지며 분투한 저자의 땀이 뜨겁게 배어 있다. 자동차 부품사, 조선소, 시멘트회사, 의료기기 제조사, 음료 제조사, 연구소, 병원, 증권사, 출판사, 공항, 호텔, 식물원, 패스트푸드점 등, 다종다양한 일터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기꺼이 육성을 들려줬다. 그곳에 정직한 땀의 대가를 찾는 사람들,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람들, 상처를 보듬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여지도》가 만난 ‘보통의 노동자’들은 고단함을 나누고 힘을 더할 때 비로소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말’이 아닌 ‘삶’이 실증하는 21세기 노동사의 한 장면이다.

다시 현장에서, 노동자의 연대를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노동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대다수 한국인이 노동자일진데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노조는 어째서 신뢰를 얻지 못하는가?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OECD 최하위권 수준이고 단체협약 적용률은 꼴찌다. 노조가 성과를 내더라도 그것이 극히 일부에게만 돌아간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한국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자기 삶에 가까운 것으로 여기지 못한다. 《노동여지도》의 여정에서도 대공장 정규직 노조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의 목소리가 가감 없이 전해진다.
노동조합 일반을 불신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일부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집단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노동여지도》가 현장에서 만난 ‘작은 노조’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이 질문을 다시 무겁게 생각하도록 한다. 더 나은 일터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자긍심, 일터 밖의 사회와도 연대하는 정의로운 삶에 관한 성찰이 그들의 목소리에 배어 있다. 그래서 다시, 현장을 보고 판단할 일이다.


출판사 서평

책 속으로
01 수원_삼성의 도시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묻다
신분증을 확인하는 경비들의 차가운 눈빛에 황급히 호주머니를 뒤진다.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두리번거리며 공장으로 향한다. 통근버스와 택시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사람을 실어 나른다. 한국 경제의 심장부라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3월 첫 출근날 풍경이다.
9년 전 강원도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제일의 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 출근하던 날의 유미가 떠오르는 듯, 공장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젖어든다. _17쪽

미희 씨는 걸음마를 막 시작한 딸 별이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힘들어도 제발 살아만 있어주지’ 싶을 때면 남편에 대한 원망도 밀려왔다. 하지만 자신은 며칠만 별이를 못 봐도 목이 메는데 “최종범 인생 끝, 최별 인생 시작”이라고 할 만큼 딸아이를 아꼈던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어지면 그런 원망이 사라지고 다만 애처로워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모였다. 남편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는데 돌잔치를 할 수는 없다는 별이 엄마에게 삼성전자서비스 동료들이 자처하여 별이 아빠가 되겠다고 했다. 별이 아빠의 뜻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여 별이의 돌을 축하하고 별이 엄마에게 힘을 주기로 했다. ‘별이 빛나는 돌잔치’는 그렇게 준비됐다. _22쪽

02 울산_소득 1등 ‘노동자 도시’의 세 계급
처음에는 정규직과 뒤섞여 일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규직은 하나둘 힘든 공정에서 빠져나갔다. 정규직이 쓰다 버린 장갑과 안전화를 골라서 쓰는 것도, 정규직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 것도 숙명처럼 느껴졌다. 20대 청춘이었지만 소개팅에도 나가지 않았다. 울산 아가씨들이 맞선 자리에서 “직영이세요?” 하고 물어본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샤니의 옛 동료는 인대가 늘어났는데 하청업체에서 공상公傷 처리를 해주지 않아 ‘열 받아서’ 공장을 떠났다. 상하 씨는 차별과 설움을 묵묵히 견뎌냈다. _33쪽

흑백필름 시절 모두 같이 ‘공돌이’였던 울산의 노동자는 이제 중대형 아파트에 살며 그랜저를 모는 ‘직영계급’, 소형 임대주택에서 아반떼를 타는 ‘하청계급’,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는 ‘알바계급’으로 나뉘었다.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로 들어가는 건 ‘행운’이고, 직영노동자가 되는 건 ‘로또’가 됐다. 사원증과 출입증이라는 신분의 표상이 강해질수록 정규직에 대한 적대감이 재벌에 대한 분노보다 커져간다. 지주보다 마름이 더 밉다지 않던가. _37쪽

03 인천_세계 1위 비정규직 공항
양주나 화장품을 사려고 들어간 면세점의 직원도, 건물 청소, 기계 설비, 승강기 운영 노동자도, 비행기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탑승교를 설치하고 수리하는 이도 모두 비정규직이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정규직은 출국심사를 하는 공무원뿐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환영하는 인파가 몰려들 때 가장 먼저 달려오는 특수경비대도, 누군가 다치거나 공항에 불이 나면 달려오는 소방대도, 공항을 순환하는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도 비정규직인 공항이 인천국제공항이다. 직접적인 공항 업무를 보는 노동자 7,300여 명 중 정규직은 14.1퍼센트인 1,040명, 나머지 85.9퍼센트인 6,318명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노조는 면세점, 항공사, 화물, 물류, 세관 등을 포함하면 비정규직이 3만 명을 넘는다고 설명한다. 비정규직 비율이 이보다 더 높은 공항이 세계 어디에 있을까? _46쪽

04 군산_가난한 항구도시는 부유한 노동자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어렵게 수소문해 만난 용접공 하청노동자는 잘라 말했다. “군산 젊은이들에게 현대중공업은 희망이 없다.” 위험하고 힘든 ‘땜장이’ 일을 주말까지 해도 연봉이 3000만 원도 안 될 뿐 아니라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가깝게 일했던 젊은 친구가 정기검진에서 폐섬유종 판정을 받았단다. 친구는 산재 신청도 하지 않고 그냥 회사를 그만뒀다. 매주 군산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동 상담을 하는 김락균 군산지역 금속지회장은 “처음에는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젊은이들이 현대중공업으로 몰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떠나가 이제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조선산업 서해안시대를 열었다는 군산조선소는 비정규직 양성소가 되었다. _59쪽


05 평택_‘쌍용호’는 해고자를 배에 태울까
평택에서 쌍용차, 만도, 한라공조를 빼면 열악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청희 씨의 학교 친구 중에 운 좋게 기아차 화성공장에 정규직으로 취직한 동창도 있지만 대부분이 평택 일대에서 비정규직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정부가 공유지를 무료로 임대해주고 세제 혜택을 주면서 만든 포승국가산업단지가 평택 젊은이들에게는 포승‘하청’산업단지인 셈이다. 청희 씨는 2010년 현대위아에 처음 온 날을 잊지 못한다. 면접 볼 때 ‘쌍용차 다녔느냐’는 것이 첫 질문이었다. …
하지만 그는 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싸웠기 때문에 정리해고가 세상에 알려졌고, 47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에 맞서 시민들이 ‘노란봉투’라는 이름으로 13억 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는 것을. 지금도 수많은 시민이 쌍용차 노동자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_69~70쪽

06 부산_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정규직이여
4년 전 손쉽게 넘을 수 있었던 얕은 담장은 지금 교도소 담벼락보다 높아졌다. 노조 사무실이 공장 안에 있지만 회사는 국회의원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졌고, 민주노조는 소수가 됐다. 박성호 지회장은 “2010년의 기억을 잊고 싶었는지 회사가 85호 크레인도 철거해버렸다”라고 전했다. …
휴업 중인 노동자 350명이 공장으로 돌아왔고, 내년 1월이면 모두가 현장에 복귀할 예정이다. 수주받은 배를 만들려면 2,50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한데 직영노동자는 750명뿐이다. 회사 형편이 나아졌고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정규직은 안 뽑는다. 회사는 앞으로 1,000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을 데려다 배를 만들 계획이다. 50명이 일하던 엔진 파트에 20명밖에 없지만 설치와 프로펠러를 하청업체에 넘기면 된단다. 방산법 때문에 비정규직을 쓸 수 없는 특수선을 빼고 상선의 설계도 이미 외주화했다.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의 부산항에 돌아올 노동자는 그리운 정규직이 아닌 하청노동자들뿐이다. _83~84쪽

07 전주·익산_시내버스의 아슬아슬한 질주
열차가 좌우로 흔들린다. 세월호 침몰 이후 지하철, 터미널, 병원에서 잇따라 터진 사고들 때문인지 괜한 잡념이 스멀거린다. 한여름엔 탈선에 대비해 철로에 물을 뿌린다는데 갑작스러운 폭염에는 탈이 없을까? 열차에 불이 나면 어떻게 끌 수 있을까? … 음료를 사며 판매원에게 슬쩍 말을 건넨다. “글쎄요. 여기는 소화기가 없어요. 저는 무전기도 없어서 열차 전무님들에게 알려줄 방법도 없는데….” …
이 씨가 열차 시간표를 보여준다. 승객들이 승무원인 줄 알고 시간을 물어보기 때문에 코레일에서 나눠준 것이다. 그는 종일 승객들에게 안내하고, 항의를 받는다. 사고가 나면 문을 열어 승객을 대피시키고, 소화기를 찾아 불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코레일도, 코레일관광개발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승객 구조 업무는 모두 불법이다. _92~94쪽

24년 동안 호남고속에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한인수 씨는 서울에서 버스를 모는 친구가 부럽다고 말한다. 자신보다 한참 늦게 운전일을 시작했는데도 일자리가 안정되어 있고 월급도 훨씬 많다. 서울은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호남고속은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노조원을 해고하고, 비정규직 기사를 마구 사용한다.
“어떤 승객은 운전기사를 머슴으로 생각해요. 말 한마디 잘못해도 욕설을 퍼붓고요. 껌을 뱉거나 의자에 가래침을 뱉어놓기도 하고. 회사는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신차를 배차해줍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후배들은 조금 나은 환경에서 지내라고 이렇게 싸우는 거죠.” _97쪽

08 구미_민주노조도, 웃음도 사라진 박정희의 도시
그와 동료들은 열심히 일했고, 회사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특수섬유를 개발하는 일은 소홀히 하고 원사를 대량생산하는 데만 매달렸다. 잘나가던 회사가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금강화섬에 이어 2007년 한국합섬이 폐업했다. 그와 동료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속절없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
“나와 동료들의 20년 청춘과 피땀이 배어 있는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어요.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이지만 버틸 겁니다.”
김세권 사장이 회사를 폐업하고 공장을 분할매각하겠다고 했을 때 스타케미칼지회 지도부는 위로금 520만 원을 받는 합의안에 도장을 찍어줬다. 광호 씨를 포함한 12명이 이를 거부했다. 20대에는 민주노조를 만들기 위해 백골단에 맞서 싸웠고, 30대에는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용역깡패와 싸웠는데, 40대에는 민주노조 ‘정신’을 지키기 위해 어용노조와 싸우고 있다. _109~110쪽

09 안양·군포·의왕_비정규직 없애는 노조, 늘리는 지방정부
2008년 6월, 장명권 노조지회장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공장 안에서 함께 일하지만 정규직이 아닌 24명의 명단이었다. 식당과 경비, 청소 노동자 22명과 병원과 은행에서 파견 나온 노동자까지 적혀 있었다. 그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생산직과 사무직을 불문하고 하나의 노조로 가입해야 한다는 금속노조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노조 가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병원과 은행에서 파견 나오신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대자동차노조는 공장에서 똑같이 일하는 사내하청노동자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는 다른 회사 노동자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_122쪽

10 광주_5·18 정신이 무색한 광주의 일터 풍경
광주지하철 농성역에서 3조로 3명씩 일하는 역무원 9명은 광주도시철도공사 직원이 아니라 모두 민간에 위탁된 비정규직 역무원이다. 광주 시내 19개 역사 중에서 17개 역이 ‘비정규직역’이다. …
민정 씨는 자전거를 타다 팔다리를 다치고 얼굴을 열두 바늘이나 꿰맸는데도 출근하고 있다. 그녀가 없으면 나머지 두 사람이 업무를 모두 봐야 하기 때문이다. 정태 씨 컴퓨터는 모니터 액정이 깨졌는데, 집에 있는 모니터를 가져와야 했다. 습하고 더운 지하 일터를 견디게 해줄 선풍기 세 대는 직원들이 돈을 모아 샀다. 2년마다 바뀌는 역장은 ‘왜 내게 사달라고 하느냐’며 역정을 낸다. _137~138쪽

2013년 기아자동차와 정규직노조가 장기근속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데 합의하자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던 김 부장은 시너를 뿌리고 분신으로 항거했다. 세 딸아이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고 외친 날은 우연히도 세월호 침몰일인 4월 16일이었다. …
차에 시트를 넣고 조립하는 공정. 10년 전 기아 공장에 들어온 김락희 씨가 쏘울과 카렌스 안에 14킬로그램짜리 시트를 연달아 넣는다. 이어 정규직이 시트를 조립한다. 전에는 왼쪽 시트는 비정규직, 오른쪽은 정규직이 조립했던 걸 불법파견을 피한답시고 구분해놓았다. _139~140쪽

11 천안·아산_살맛 나는 중소기업 일터
노조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리본을 만들어 전 조합원에게 나눠주고 공장 식당에서 세월호 영상을 상영했다.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부서별로 일대일로 만나 세월호 촛불집회에 가야 하는 이유를 얘기했다. 조합원들은 잔업까지 마치고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촛불집회에 나왔다. 세월호 천안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도 맡고 있는 그는 “만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그러던 놈들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한다. _148쪽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노동자 배동원 조합원. 쉰여덟 살인 그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가장 연장자다. 하청업체 정년은 이미 지났고, 2015년 12월이면 현대차 정규직 정년도 끝난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집회와 농성에 빠짐없이 참여한다. “나이도 많은데 그만하라는 얘기 많이 들었지.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보고 싶어.” 해고 생활을 지켜준 아내와 말없이 아빠를 응원하는 아들 녀석에게도 당당한 남편과 아빠이고 싶은 마음이다.
그의 아들은 정규직이다. 아산의 세영테크라는 자동차부품회사다. 금속노조 소속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65명 노동자 모두가 정규직이다. 아빠는 대기업 비정규직, 아들은 중소기업 정규직인 집안이다. 유성기업, 대한칼소닉과 함께 천안과 아산에 있는 금속노조 소속 갑을오토텍, 위니아, 세정, 대원강업, 나스테크, 다스, 대림프라코, 케이엠피 등의 중소기업이 모두 생산현장에 사내하청이 없는 ‘비정규직 없는 일터’다. 최대 재벌 삼성과 현대차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늘리고, 중소기업 민주노조가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_152~153쪽

12 서울 구로_첨단 공단의 피로한 노동자들
20년의 시간, 바뀐 건 역 이름만이 아니다. 국가산업단지 1호 구로공단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굴뚝 공장은 아파트형으로 바뀌었다. 허름한 백반집은 세련된 레스토랑으로, 푸른빛 작업복은 캐주얼 복장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도 달라졌을까?
“권고사직 노동조건 후퇴/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상담받고 버티면 ‘끝’/ 사인하기 전 꼭 상담하세요” 공단 입구에 걸린 현수막이 출근하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권고사직이 횡행한다는 얘기다. _159쪽

이 지역 노동자들은 주당 45.6시간을 일하고 월평균 196만 5000원을 받았다. 전국 평균보다 3시간 더 일하고 22만 원 적게 받는다. 저임금 노동자 24.4퍼센트는 주당 6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첨단 구로공단에서 하청의 하청으로 일하는 ‘IT 노가다’들에게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_162쪽

13 대전_과학도시 ‘떠돌이 박사들’의 한숨
대덕단지 끝자락에 있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 … 보통 사람은 골치가 지끈거리는 수학,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들이다. 어린 시절 똑똑하다고 칭찬받으며 에디슨과 노벨상을 꿈꾸던 영재들이었다.
투쟁조끼를 입은 최연택 지부장도 수학박사다. 그가 건넨 명함에 ‘가상생태계모델연구개발팀 연구원’이라고 적혀 있다. 거대과학계산, 특수암호 알고리즘, 미래인터넷 네트워크, 수리적 뇌기능 판독, 공학해석 수치프로그램…, 부르기도 어려운 연구과제를 다룬다. 팀을 구성해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들이다. … “그냥 때려치우고 이민 가려고 했어요. 근데 어느 분이 주인의식 얘기를 하더라고요. 계약직이지만 내 연구소라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우리가 연구소를 바꿔놓아야 다음 사람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앞에 나서게 됐죠.” 최연택 박사가 노조 일에 나선 이유를 들려준다. _173~174쪽

14 안산_세월호를 빼닮은 ‘노동재난구역’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이 금지되어 있지만 임시・간헐적 업무는 3개월을 사용하고 한 번 연장할 수 있다. 불법파견, 무허가 파견이 허다하다. 상시 업무에 하청업체를 돌려가며 파견하기, 6개월 일하고 잠시 쉬게 했다 다시 파견하기 등, 법의 빈틈을 이용한 ‘변종 사람장사’가 기승을 부린다.
대한민국 파견노동 1번지, 인간경매 단지로 불리는 시화공단 입구로 들어선다. ‘생산직 인력파견, 자동차부품 전자, ○○인력’ 하는 광고판이 지천에 깔렸다. .… 50미터 거리에 집을 사고파는 부동산이 6개, 사람을 사고파는 인력회사가 19개다. _182~183쪽
봉고차가 단원고등학교를 지나 고잔동 주택가 놀이터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세월호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 장동원 씨가 반갑게 맞는다. 그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신흥에서 일한다.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대부분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이거나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서민들이다. 한 자동차부품회사에서 3명이 자식을 잃었는데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살아온 아이들도 안전하지 못해요. 자판기에 깔린 친구를 두고 온 아이, 친구의 손을 놓친 아이, 누군가 발목을 잡았는데 뿌리치고 온 아이들이 지금도 울고 있어요.” 그의 눈이 젖어든다. _190쪽

15 창원_직영 아빠와 하청 아들, 서글픈 부자도시
효성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 3,700명 중 정규직은 1,000명뿐이다. 사내하청이 2,300명, 계약직이 400명이다. 직영 아버지와 하청 아들, 정규직 삼촌과 계약직 조카가 함께 일한다. 직영과 하청은 하늘과 땅이다. 30대 초반이지만 직영노동자는 주야간 일하면 연봉 50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심 부장은 “재수 좋으면 정직원이 된다는 얘기가 들리니까 일용직이라도 넣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이 노동조건이 열악한 하청업체를 기피하니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얍삽하게 홍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장순회를 마치고 나온 조장열 수석부지회장은 아버지 세대다. “50대 조합원들이 자신이 그만둘 테니 아들을 넣어달라고 합니다. 노조에서 회사에 요구하면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요구를 할 수는 없죠.” 회사의 막내 김병준 문화체육부장은 노동자대투쟁과 나이가 같은 1987년생이다. 마산상고 야구부 1번 타자 출신인 그는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자 운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공장 가서 뭐 할래’ 하던 친구들이 지금은 ‘자기도 좀 넣어주면 안 되냐’고 말한다. 정규직 일자리가 없는 부자도시 창원의 두 얼굴이다. _198쪽

점심시간, 식당 줄이 유난히 길다. 몇 년째 식당 증축을 요구했는데 “공장에 일하러 오지, 밥 먹으러 오냐”는 것이 회사 고위층의 대답이었다. 밥에 오물이 섞여 나와 식판을 집어던지며 싸우던 시절이 마냥 옛날이 아니다. 소속 업체에 따라 제각각 다른 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긴 줄을 기다려 밥을 먹는다. 직영은 카드를 찍고, 하청은 식권을 낸다. 하청의 설움을 먹는다. _199쪽

16 화성_캠핑 열풍, 떠나는 노동자와 소외된 노동자
수원을 빠져나온 버스가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시골길을 달린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으로 향하는 43번 국도. 관광버스가 노동자를 싣고 이 길을 쉴 새 없이 왕복한다. 기양관광 기사님에게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20년 동안 기아 노동자를 태운 그의 청춘이 화성공장의 역사와 함께 운전대에 배어 있다.
지난 2013년 3월 4일부터 기아차 근무시간이 주야 맞교대에서 주간 2교대로 바뀌었다. 1조는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3시 40분에 퇴근하고, 2조는 새벽 1시 40분에 일이 끝난다. 그에 따라 기사님은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들어간다. 지난주 야간근무 때는 낮 12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4시에 귀가했다. “단가도 깎이고 성과급도 없어졌어요. 점점 안 좋아지니까 많이 힘들죠.” 그가 실어 나르는 기아 노동자에겐 밤샘근무가 사라졌는데, 그와 동료들은 14시간씩 밤샘노동을 하고 있었다. _208쪽

1989년 갯벌을 막아 지은 화성공장이 가동되자, 회사는 조개를 캐거나 농사를 짓던 주변 농어민들을 사내하청으로 일하게 했다. 임인숙 씨는 노진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1997년 기아차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17년을 일했다. 60세 정년까지 4년 남았다. 같은 동네에 사는 지인순 씨가 옛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 왔을 때 일당이 5만 원도 안 됐어요. 바닷가 나가면 5만 원은 돈도 아니라고 했는데, 노조 만들고 싸워서 많이 좋아졌지.” “우리가 뭘 알았나, 저런 이가 있어서 싸웠지.” 인숙 씨가 김수억 씨를 보며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다. …
수억 씨가 세 어머니 모두 2007년 8월 점거파업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조합원들이라며 자랑한다. 10년의 싸움. 젊은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늙은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희생은 컸지만 성과도 적지 않았다. 비정규직 조합원이 1,800명으로 늘었고, 연봉도 5000만 원이 넘는다. 기아차도 하청회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 _211쪽

17 광양·순천_태백산맥을 닮은 사람들
박정훈 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장과 함께 B동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는 9년 전 오늘을 잊지 못했다.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하면서 기본급 75만 원을 받던 시절, 견디다 못한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조합원이 많은 순서대로 업체를 폐업해 120명이 길거리로 쫓겨났다. 그는 학창시절 친구에게 홀로 계신 어머니를 부탁하고 공장으로 숨어들어왔다. 2005년 10월 24일 새벽 1시, 61명의 해고노동자가 공장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40톤짜리 크레인 5개를 세우자 공장이 완전히 멈췄다. 다음 날 전국에서 달려온 5,000여 명이 전경버스 3대를 불태우고 공장 진입을 시도하며 격렬히 싸웠다. 그러나 현대하이스코는 물과 음식물 반입을 막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사대로 내세워 강제진압에나섰다. 경찰특공대가 투입돼 공장 지붕을 뜯어냈다. <태백산맥>의 주인공들처럼 생쌀과 초코파이를 먹으며 버텼다. 경찰이 소방호스로 뿌린 물을 받아 마셨다. 서로 부둥켜안고 추위를 견뎌냈다.
그해 11월 3일 새벽, 노사는 해고자 우선 취업과 노조활동 보장 등에 합의했다. 크레인을 점거했던 11명이 구속됐고, 박정훈 전 지회장은 꼬박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11일간의 전쟁은 철강회사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9년이 흐른 지금, 비인간적인 대우는 줄어들고 월급봉투는 두툼해졌다. 그러나 정규직은 2002년부터 4조 3교대를 하고 있는데 하청노동자는 지금도 3조 3교대로 휴일도 없이 일한다. 여전히 하청노동자들은 2등 국민, 2등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_227~228쪽

18 경주_노동자와 함께 깊어가는 ‘신라의 달밤’
“오늘 삼겹살입니더. 후딱 식사하이소.” 깔끔한 식당에 삼겹살과 상추가 놓였다. 6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풍경이다. 민주노조는 식판부터 바꿔놓았다.
“노동조합이 바뀌면서 제일 좋은 건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됐다는 거예요. 중간관리자 눈치 안 보고, 욕 안 얻어먹고, 내 할 일 하고 내 월급 받아가게 됐다는 거죠.” 임도형 지회장이 환히 웃는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금속노조 보고 감사하다고 절을 합니다, 꼬박꼬박.” 김재홍 부지부장의 허풍에 웃음보가 터진다. 임도형, 김재홍을 비롯한 ‘다스 8인방’이 금속노조 경주지부 정진홍을 찾아간 것은 2008년 5월이었다. 이명박 집안과 2차 전쟁의 시작이었다. _237~238쪽

19 서울 여의도_낙엽보다 위태로운 증권 노동자
지하철역을 빠져나온 이들은 잔뜩 웅크린 채 총총걸음을 걸으며 초고층 빌딩숲으로 사라졌다. 한바탕 북새통이 지나고 한산해진 여의도역 4번 출구. 포장마차에서 어묵 하나를 집어 들고 말을 건넨다. “올해 증권사들이 사람 많이 잘랐잖아요. 장사가 안되죠. 사람들이 어려워지면 군것질거리처럼 사소한 것부터 줄인다니까요.” 대한민국 금융 1번지, 여의도 증권가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_249쪽

“선배들은 좋은 시절 얘기도 하시는데, 우리야 얘기만 들었지 겪지도 못했어요. 노조 만들고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걸 막았다는 느낌은 있는데, 노조로 힘이 잘 모이진 않아서 좀 속상합니다.”
증권가에 몰아닥친 해고의 폭풍우 앞에서 홀로 바다로 뛰어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난간을 부여잡고 함께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25년 만에 증권사 신규 노조가 4개나 생겼다. 특히 ‘증권가의 삼성’이라고 불리는 대신증권과 HMC투자증권의 노조 설립은 대형 사건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과 같은 4월 16일에 만들어진 HMC투자증권은 15개 지점을 53개로 늘렸다가 전부 폐쇄하고 다시 15개로 줄였다. 회사는 노동자를 일회용품처럼 쓰다 버렸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떨어진 낙엽처럼 나뒹굴고 있다. _252쪽

20 당진·서산·태안_발전소의 토마토, 사과, 배
한국동서발전은 직원들에게 딱지를 붙였다. 겉과 속이 모두 빨갛다는 뜻의 ‘토마토’,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사과’, 겉과 속이 모두 회사 편이라는 뜻의 ‘배’로 구분했다. ‘노동조합 골수분자’를 뜻하는 토마토 사원들에게는 순위까지 매겼다.
회사는 128명을 타향으로 보내면서 기업노조에 가입하면 제외해줬다. 토마토 1번부터 원거리로 발령을 냈는데 7번이었던 그는 2011년 강원도 동해화력발전소로 쫓겨 갔다. “스무 평 남짓한 방에 서너 명이 밥을 해먹으며 살았어요. 낯선 타향에 버려진 느낌이 굉장히 서러웠어요. 정신적 충격도 컸죠.” 1,300명에 달하던 조합원이 300명으로 줄었다. 지난 2014년 10월 26일, 서울중앙지법은 한국동서발전이 강제전보 발령 등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하며 노조에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_265~267쪽

“8시간 노동제가 안 됐을 때는 유화단지에서 사람 엄청 죽었어유. 일에 쫓기고 경쟁 붙고 장시간 일하고. 연 5,000~6,000명 투입되는 현장에서 보통 대여섯 명이 죽었어유. 노동조합이 생긴 뒤로 한 공사에 5,000명이 들어갔는데 1명도 안 죽었죠.” 세 아이의 아빠는 아이들 학교도 가고 등산도 다닌다. 그래야 일도 더 잘할 수 있다. 8시간 노동, 표준임금제는 위태로운 생명을 구하고, 가정의 화목도 살려냈다. 그런데 회사는 옛날로 돌아가자고 한다. 공장을 짓는 사람들의 한숨이 천막에 드리운다. 그가 뼈마디 굵은 손가락을 움켜쥔다. _270쪽

21 대구_노사평화선언보다 달구벌에 필요한 것은
간호사들이 가운을 벗고 로비에 모여 있다. … 병원은 ‘과도한 수준의 직원복지를 국민 정서에 맞는 수준으로’ 바꾸라는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방침에 따라 ‘방만경영 개선책’을 논의하자고 한다. …
“파업 와 하는데? 돈도 필요 없다. 와? 돈 쓸 시간이 없다.” “나도 친절하고 싶다. 와? 마음에 여유가 없다. 24시간이 모자라!” 조합원들이 손으로 쓴 대자보가 깜찍하다. 내과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근무표를 보여준다. 한 달에 이틀 쉬었다. 아파도 쉴 수가 없어서 간호사들끼리 서로 주사를 놔주며 일한단다.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왜 쉬는 날이 없냐고 그래요. 밥 굶는 건 예사고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 정도인데, 사람은 충원 안 하고 병원을 짓는다니 화가 나죠.” _276~278쪽

건설노조에는 5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다. 이길우 지부장이 2012년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들려준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기 위해 건설현장에 들이닥쳤다. 다 잡혀가 강제출국을 당했는데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1명도 연행이 안 됐다.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있어서 함부로 시비를 걸지 못했고, 말을 걸어도 한국 노동자들이 보호해줬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듣고 이주노동자들이 몰려와 조끼를 500벌이나 사갔다. “대구의 전문건설업체도 우리를 좋아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원청건설사한테 15퍼센트 정도 돈을 더 받아요. 우리와 맺은 협약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죠.“ _280쪽

22 동해·삼척_향토기업의 비정규직 부려먹기 천태만상
최창동 지부장이 46광구를 안내했다. 움푹 패인 야구장 모양을 닮은 노천광산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넣어 발파하면 석회석이 쏟아진다. 그는 락덤프(굴절식 덤프트럭)로 석회석을 실어 해머크레셔(쇄석기의 일종)로 보낸다. 분쇄된 석회석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공장으로 흘러가 화학약품과 섞여 시멘트가 만들어진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발파에서 시멘트 출하까지가 하나의 공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46광구는 1993년 세계 최대 수준인 1000만 톤 생산 시대를 열어 동양그룹을 먹여 살린 곳이다. 최 지부장은 그해부터 20년 넘게 일했지만 가난한 하청 인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20년 동안 동양시멘트를 지켜온 46광구는 2016년 화력발전소로 변신한다. 20년 넘게 동양을 키워놓은 하청 인생도 노조를 통해 새롭게 변신할 날이 머지않았다. _292~294쪽

23 청주_행복버스와 노동인권이 달리는 무심천
회사 건물 입구에 “노동자의 희망을 실천한다”는 구호가 적혀 있다. 버스 113대, 300명 모두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 자주관리회사’. 10년 전인 2005년 1월 20일 부도난 버스회사를 노동자들이 인수했다.
우진교통 김재수 대표. … 그가 녹차를 따르며 10년 세월의 보따리를 풀어낸다.
부도난 회사를 노조가 인수하고 그가 민주노총에서 파견됐던 일, 그때 신뢰하던 변호사의 컨설팅 결과가 ‘그 회사는 망할 테니 손을 뗄 것’이라고 나왔던 일, 차고지 문제로 LH공사와 한 달 보름 동안 싸우던 일, 2008년 노동자 자주관리에 대한 인식 차이로 61명이 집단퇴사한 일, 약속대로 5년 뒤 민주노총으로 돌아가겠다던 그를 조합원들이 천막농성을 하며 막아섰던 일….
우진교통 300명의 땀과 눈물과 지혜가 모인 10년이었다. 150억 원대의 악성 부채를 청산했고, 자산은 비약적으로 늘어 제2차고지 땅을 매입했다. 지난해에는 13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평균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화돼 청주에서 제일 좋은 버스회사이자 가장 조직력이 튼튼한 노동조합이 됐다. _310쪽

24 목포_‘선상님’ 고향에서 흘리는 하청의 눈물
30년 경력의 치부, 용접, 제관공 월급이 250만 원이다. “대불공단에 3만 명 넘게 일하는데 근로조건이 전국에서 제일로 열악하죠. 4대보험도 없고, 임금은 상습적으로 체불되고.” 공장은 있는데 직원이 없다. 관리인 몇 명만 두고 공장 안에 하청을 둔다. 그들이 다시 재하청을 준다. 현대삼호중공업 납기를 맞추기 위해 물량팀을 공장에 들여 물량을 쳐낸다. 그래도 안 되면 저녁에 아르바이트와 이주노동자를 불러다 일을 시킨다. 물량팀장은 돈을 못 받았다며 월급을 미루다 사라진다. … 용접공들이 대불공단 이곳저곳을 빙글빙글 돌며 일한다.
“대형 블록공장들에 직영노동자가 없는 게 제일 큰 문젭니다. 야간, 일요일까지 일하고 언제 노조 만듭니까? 한 해 13명이 삼호와 대불공단에서 죽어나갔어요. 바지선이 폭발해서 죽었는데, 가스 냄새가 난다고 그렇게 말해도 납기일 급하다고 일하라 하고, 즈그 직원이 몇 명인 줄도 모르고, 그런 공장들이에요. 노동부는 근로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전남도지사나 목포시장은 찾아오지도 않아요.” _325쪽

25 서울 신촌_청춘, 아프니까 노조를 만든다
“작년에 1학년들에게 토론 모임을 제안했는데 10명도 안 왔어요. 그런데 ‘스펙 취업 걱정되니? 너네 한번 스터디해보자. 토익.토플·중국어’라고 제안했더니 50명이 넘게 신청하는 거예요.” _332쪽

신촌역 3번 출구 맥도날드 매장이 혼잡하다. 주방과 카운터에서 12명의 젊은이가 손님을 맞이한다. 햄버거를 만들어 포장하고 감자를 튀겨 건져내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밀려드는 주문은 잠깐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 시간의 노동 값으로 빵 하나를 고르기 힘든 최저임금. 청춘의 시간이 패스트푸드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_336쪽

김영 씨가 녹차라테를 주문한다. 팥빙수나 스무디는 만들기도 어렵고 설거지도 힘들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
스물세 살 김영 씨는 5일 전까지 롯데시네마 합정점에서 300일 동안 일했다. 관장과 관리자 5명은 정규직, 검표와 매표, 매점 일을 하는 30명은 10개월 계약직이다. 팝콘 매점도 직영으로 운영한다. 5,500원짜리 팝콘의 원가가 600원이라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CGV는 1년 이상 일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일하게 해주고 퇴직금도 준다는데 롯데시네마는 ‘얄짤없다’. 월 80만~90만 원 받아 고시원비 내고 생활비 하면 ‘땡’이다. _338~339쪽

26 원주·춘천_협동조합 1번지, 노동자도 행복할까?
“좋은 일 하면서 즐겁게 지내자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죠. 월급도 적고 힘들긴 하지만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7명의 재활사들은 2014년 1월 18일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5월에 보건복지부 인가를 받았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재활사들이 인사노무, 홍보마케팅, 회계 등을 나눠 맡았다. 치료가 끝나면 늦게까지 남아 함께 토론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도 계속했다.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동료 둘이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복직하면 근무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단축할 계획이다. 일손이 부족해 4월에는 4명을 더 채용한다. 월급도 올리기로 했다. 협동조합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좋은 치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_352쪽

27 제주_관광 노동자들의 미소 뒤에 숨은 것
호텔에는 예약과 영업을 담당하는 객실부 외에 식음료, 조리, 시설, 룸메이드 업무가 있다. 2005년에 관광객이 줄어들자 업무를 도급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노조가 없는 호텔부터 무너졌다. 룸메이드・시설・청소업무를 하청업체로 넘겼다. 일부 호텔에서는 식음료 업장도 도급을 줬다. 관광객이 줄었다는 이유로 어제 정규직이 하던 일을 오늘 비정규직이 하게 했다. 2009년 더호텔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지만 도급화를 막아내지 못했다. 노조는 깨지기 직전까지 갔다가 회복됐다. 현재 호텔에서 일하는 130명의 노동자 중에서 객실부, 식음료, 조리팀에서 일하는 80여 명은 직영, 나머지는 하청이다. 지금은 시설 부문을 다시 직영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2009년부터 중국 시장이 열리면서 호텔업계는 최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호텔마다 빈 객실이 없다. 신축공사로 객실이 해마다 1만 개씩 늘어날 정도다. 떠나간 관광객이 돌아와도 도급으로 떠난 직원은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관광한국’의 두 얼굴이다. _364쪽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자 삼풍그룹은 자회사인 여미지식물원을 서울시에 기부했다. 대형사고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한 기부였지만, 여미지식물원에서 일하던 그와 동료들은 노조를 만들고 서울시를 상대로 싸워야 했다. 100일 동안 전면파업과 상경투쟁을 벌인 끝에 비정규직을 포함해 114명 전원이 고용을 승계받았다. 그러나 서울시설관리공단이 2005년 4월 부국개발에 여미지식물원을 팔면서 노동자들은 다시 위기를 맞았다. 김동도 전 본부장은 2008년 1월 정리해고, 2011년 1월과 2012년 8월 징계해고를 당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그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2013년 6월 위암이 발병해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_365쪽

28 파주_책의 도시가 품은 명암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2층 호스피스완화병동 입구. 가족의 편지와 미술치료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환자와 가족이 만든 화분도 보인다. 원예요법이다. 입원환자 12명을 간호사 6명과 사회복지사가 돌본다. 주치의는 1명이지만 병원 의사 모두가 협진을 한다. 미용, 목욕, 마사지와 네일아트도 받는다. 노부부의 마지막 데이트를 위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르핀 주사를 챙겨 들고 카페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대만족’이다. “이런 시설을 들인 공간에 일반병실을 만든다면 병상 30개를 더 놓을 수 있어요. 민간병원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겠죠. 공공병원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설을 만들겠어요?” _376~377쪽

출판계는 양극화되고 있다. 대형출판사와 작지만 창의력으로 버티는 출판사로 재편되고 있단다. 작은 출판사는 더 힘들다. 형편이 어려운 걸 뻔히 아는데 권리만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노조를 처음 만들 때 사장님이 노조는 회사가 어려울 때 임금 삭감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단결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조직이면 임금 삭감도 함께 결의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노조를 경영의 걸림돌이 아니라 파트너로 인식할 때,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같이 일으킬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살아온 10년. 어른이 어린이의 책을 만들면서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출판사 대표와 출판 노동자의 거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이 아닐까? _380~381쪽



저자 소개

지은이 박점규는
전국의 노동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했고,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장에 함께해온 노동운동가다. 1971년 태어나 인천 연안부두와 송림동, 서울 용산중앙시장에서 살며 노동자 어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민주노조 활동으로 이어졌다. 1998년부터 민주노총에서 홍보와 투쟁을 담당했고, 2003년 금속노조로 옮겨 2011년까지 선전홍보, 단체교섭, 비정규직 사업을 했다.
그는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서비스 등 시급하고 절박한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적극 참여해왔다. 특히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간 진행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점거파업에 함께했는데, 파업이 끝난 후 체포영장이 발부돼 7개월 동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수배 기간 중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파업의 생생한 내용을 기록해 《25일》을 펴냈다. 그후 노동운동을 계속 이어가며 2011년 한진중공업, 2013년 현대자동차, 밀양 희망버스 등의 기획단으로 활동했다.
또한 노동 ‘투쟁’만이 아니라 ‘기록’의 중요성에 눈떠 2015년 현직 언론사 노동기자들과 함께 <굴뚝신문>을 만들었다. 여러 인터넷신문에 ‘박점규의 현장편지’를 연재했고,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에 ‘박점규의 동행’을 연재하고 있다. 지금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비정규직과 함께 부딪치고 투쟁하며 현장을 기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목차

차례
 들어가며 당신이 사는 도시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01 수원_삼성의 도시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묻다
02 울산_소득 1등 ‘노동자 도시’의 세 계급
03 인천_세계 1위 비정규직 공항
04 군산_가난한 항구도시는 부유한 노동자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05 평택_‘쌍용호’는 해고자를 배에 태울까
06 부산_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정규직이여
07 전주·익산_시내버스의 아슬아슬한 질주
08 구미_민주노조도, 웃음도 사라진 박정희의 도시
09 안양·군포·의왕_비정규직 없애는 노조, 늘리는 지방정부
10 광주_5·18 정신이 무색한 광주의 일터 풍경
11 천안·아산_살맛 나는 중소기업 일터
12 서울 구로_첨단 공단의 피로한 노동자들
13 대전_과학도시 ‘떠돌이 박사들’의 한숨
14 안산_세월호를 빼닮은 ‘노동재난구역’
15 창원_직영 아빠와 하청 아들, 서글픈 부자도시
16 화성_캠핑 열풍, 떠나는 노동자와 소외된 노동자
17 광양·순천_태백산맥을 닮은 사람들
18 경주_노동자와 함께 깊어가는 ‘신라의 달밤’
19 서울 여의도_낙엽보다 위태로운 증권 노동자
20 당진·서산·태안_발전소의 토마토, 사과, 배
21 대구_노사평화선언보다 달구벌에 필요한 것은
22 동해·삼척_향토기업의 비정규직 부려먹기 천태만상
23 청주_행복버스와 노동인권이 달리는 무심천
24 목포_‘선상님’ 고향에서 흘리는 하청의 눈물
25 서울 신촌_청춘, 아프니까 노조를 만든다
26 원주·춘천_협동조합 1번지, 노동자도 행복할까?
27 제주_관광 노동자들의 미소 뒤에 숨은 것
28 파주_책의 도시가 품은 명암
 나가며 친절한 그래 씨에게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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