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중요하지만 간과해 온 ‘고엘’에 관한 국내 최초의 공동 연구물!
‘고엘’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을까?
구약성경에 보면 친족이 빈곤으로 인해 땅을 잃고 종살이를 하게 될 경우 대신 대가를 지불하고 땅이나 종살이하는 사람을 되찾아 주는 ‘고엘’ 제도를 하나님이 마련하셨는데, 이 고엘 제도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도 고엘이라 칭했다. 히브리어 ‘고엘’은 한글 성경에 ‘(기업) 무르는 자’, ‘피를 복수하는 자’, ‘친족’, ‘구속자’라고 주로 번역되었다. 고엘은 땅 무르기, 신분 무르기, 피 무르기를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고엘은 땅을 잃거나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된 친족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되사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친족이 죽음으로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할 때,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와 같이 과부와 결혼하여 대를 이어 주는 것도 고엘의 역할이다. 고엘은 또한 친족의 피를 흘린 자를 죽임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사형 집행관’인 셈이다. 또한 친족을 살인한 자를 처형하여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도 고엘의 역할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간혹 나오는 이 ‘고엘’을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라 할 수 있을까?
한국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가 ‘고엘’을 주제로 각 전공 분야에서 연구‧집필하여 2014년 6월 캘리포니아의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포럼을 연 결과, ‘고엘’이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구속’이란 주제에 긴밀히 연결된 개념임이 드러났다. 집필진은 이 결론을 미리 정하고 성경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려던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을 충분히 살펴보자는 태도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물에는 깊이 있고, 알차고, 통찰력 있는 내용들로 가득 담겨졌다. 이 책은 그동안 간과되어 온 핵심 개념 ‘고엘’을 국내 최초로 공동 연구하여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한국의 신학과 신앙 실천에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고엘’과 ‘희년 제도’는 공동체성을 어떻게 지탱시키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내 각 지파별로 가나안 땅을 분배받게 하셨다. 그리고 개인이 분배받은 땅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타인에게 팔린다 해도 다시 본래의 주인이나 그의 종족에게 되돌아오게 하는 제도를 규정하셨다(레 25장). 공동체의 핵으로서의 가족과 사회를 결속시키고 보호하기 위해 사회관습법의 일종인 가족법의 영역에 속하는 이 제도를 고엘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한 가족이 자립 능력을 잃을 때 가까운 친족이 돕게 하여 가족 공동체 구성원들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을 세우신 것이다. 고엘 제도하에서 땅을 무를 때 치르는 값은 희년까지 남은 기간을 기준으로 하여 정한다. 고엘 제도는 궁극적으로 희년 정신을 지향하며 그 실현을 돕는 제도다. 이 책은 기존의 학자들이 간과해 온 고엘과 희년 제도의 상호 연관성을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다. 저성장과 고실업의 경제 상황 속에서 빈부차와 질병, 실업과 같은 사회적 위험을 대비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비되지 않은 한국의 경우,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며, 교회는 고엘 정신으로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고엘’은 교회에 무엇을 말하는가?
자기 친족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르는 자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죄의 종 된 자리에서 자유케 하려고 피 무르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구약성서의 어느 인간적인 고엘도 성취하지 못한 완전한 구속을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셨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억울하게 순교한 자기 백성의 피를 복수하는 고엘의 역할을 하신다. 또한 바벨론과 짐승의 압제하에서 모든 것을 상실한 과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신자들을 신부로 맞아 주는 예수님도 고엘을 연상케 한다. 이와 같이 고엘 사상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이 같은 하나님의 무름 혹은 구속을 이해한 자들도 무르는 자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 또한 이런 무르는 친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족, 민족, 국가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하고, 그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로 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진정한 고엘이시므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만 말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참고엘이신 그분을 먼저 만난 우리가 그분의 대리인으로 인간 고엘의 역할을 지금 여기서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