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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욕망 상세페이지

인문/사회/역사 인문

타자와 욕망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읽기와 쓰기

구매종이책 정가13,000
전자책 정가9,100(30%)
판매가9,100
타자와 욕망

책 소개

<타자와 욕망> 레비나스 철학이 지니는 강점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일깨운다는 데에 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는 해체 이전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윤리는 존재론에 앞서기 때문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인데, 타자와의 관계는 모든 이해(理解)나 해석에 우선한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관계하는 데서 비롯한다. 주체 자체가 타자에 의해 형성되고 성립된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생각이다. 타자와의 관계 이전에 어떤 주체를 설정하고 그 주체에 의해 의미 세계가 구성된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레비나스의 견지와 큰 거리가 있다. 레비나스에게서 무게의 중심은 동일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타자에게 놓인다.

우리의 삶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 만남이 우리를 주체로 분리시키고 자리 잡게 한다. 내 삶에서조차 내가 먼저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은 타자의 호소나 명령에 응답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모름지기 삶이란 어떤 반응과 더불어 성립한다. 인식이 먼저가 아니라 반응이 먼저다. 또 그 반응은 내가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하기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감성이 계산하고 판단하는 이성에 우선한다. 세계에 대한 전체적 파악으로서의 존재론은 이런 인식을 체계화한 것이니만큼, 타자와 맺는 근본적 관계인 윤리에 앞설 수 없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어떻게 자아중심적 한계성에서 벗어나 타자와 관계 맺을 것인가

서양 철학의 자아중심적 존재론을 비판하고
타자성과 외재성, 낯섦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역설한
레비나스의 깊이 있는 사유를 읽는다!

레비나스의 생애와 저작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1906년 1월 12일 러시아 지배하의 리투아니아 지방에서 책방을 운영하던 유태인 예힐 레비나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래로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때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되었다. 레비나스는 나중에 “나의 삶의 대한 기록은 나치 공포에 대한 예감과 그에 대한 기억이 지배한다.”라고 술회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히브리어 성경 교육을 받았으며,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슈킨 등의 러시아 문학작품과 셰익스피어 같은 서유럽 고전들을 즐겨 읽었다. 1915년경에 가족과 함께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가, 1923년 가족을 떠나 독일에 인접한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베르그송 철학을 비롯한 프랑스 철학, 후설의 현상학을 배운다. 1926년에는 대학에서 모리스 블랑쇼와 만나는데, 그와 블랑쇼는 이후 평생에 걸친 우정 속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1928년에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가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강의를 직접 듣는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으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으며, 1929년에는 다보스 학술회의에서 벌어진 하이데거와 카시러의 유명한 토론을 목도하기도 했다. 레비나스에게 하이데거는 막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자 넘어서야 할 상대로 자리 잡는다.
193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이름의 책을 출판한다. 이해에 레비나스는 프랑스에 귀화한다. 1931년에는 후설의 『데카르트적 성찰』을 스트라스부르의 동료와 함께 번역하여 출간한다. 이후 소르본 대학 등지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1934년에는 나치즘의 전체주의적 경향을 비판하는 「히틀러주의에 대한 몇 가지 고찰」이라는 글을 발표했고, 1935년에는 나름의 독창적 사유의 단초를 담은 『탈출에 관하여』를 펴냈다. 1939년 프랑스 군인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만 곧 포로가 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포로수용소에서 지낸다. 그는 포로였던 덕택에 리투아니아에 있던 가족과 달리 죽음을 면했다.
1946년부터 그는 유대인 교사 양성을 위해 설립된 동방 이스라엘 사범학교 교장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1947년에는 수용소에서 쓴 『존재에서 존재자로』와, 장 발(Jean Wahl)이 운영하던 ‘철학학교’에서 한 강의를 엮은 『시간과 타자』를 출간했다. 1948년에는 예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담은 「실재와 실재의 그림자」를 발표했고, 이듬해 후설과 하이데거 철학을 소개하는 논문들을 실은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찾아서』를 발표한다. 1961년에는 이 책에서 다루는 그의 첫 번째 주저 『전체성과 무한』이 출판된다. 이 책을 통해 레비나스는 철학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963년부터 푸아티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65년 그 대학의 전임교수가 되었으며, 1967년 낭테르 대학 교수를 거쳐 1973년에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가 된다. 1974년에는 두 번째 주저라 할 수 있는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를 내놓는다. 그는 1976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퇴임하는데 거기서 행한 마지막 학기 강의들이 『신, 죽음, 그리고 시간』이라는 책으로 묶여 1993년에 출판된다. 그 밖에 레비나스의 주요한 저서들로는 『어려운 자유』(1963), 『다른 사람의 휴머니즘』(1972), 『윤리와 무한』(1982), 『관념으로 오는 신에 대하여』(1982), 『주체 바깥』(1987), 『우리 사이』(1991), 『타자성과 초월』(1995) 등이 있다. 레비나스는 1995년 12월 25일 파리에서 눈을 감는다.

존재론과 윤리
레비나스의 철학은 20세기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전체주의와 전체론을 반대하고 극복하려는 동기가 그의 철학에 깔려 있다. 물론 전체론 비판은 현대 철학의 주요한 한 흐름이다. 레비나스에게 큰 영향을 준 철학자이면서 그의 주된 비판 대상이 된 후설과 하이데거가 그런 흐름의 중요한 줄기라고 할 수 있다. 베르그송 역시 이 같은 흐름에 크게 기여했다. 그보다 앞서 니체의 이성 비판은 이런 현대적 흐름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이전까지의 모든 존재론을 물리치고 존재론 아닌 윤리를 제1철학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이 흐름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서구의 근대적 이성은 세계를 통일적 원리로 파악해내고 이를 통해 환경에 대한 지배력을 넓히는 데 큰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이성의 빛’은 인간과 사회를 포함한 세계의 모든 영역을 계산 가능하고 조작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는 식민지 지배와 이익 추구 경쟁을 통한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이성과 계몽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니체나 하이데거의 철학처럼 한편에서 계산적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했던 철학들도 히틀러의 파시즘에서 보듯 전체주의에 이용당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레비나스는 그 까닭이 그러한 철학들도 여전히 존재론을 앞세웠던 데 있다고 여긴다.
존재론을 앞세우는 철학은 지배를 지향하는 자기중심적 특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생각이다. 존재론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이를테면 니체처럼 고정된 상태를 깨뜨리는 ‘힘을 향한 의지’를 내세우든, 하이데거처럼 존재자들의 규정에 앞서 차이를 가능케 하는 ‘존재’를 내세우든, 결국 동일성의 철학이 되고 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한 파악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동일성의 확장과 지배이며, 다양한 개념들과 사유 방식들은 거기에 봉사한다.
레비나스 철학이 지니는 강점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과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을 일깨운다는 데에 있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윤리는 해체 이전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윤리는 존재론에 앞서기 때문이다. 윤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것인데, 타자와의 관계는 모든 이해(理解)나 해석에 우선한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관계하는 데서 비롯한다. 주체 자체가 타자에 의해 형성되고 성립된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생각이다. 타자와의 관계 이전에 어떤 주체를 설정하고 그 주체에 의해 의미 세계가 구성된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레비나스의 견지와 큰 거리가 있다. 레비나스에게서 무게의 중심은 동일자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타자에게 놓인다.
우리의 삶은 타자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그 만남이 우리를 주체로 분리시키고 자리 잡게 한다. 내 삶에서조차 내가 먼저일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삶은 타자의 호소나 명령에 응답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 모름지기 삶이란 어떤 반응과 더불어 성립한다. 인식이 먼저가 아니라 반응이 먼저다. 또 그 반응은 내가 아닌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하기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감성이 계산하고 판단하는 이성에 우선한다. 세계에 대한 전체적 파악으로서의 존재론은 이런 인식을 체계화한 것이니만큼, 타자와 맺는 근본적 관계인 윤리에 앞설 수 없다.

타자의 무한성과 얼굴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무한하다. 타자는 한정을 벗어나 있고 한정되지 않는 자인데, 이렇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정이 없다는 것, 곧 무한하다는 것을 뜻한다. 무한한 자인 타자는 유한한 동일자인 나를 넘어서 있다. 그렇기에 타자는 동일자에 비해 높다. 무한하게, 한없이 높다. 따라서 타자와 동일자의 관계는 대칭적인 관계나 상호적인 관계가 아니다. 한정된 자와 한정되지 않은 자의, 일정한 테두리에 가두어진 자와 그런 테두리를 초월하는 자의 비대칭적 관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자가 강하고 위력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타자는 오히려 약하고 헐벗은 자다. 강하다든가 풍요롭다든가 하는 것은 동일자적 영역에 속하는 규정일 따름이다. 그런 규정을 넘어서 있는 자를 그런 규정의 견지에서 보면 결핍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무한히 높은 자가 또한 지극히 가난하고 헐벗은 자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이러한 역설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하다. 가장 고귀한 자가 가장 헐벗은 곳에 자리한다는 점은 마구간의 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예수의 이야기가 잘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높고 귀한 것이 부나 권력 따위에 의해, 지배와 관련된 사항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타자와의 관계는 지배의 관계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타자를 지배할 수도 없지만, 타자가 나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지배는 동일자적인 관계이지 윤리적 관계가 아닌 까닭이다. 그렇기에 레비나스가 말하는 무한한 타자를 위력적인 신과 유사한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타자는 연약하고 헐벗은 자들로 나에게 다가온다. 이방인, 고아, 가난한 자, 병든 자 등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내가 가진 것들의 밖에서 내게 호소하고 명령한다. 이 호소와 명령은 지배나 강제가 아니지만, 나는 이 호소와 명령을 외면할 수 없다. 이 외면할 수 없음이 책임이고 윤리다.
그러므로 타자와 동일자의 관계는 어떤 공통성에 입각한 관계가 아니지만 무관심한 관계도 아니다. 타자와 동일자 사이의 차이(difference)는 무관심(indifference)이 아니라 무관심하지-않음(non-indifference)이다. 이와 같은 관계 맺음의 불가피성이야말로 윤리적 관계의 특성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와의 관계는 어떤 매개를 통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얼굴을 마주 대하는 직접적 관계다. 타자는 무한하지만 이렇게 곧바로 얼굴로서 다가온다. 타자는 우리에게 얼굴로 호소하고 명령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이란 타자의 직접적인 호소를 의미한다. 무한하고 초월적인 타자가 우리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직접 관계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직접 현현(顯現)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 ‘얼굴’이다. 그렇기에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아무런 가림이나 치장도 없는 벌거벗은 것이라고 말한다. 벌거벗은 낯선 얼굴, 우리를 강제할 아무것도 없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얼굴,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타자의 얼굴이다.

욕망, 향유와 환대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우리가 타자를 향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어떤 결핍 때문에 생겨나고 그 결핍이 채워지면 만족되는 그런 욕망이 아니다. 이 욕망은 채우면 채울수록 오히려 더 커지는 욕망이다. 무한을 향한 욕망이기 때문에 그렇다. 윤리란 바로 이런 욕망과 관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적 관계는 결핍을 채우려는 행위로도, 보상이나 보답을 기대하는 행위로도 구현될 수 없다. 그런 행위들의 기준은 모두 동일자적 견지에 속한다.
반면에 무한을 향한 욕망은 우리의 한계 너머를 지향하는 욕망이다.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자는 이런 욕망을 떨칠 수 없으며, 한계가 넓혀질수록 그 욕망은 더욱 커진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언제나 우리의 한계를 자각하거나 한계 너머를 욕망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하이데거가 말하듯 우리가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점을 언제나 의식하고 살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원래 그런 의식 없이 우리 밖의 세계와 관계하며 살아나간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마시는 물과 공기, 우리에게 내리쬐는 햇빛 등등 우리를 둘러싼 요소들 속에 잠겨서 그 요소들을 향유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유한하며 또한 나름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 그런 의미에서 분리된 존재인 우리의 본래적 삶의 모습이다.
레비나스가 이런 점을 내세우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애당초 자기 확장적이거나 타자에 대해 폭력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향유(享有)한다는 것, 즐긴다는 것은 지배한다는 것과 다르다. 어떤 것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장악해야 하지만, 즐기기 위해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요소들 속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 시원한 바람을 즐긴다. 풍광은 원래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으며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우리가 이룩한 세계의 내부에 있지 않다. 향유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과 관계하지만, 이 관계에서 우리는 아직 폐쇄적 전체성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 향유는 불안정한 관계다. 향유의 요소들은 우리 밖에 있기에 우리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영속적인 관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따사로운 햇볕과 시원한 바람은 언제든 폭풍우로 바뀔 수 있고, 자연에서 얻는 식량은 쉽게 고갈될 수 있다. 이런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집을 짓고 울타리를 두른다. 그렇게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안정을 도모한다. 내일을 위해 먹을거리를 모으며 추위에 대비해 장작더미를 쌓는다. 노동과 소유는 이렇듯 향유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한 거주의 특성이 된다. 우리는 이 거주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만, 이 테두리는 동시에 배타적인 자리 잡음의 경계가 된다.
환대는 이런 폐쇄성을 열어젖히고 타자를 내 집에 맞아들이는 행위다. 낯선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리를 내주는 일이 환대다. 레비나스가 내세우는 환대는 아무런 권리나 보상도 전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조건적 환대다. 나는 타자가 이방인이고 헐벗은 자이기에 그 호소에 응답하여 타자를 환대할 따름이다. 이런 무조건적 환대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먼저 맞아들여졌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내 집, 내 나라, 내 땅에 이미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오늘의 문명을 개선하는 길
레비나스 철학에서 초점은 갈등을 동일자의 지평에서 해결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타자와의 관계를 환기함으로써 그 지평과 갈등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다. 레비나스는 우리에게 익숙한 테두리 내로만 눈을 돌려서는 그 내부의 문제도 풀어가기 어렵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삶의 지평을 경쟁과 계 산 따위로 한정해서는 갈등과 전쟁이 되풀이되는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얼핏 우리가 당연시할 수 있는 관계들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역의 밖, 그 너머와의 관계가 우리 삶의 더욱 근원적인 차원이다. 타자와의 관계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무대인 존재의 규정들에 앞서며 존재 세계의 바탕에 놓인다.
그러나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한다고 해서 삶의 문제와 어려움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타자와의 관계는 완결적일 수 없는 관계다. 오히려 타자에 응답하고 책임을 다하면 다할수록 그 책임이 더 커져간다는 것이 이 관계의 특징이다. 끝없는 문제와 끝없는 응답을, 타자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이런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오늘의 문명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길이다.



저자 소개

저자 : 문성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철학자 구보 씨의 세상 생각』, 『해체와 윤리』, 『배제의 배제와 환대』, 『철학의 시추 :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철학』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아듀,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공역), 『국가와 혁명』(공역),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역사』, 『자유』 등이 있다.

목차

여는 글 - 타자와 욕망

1장 전체성 너머의 윤리
―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그의 철학
레비나스의 풍모
생애와 저작
존재론과 윤리
타자의 무한성과 얼굴
향유와 환대
동일성 너머의 윤리
레비나스 철학의 발전

2장 윤리와 종말론 ―『전체성과 무한』 서문 읽기
서문의 역할
독일어판 서문
종말론과 역사

3장 낯섦에 대한 감수성과 욕망

4장 욕망과 혁명

5장 향유와 노동

맺는 글

에마뉘엘 레비나스 연보
‘우리 시대 고전읽기/질문총서’ 발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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